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우웅-
머리맡에서 졸린 잠을 깨우는 진동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눈이 부셔 게슴츠레한 눈으로 핸드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다. 핸드폰을 다시 머리맡으로 치워버린 다음 두 눈을 감아버린다.
부우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우웅-
흔한 광고전화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진동음은 끊길 생각을 않는다. 알람보다 더 끈질기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다.
“민호니?”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의 여자가 대뜸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묻는다.
“네…”
“근데 누구세요?”
“어~ 나는 아빠 친구인데~ 혹시 지금 아빠랑 연락되니?”
“아뇨… 안 되는데요… 근데 그건 왜요?”
“그치? 아마 연락 안 되실 거야…”
마치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대답. 뭐지… 이 사람?
“네? 그게 무슨 소리 세요?”
“아침부터 전화하자마자 이런 말하게 되어서 미안한데…”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한참 뜸을 들인다. 쉽게 운을 떼지 못하는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에 나는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아침잠을 방해받은 것도 불쾌한 마당인데 왜 이렇게 늑장까지 부리는 건지… 나는 하마터면 용건이 있으면 빨리 좀 말하라고 짜증을 낼 뻔했다. 게다가 다짜고짜 민호냐고 이름을 물어보는 태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아빠가 말이야…, 사실은 지금… 구치소에 계셔…”
“네?!!!”
조금 전까지의 지겨움이 마치 거짓말이었다는 듯,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와 함께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졌다. 구치소? 구치소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서 지금 연락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서…, 나한테 대신 얘기 좀 해달라고… 아줌마한테 연락이 왔거든…”
“…”
“정확히는… 아빠가 민호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근데 내가 생각했을 땐 이건 숨기고 있어야 할 만한 얘기가 아닌 것 같아서.”
“아, 네…”
“…”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
“…민호가 아빠한테 면회 한 번 다녀오지 않을래?”
“면회요…? 갑자기요?”
“응… 구치소 어딘지는 알지?”
“아, 네… 그… 어딘지 알긴 아는데…”
안다면 아는 거라고 할 수야 있겠지만, 버스노선도에 쓰여 있는 걸 본 게 전부다. 딱, 그 정도다.
“그래 그럼 오늘이나 내일 중에 면회 한 번 가봐. 민호도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비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아… 예…”
“그리구 갔다 오면 아줌마한테도 얘기 좀 해주고.”
아줌마한테요? 내가 왜요? 누구신데요?
“그런데, 죄송한데… 누구신데요…?”
“나쁜 사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어~ 아빠 도와주고 있는 사람이야.”
누구인지는 알려주지를 않는다. 의심스럽기만 하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가 볼 테니까 죄송하지만 먼저 끊을게요.”
“응 그래~ 꼭 연락 줘~”
“아, 네…”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대뜸 전화를 걸어서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연락하게 되었다는 의문의 인물-아줌마-.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다. 아버지의 친구라고만 할 뿐,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밝히지 않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이유가 있을까?
아버지는 원래부터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이었다. 며칠 정도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다. 심할 때는 몇 주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집 자체에 들어오지를 않고, 자기가 필요할 때 말고는 연락이 안 되는 인간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 그게 아버지였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런 의심스러운 연락에는 낚이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혹시라도 저번에 만난 찜질방 그 새끼 같은 상황이면 어떡하려고?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지금처럼 홀연히 사라지고는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있을 때쯤, 마치 걱정한 사람만 바보라는 듯이 태연하게, 슬그머니 모습을 나타내는 게 아버지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누구보다 아버지와 오래 살아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띵- 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마치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주고 싶지 않다는 듯.
“누구세요-“
“우체붑니다. 등기 왔습니다-“
우체국에서 뭐가 온 모양이었다.
“이 민호 씨 계신가요?”
“잠시만요-”
옷걸이에 걸린 후드 점퍼를 대충 두르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우체부의 목소리가 먼저 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 민호씨?"
“네, 제가 이민혼데요?”
“등기 왔습니다.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우체부는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를 가리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단말기에 서명부터 한 뒤, 우체부가 건네준 '등기'를 받았다. 황토색을 띠는 커다란 서류봉투였다.
‘등기? 등기가 나한테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에 든 서류봉투를 들고 소파에 걸터앉아 그 자리에서 마구잡이로 입구를 뜯어보았다.
피의사건 처분 결과 통지서
이민호에 대한 사기 피의사건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처분하였으므로 통지합니다.
처분 죄명 : 사기
처분 결과 :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이게 뭐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옆에 내팽개쳐둔 서류봉투를 집어 눈여겨보지 않았던 봉투의 앞면을 제대로 살펴보았다. 그제야 보내는 사람에 쓰인 검찰청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검찰…? 사기…? 대체 이게 뭔 소리야?’
나는 혼란스럽다 못해 황당한 마음을 어떻게든 억누르며 나머지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어이가 없든 화가 나든 할 것 아닌가…
이어서 읽어 내려간 서류에는 아버지와 검찰 수사관의 대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그에 따른 판결 내용이 여러 장에 걸쳐 적혀있었다. 꽤 긴 내용이었다. 하나하나 다 읽자면 지루해질 게 뻔하니,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버지는 찜질방 계약을 하면서 매점 아줌마를 비롯한 다른 몇몇 사람들에게 전대차를 내어주었고, 그 명목으로 그 사람들에게서 보증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돈은 찜질방 임대 계약의 계약금과 보증금으로 사용했는데, 계속해서 월세가 밀리는 바람에 사업체는 건물주에게 강제집행을 당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아버지는 아버지와 계약을 했던 사람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된 부분이 큰 문제가 되었고,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기도 했다.
조사 내용에 따르자면 아버지는 전대 계약을 하면서 당시 계약자들에게 근저당권 설정을 해주겠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짓말에 더해서 실제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이 되어 구속된다는 판결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내 명의가 찜질방 계약서와 전대 계약서 모두에 들어가 있고 직접 찜질방 운영에 관여한 듯한 의혹도 있으나, 아버지의 증언과 증거들을 미루어볼 때 사기에 관여한 바를 입증할 수 없고 그 증거 또한 부족하기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처분한다는 판결이었다.
요약을 한다고 했는데, 스스로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점은 여러분들이 양해를 좀 해주었으면 한다. 몇 번이나 읽어봤는데도,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대는 뭐고, 보증금은 그래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며, 그래서 지금 계약이 어떻게 된 상황이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봤는데도 죄다 어려운 말 뿐이었다.
제일 먼저 ‘전대차’라고 검색을 하자 ‘전대차(轉貸借)란 임대인이 임차물을 다시 제3자에게 유상 또는 무상으로 사용ㆍ수익 하게 하는 계약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뭔 소리야…
다음으로는 그래도 좀 더 들어본 적 있는 말인 ‘보증금’을 검색해 보았다. ‘이건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지…’하면서.
보증금.
문자를 입력하자 바로 검색 결과가 나왔다.
‘보증금(保證金)이란 일정한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미리 교부하는 금전 또는 입찰(入札)·경매(競買)·유상계약에서 계약 이행의 담보로서 납입하는 금전을 말한다.’
그럼 아버지가 뭐 사람들한테 해준다고 했던 근저당권은? 그건 뭐지?
이번에는 검색창에 근저당권을 입력해 본다.
‘근저당(根抵當, collateral)은 계속적인 거래관계로부터 장래 생기게 될 다수의 불특정 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피담보채무의 범위 및 채권 최고액을 정하여 두고 장래 결산기에 확정하는 채권을 그 범위 안에서 담보하는 저당권을 말한다.’
…
그렇단다.
아무튼 그렇단다.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임대인이 누구고 임차인은 뭐 하는 사람이며, 임차물은 뭐고, 채무자랑 채권자는 뭔 상관인지, 담보 납입 금전이라는 건 또 뭔 말인지… 통지서를 이해해 보려고 그 용어를 검색했는데 용어마저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말들뿐이었다. 왜들 항상 이렇게 어렵게 말을 만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학교서 배울 때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게 법이랄 때는 언제고, 정작 정말로 필요한 순간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만을 늘어놓는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아버지가 그렇게나 닦달을 해대길래, 몇 백씩이나 하는 학자금 빚을 져가면서까지 졸업한 대학인데 이딴 문서 하나도 제대로 읽지를 못한다. 그럴 거면 난 대체 뭐 하려고 대학을 간 걸까? 그리고 그 대학은, 대체 어떻게 졸업한 걸까… 이런 돌대가리로 말이다.
그나마, 겨우, 딱 하나 알겠는 건, 아무튼 나한테는 사기 혐의가 없다는 말뿐이다. 3,200만 원짜리 졸업장으로 이해한 게 고작 이거다. 아니, 그거라도 이해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하지만 이것마저도, 그 뒤에 들러붙어 있는 증거불충분이라는 말이 영 꺼림칙하기만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무능함에, 저능함에 화가 났다.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옆에 쌓아둔 서류와 봉투 위에 던져두고는 고개를 숙인 채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를 감싸 쥔 손톱이 두피를 찌르듯 파고들어 통증이 느껴졌고, 그와 함께 옆에 놓인 노란 서류봉투에서는 비릿한 종이 냄새가 흐릿하지만 선명하게 풍겨왔다.
그나마 ‘혐의없음’이라는 말이 위안이 되는 것 같았지만 그걸로 다일뿐, 이 기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나는 결코 누군가에게 사기를 친 적이 없다. 그건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이란다, 증거불충분.
이 증거불충분이란 말은 마치 나에게 ‘사실은 네가 사기를 친 게 맞는데, 아직 우리가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한 것뿐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증거가 나타나면 언제든 너를 잡아들이겠다고 나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생각해 봤을 때, 만약에 증거가 충분했다면 그땐 나도 사기죄인 걸까? 난 정말로, 진짜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런데도?
아니, 잠깐만. 계약서는 내가 직접 도장을 찍었잖아. 혹시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겁이 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검찰에서 등기까지 날아 올 정도면, 아까 전화 왔던 아줌마가 한 말도 다 거짓말인 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식탁 위에 놓인 지갑을 주워 든 채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직 오전이었는데도 날은 더웠다. 5층이나 되는 계단을 두세 계단씩 뛰어 내려오다 보니 셔츠에는 벌써 땀이 흥건했고, 여름 특유의 습기가 피부에 덕지덕지 들러붙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을 날씨.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숨이 차오르는 것도 모른 채, 버스 정류장으로 내달리고 있는 발걸음에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