4장: 구타유발자의 삶

by 익수정


“대체 왜 안 받는 건데!!”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유령도시 같은 풍경의 거리 위에서, 나는 버럭하고 소리를 질렀다. 만약 여기가 산 정상이었다면 분명 메아리가 들려왔을 거다. 하지만 내 핸드폰의 스피커 너머에서는 같은 통화음만이 울렸다가 꺼지기를 수십 분,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씩씩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이 범재라는 이름을 노려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길 건너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담배 한 갑을 사고, 포장 비닐은 담뱃갑 아가리 쪽만 대충 뜯은 다음 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입으로 문 다음 반대쪽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는다. 그러다 주머니에 라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맞다… 안 가지고 나왔지…’


담배를 입에 문 채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 가장 싼 초록색 플라스틱 라이터 하나를 산다. 이런 식으로 산 라이터만 집에 한 박스는 될 거다. 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편의점을 나오자마자 서둘러 불을 붙이고는, 깊이 한 모금을 빨아들인다. 그거 잠깐 입에 물고 있었다고 담배 필터가 축축해진 게 영 찝찝한 기분이 든다.


임 상병 그 개새끼는 내가 전입해 왔던 첫날부터 나를 갈궈댔다. 생긴 것도 샌님 같은 재수 없게 생긴 게 꼭 지 생긴 대로 술도 안 마신다질 않나, 담배도 안 피운다질 않나… 착한 척 혼자 다 한다며… 호구 새끼 관상이라나 뭐라나…


미친놈.


뭐, 그 뒤부터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지옥의 연속이었다. UFC 방송을 보다 말고 격투기 선수 흉내를 내며 나를 샌드백으로 쓰질 않나,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다 말고 음담패설을 하며 내 거가 작네 크네 하면서 옆의 놈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모자라 '저 새끼 커진 게 실제로 얼마나 되나 궁금하다'면서 다른 놈들을 시켜 나를 붙잡아서는 억지로 자극하기도 했다. 어떻게 자극했는지는… 거기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사정이 이쯤 되면 아마 다들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으면서 왜 가만있기만 했느냐'라고…


나라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다른 병사들 몰래 소대장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민호야, 너한테도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닐까?”


“그리고 사소한 걸로 하나하나 다투고 마음 상해하지 말고, 인마… 너무 예민하면 너만 손해야. 다른 병사들이랑도 사이좋게 좀 지내고 그래… 어? 문제 안 생기게 말야. 요즘 우리 부대 민감한 거 너도 알지? 나도 요새 스트레스받아서 죽겠다, 인마. 잘하자~ 알았지?”



이런 상황에서 내가 더 뭘 할 수 있었을까. 내 편은 어디에도 없는데… 그리고 어떻게 임 상병이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면담 요청을 했던 사실마저 임 상병의 귀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 발생했고, 나는 임 상병이 제대 할 때까지, 그 새끼에게 더욱 심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억울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차츰 임 상병의 형벌에 익숙해지면서부터, 소대장이 했던 말처럼 정말 나에게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군대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존재하여서도 안 되는- '구타 유발 죄'라는 죄목이 있다. 암암리에, 그러나 너무나도 자주 쓰이는 이 말은, 피해자에게도 가해자가 그렇게 행동하게끔 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내 상황에 대입해서 말해보자면 임 상병이 나를 괴롭히게끔 할만한 문제-원인-책임-죄가 나에게도 정말로 있었다는 말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이라… 다시 생각해도 정말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다. 하지만, 정말로, 군대에는 그런 게 있었고, 나에게는 그게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어떠한 문제나 사건이 생길 때마다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거나, 혹은 내 탓으로 돌리는 습관이 생겼다. 지독한 두통과 함께.


내가 담배를 배우게 된 것도 바로 그 시점부터이다. 처음 피게 된 기억은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있고 순서 또한 뒤죽박죽이지만, 확실하게 남아있는 것 한 가지는 담배를 피우면 신기하게도 두통이 사라진다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흡연자 그룹의 일원에 속하게 되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내가 좀 전에 지나온 아파트 단지 반대에 있는 다른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이쪽 담장은 아까보다는 제법 높다. 오래된 아파트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듣기로는 이쪽 아파트는 몇 년 전부터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있어서 길 건너의 아파트와는 꽤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인 건지 이 아파트의 정문에는 언제나 경비원이 상주하고 있다. 경비원은 성문을 지키는 성문지기처럼 아파트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체크하고, 못 보던 차가 방문하는 날이면 입구에서 차를 멈춰 세우고 어느 동 몇 호에 가는지, 방문 이유는 무언지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무엇보다 특히 경비원은 아이들에게 엄격한데, 길 건너편에 사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기 위해 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쫓아내기 일쑤였다. 찜질방 손님 중 하나였던 아파트 동장 아줌마에게 전해 들은 -물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인데, 길 건너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이쪽 아파트에서 놀면 혹여나 집값이 떨어지고, 재개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라나 뭐라나… 뭐, 그렇다고 한다.


‘애초에 사람도 하나 없는 동네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풉'하고 헛웃음을 뱉어냈다. 그러자 방금보다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거의 끝까지 타버린 담배를 근처 쓰레기 더미 사이에 꽂아두고는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고 담벼락을 따라 계속 걸었다. 아파트 단지의 끝자락이 보이자, 시선 너머에 아까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논밭이 눈에 들어왔다.


갓길을 따라 널따란 논과 높은 산이 첩첩이 쌓여 눈앞에 펼쳐진다. 다음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고, 하늘은 그보단 느긋하게 아직은 한여름의 파랑으로 만연하다. 길 위에 사람이라고는 나 외에 아무도 없이, 가끔 자동차들만이 차도를 지나가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 마치 아까의 헛웃음처럼, 나는 어쩐지 이 풍경에 위안받는 것 같았다. 호주에는 이런 풍경이 없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오히려 좋은 일인 건가… 잘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그러니까 그… 갑작스레 퍼뜩하고 내가 왜 아까 만난 까무잡잡한 남자를 보며 묘하게 기분 나빠했었는지를 깨닫는다. 그 남자는 어딘가 임 상병과 닮아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쉰 듯한 목소리, 그리고 작은 키까지. 얼굴은 전혀 달랐지만 같은 냄새였다. 임 상병의 냄새. 그래서 나는 줄곧 그 남자를 불편해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뭐… 그때처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걷다 보니 이것저것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정리라… 그러고 보니 아까 남자가 매점 아줌마 운운하며 이 점례라는 이름을 언급했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내게 그 아줌마를 여탕 매점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아줌마에게는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들놈이 일을 도와주려고 온 거’라고. 내가 사장이라고 할 땐 언제고…


“아이구, 참 효자 아들을 두셨네요.”


이 점례 아줌마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넨 인사였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 보고 나눈 마지막 인사이기도 했다. 서로 출퇴근 시간도 달랐고 아줌마가 일하는 여탕 매점에 내가 들어갈 일은 더더욱 없었으므로, 나와 아줌마는 첫인사를 나눴던 그날 이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주로 아줌마와는 인터폰으로 대화를 했고, 그마저도 사무적이었다. 아줌마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는 점이 있다면… 음… 맞다. 아줌마는 좀 귀찮은 성격이었다. 요령이 없어서 한 번이면 될 일을 여러 번 나눠서 시켰고 그마저도 매번 ‘빨리빨리’라며 재촉했다. ‘그럴 거면 한 번에 모아서 부탁하면 되잖아…’ 나는 몇 번이고 이런 생각을 했지만,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마저도 귀찮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니 아줌마와 나의 관계를 요약하자면, 찜질방이라는 테두리가 아니고서는 다시는 얼굴 볼 일도, 말 섞을 일도 없을 그런 사이인 것이다. 각자의 인생이란 드라마에서 너무나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 버린 탓에, 서로가 등장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인물. 시작이 그러했으니,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계속 그래야 했을 터였다. 그런데 목소리는커녕 얼굴의 인상마저 희미해진 내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그야말로 갑툭튀 해서는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것도 ‘1억 5천만 원’을. 전개가 너무나도 터무니없다. 지금 내가 진 학자금 대출 빚보다도 4배가 넘는 액수.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고, 앞으로도 만져볼 일이 없을 것만 같은 금액. 그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데 대체…


“아…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왠지 좆 된 거 같은데…”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논두렁에 걸터앉아 중얼거렸다.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운동화발로 짓이겨 불을 끈 다음, 혹시 몰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했다.


오후 05시 43분.

부재중 통화 0건.


여전히 연락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한 번 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새까만 먼지를 내뿜으며 내 앞을 지나갔고, 매연 때문인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딘가 숨쉬기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검은 먼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깊게 숨을 쉬었다. 하지만 가슴의 답답함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매연이 아니라 연속으로 담배를 피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기지개를 켰다.


‘아버지가 많이 바쁜가 보지 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설령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적어도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문자 남겨 놓으면 답장 주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엉덩이에 묻은 남은 흙을 털어낸 다음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아버지 연락 좀 주세요. 매점 아줌마 보증금이 1억 5천이라고 하는데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하지만 곧 이라고 생각했던 답장이 도착한 건 며칠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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