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하기만한 두 번의 통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일까.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걸까. 알아서 한다는 아버지를 정말로 믿어도 될까?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디로 가려고 했었는지 마저도 잊어버린 나의 두 발은 같은 골목의 모퉁이를 돌고 또 돌기를 반복하기를 몇 번. 그러고 나서야 겨우, 가까스로, 버스 정류장 앞에서 멈춰 서게 되었다. 정답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찜질방에 가 봐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찜질방은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리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도중에 두 번 정도 버스를 갈아탔고, 20여분씩 걸리는 배차간격 때문에 정류장 벤치에서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이게 과연 시내에 있는 가게가 맞긴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찜질방의 교통편은 열악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아버지는 나에게 분명, 찜질방 주변의 교통과 상권이 매우 좋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내려서 서 있는 이 장소의 주변 풍경이란, 결코 교통이 좋다거나 상권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모습이었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아파트 단지 두 개가 전부에, 버스 정류장도 달랑 여기 하나뿐. 오가는 버스 노선도 기껏해야 세 개가 전부인 이런 곳을 대체 어떤 바보가 교통이 좋다고 한다는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버스가 아닌 택시를 부른다거나, 직접 자동차로 운전해서 온다고 한다면 우리 집에서 이곳까지는 20~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는 하다. 교통이 좋다라… 항상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꽤 좋은 교통이기는 한 듯 싶었다. 물론, 순전히 자기 위주의 생각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고 나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하지만 더는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여유가 없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난 다음 정류장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오늘도 신호등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길을 건너 상가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오자 바로 아파트 단지의 정문이 보였다. 찜질방은 정문 쪽 상가가 아니라 후문 쪽에 있었으므로 나는 아파트의 담장을 따라 걸으며 후문 쪽으로 향했다. 차 두대가 서로 겨우 비켜나갈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좁은 도로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눈높이보다 낮은 담장 너머로 펼쳐진 논밭이 답답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 주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 녹이 슨 작은 철문-이 철문이 바로 후문이었다-을 통과하자 그 앞으로 작은 구멍가게들 몇 개와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혼자 삐쭉하게 솟아오른 건물 하나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8층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곳에서- 가장 높은 건물. 성처럼 솟아오른 눈앞의 빌딩을 가운데에 두고 양 옆으로 아파트 단지가 놓여있었다. 지금 내가 가로질러 온 아파트 하나와, 그리고 또 다른 아파트 하나. 아버지가 입 아프게 강조하던 상권은 바로 이 상가와 아파트를 말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주변 풍경은 마치 서로 다른 풍경의 사진 두 개를 잘라서 이어 붙인 듯, 너무나도 갑작스레 논과 밭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니 이곳의 상권 규모라는 게 어느 정도 일지는 내가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잘 예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에게만큼은 이곳이 자신의 성공을 보장해 줄 약속의 땅 같은 곳으로 여겨졌다는 데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생각해 봐라, 여기 사람들은 우리 찜질방 말고는 다른 데 못가! 이런 좋은 상권이 또 어디 있냐!”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 따로 알아본 바로는 우리 찜질방은 이전 관리자-건물주였다-의 관리 태만으로 인해 이미 악명이 자자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근처의 다른 목욕탕을 이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다른 곳에 가는 손님은 우리가 뺏어오면 그만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무슨 수로 손님들의 발길을 다시 이곳으로 돌리게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들은 바가 없다.
‘어쨌든, 가서 전말을 확인해 보자.’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는 눈앞의 가장 높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찜질방은 빌딩 4층에 있었다.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잠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러자 갑작스레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진정하기 위해 가만히 서서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해보았지만 찜질방 입구에 다다르기까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차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고, 속까지 울렁거리는 듯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꾸만 ‘강제집행’이라는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대체 그게 뭘 말하는 걸까. 모르니까 이렇게 혼란스러운 걸까. 나름의 추측을 해 보아도 대체 무얼 강제로 집행했다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 말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제집행이란 말은 20여 년 남짓한 나의 삶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의 일상과는 너무나도 먼 말이었으니까. 아무튼 뭐… 다짜고짜 1억 5천이나 되는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걸 보면, 결코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나마 들기는 했다. 아버지는 빚을 지게 된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거의 없다시피 한 증거들만으로 세간에 길길이 날뛰고 있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해야만 하는 수사 드라마의 형사라도 된 듯, 어지러운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정리해 보고자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한 혼자만의 추리를 계속해 보았지만, 내가 잡아야 할 범인의 윤곽은 아무래도 드러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만하자.
에휴-
아무리 혼자서 생각해 본다 한들 모르는 건 모르는 거고,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던 탐정놀이를 멈추고,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찜질방의 입구로 들어갔다.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 보는 인상착의의 남자 세 명이었다. 세 명의 남자는 찜질방 카운터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서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덜컥 겁을 먹고는 쭈뼛거리며 카운터 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가까워지자 셋 중에 가장 키가 작은 남자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목욕하시게요?”
살짝 쉰 듯한 목소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아까 나와 통화했던 사람이 바로 이 남자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짝다리를 짚고 있는 모습과 까무잡잡한 얼굴색이 목소리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뇨, 목욕하러 온 게 아니구요. 아까 전화하셨길래 찾아와 봤어요.”
“전화? 무슨 전화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게슴츠레하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보증금 달라고 전화하셨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나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아~”
내가 보증금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제야 남자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 거리며 말했다.
“이~ 민호 씨~?”
남자는 말하며 맨 뒷말의 성조를 높이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나를 위에서 아래로 한 번, 그리고 다시 아래에서 위로 한 번 훑어보았다. 누군가가 실눈을 뜨고는 나를 훑어본다는 게 썩 기분이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티를 냈다가는 또 혹여라도, 그 불똥이 튈까 봐 최대한 침착하게 있으려 노력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네, 이 민호요.”
“돈은 뭐… 갖고 오셨나 봐?”
내가 이민호라고 이름을 밝히자 나자 남자는 방금보다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돈을 가져가 놓고 그러면 안 되지~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벌써부터 그러면 돼?”
좀 전의 공손한 태도-지금이랑 비교해 보면 아까는 확실히 공손한 게 맞았다-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눈앞의 남자는 이제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나를 일관하고 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아버지가… 그… 돈이라도 빌리신 건가요?”
혹시 말로만 듣던 악덕 사채업자인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뭔 돈을 빌려… 니 아부지 돈까지 빌렸어?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니까 뭐 어디서 빌린 거 있으시면 알아서 갚으시고요… 여기 이거 보이지? 여기에 있는 보증금이나 빨리 내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카운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종이 하나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보증금이요…?”
“이 민호 씨 여기 사장 아니야? 사장님 아니시냐고~ 여기 이거 봐봐, 이거.”
남자는 이번에는 카운터 뒤에 걸려있는 액자 안의 사업자 등록증을 가리켰다. 물론, 이번에도 턱으로.
“그… 사업자 등록은 제 꺼가 맞긴 한데요… 근데 그… 사장은 제가 아니에요…”
“뭐요? 아니, 여기에 이름이 쓰여 있는데 아니라고? 참, 나 이 새끼 봐라. 저기요~ 여기에 대표 ‘이 민호’라고 이름이 나와 있잖아요, 사장님~. 이. 민. 호.라고.”
“그건 그렇긴 한데요…”
“그럼 사장님 맞잖아. 어디서 장난질이야. 이거 어떡할 거야, 이거.”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남자는 듣기 싫다는 듯 내 말을 자르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종이를 들어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남자가 내민 종이는 계약서였고, 그 서류에는 큼직한 글씨로 임대차 계약서라는 제목과 함께, 보증금 1억 5천이라는 글자, 그리고 처음 보는 이름과 나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이 순서대로 적혀있었다. 그리고 서명란에는 내 이름으로 된 도장이 찍혀있었다.
“이거 알지?”
“이게… 뭔데요…”
내 이름이 적혀있는 계약서였지만, 난생처음 보는 서류였다.
“이젠 시치미를 떼시겠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이거 자체를 처음 보는 거라 서요… 그리고 저 계약하신 분 성함도… 전혀 모르는 분이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네.”
“매점 아줌마 몰라?”
“매점 아주머니요? 알긴 하는데… 그런데, 그게… 왜요…?”
“매점 아줌마는 아는데 이름은 모른다고? 여기 이게 매점 계약서인데?”
“그냥 일하면서 얼굴은 봤었으니까… 그러니까 아는 거지… 아주머니 이름까지는 저도 모르… 죠… 그리고 그건 지금 저도 처음 보는 거라고 방금 말씀드렸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들고 있는 계약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성명’이라고 적힌 계약서의 항목에는 ‘이점례’라는 이름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점례. 그 이름을 보고 나니 매점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단번에 떠올랐다. 아무래도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이름을 닮아간다던 속설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거 이 민호 씨 도장 아냐?”
남자는 이번에는 계약서의 서명 란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내 이름 옆에 붉은색 인주로 ‘이. 민. 호. 인’이라는 한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제 이름이 맞긴 한데… 제가 찍은 적은 없어요… 그리고… 그 도장도 처음 보는 거예요…”
“내 도장은 맞는데 찍은 적이 없어요? 아니, 뭐 구라를 칠라믄 제대로 치든가~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민호 사장님? 아무튼 그쪽 사정은 난 모르겠고~ 다음 주까지 돈 가져와.”
“네? 뭐가요…?”
“이거, 니 이름 맞다매.”
“네…”
“그럼 얘기 끝났네.”
남자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는 나에게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꺼지라는 신호의 손짓을 하고는 등을 돌려 찜질방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포스기의 화면을 만지작 거렸다. 자리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다른 두 남자는 저들끼리 수군거리며 한 번씩 나를 흘낏하고 쳐다보았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남자가 내민 서류에는 분명히 내 이름으로 된 도장이 찍혀있었다. 내가 저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적이 있었나…? 계약서가 있기는 했었나…? 찜질방 개업 초기에 이것저것 작성해야 할 계약서가 정말 많긴 했었지만, 주로 화재보험이니 공기청정기니 정수기니 하는 필수적인 계약서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정신없었다고 할지라도 저런 계약서는 본 기억도 없었고, 도장을 찍은 기억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방금 저 계약서가 내가 정말 직접 도장을 찍은 계약서라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다. 생각을 해 보라. 1억 5천이나 되는 거금의 계약서를 자기가 썼는지 안 썼는지도 기억 못하는 바보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다음 주까지다?”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자, 포스기를 만지고 있던 남자는 카운터 너머로 시선을 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바로 보이는 카운터 자리로 와서는 한 팔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그대로 턱을 괴더니 나를 지긋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죽거리는 표정에 나는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줘요.”
“뭐라고?”
“못 준다구요.”
“뭐 인마?”
“돈 못 드린다고요. 아셨어요? 돈이 없는데 어떻게 드려요. 1억 5천이요? 제가 뭐 어떻게 장기라도 팔아드릴까요? 아니 그전에 돈이 없다구요! 그리고 나도 여기서 월급 받고 일했는데 그런 돈이 어디 있어!”
아까부터 스멀스멀 차오르던 짜증에 나는 그만, 욱해서 남자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러자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좀 전까지와는 다르게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한 말투였다.
“어? 야 뭐라는 거야 너. 무슨 장기를 팔아. 왜 그래, 그런 거 아니야.”
“아, 씨-! 아침부터 짜증 나네 진짜! 아버지랑 얘기해요, 아버지랑!”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는 빼액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그대로 찜질방 밖으로 나왔다. 닫히는 유리문 뒤로 남자의 뭐라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빌어먹을 놈의 인간…
왔을 때와는 달리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서둘러 최근 통화 기록에 저장되어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