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수감자 1883

by 익수정


구치소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12시 10분이었다. 구치소는 형광등 불이 전부 켜져 있음에도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나는 곧장 창구 왼편에 보이는 면회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로 가는 동안에도 '띵동'하는 익숙한 소리가 내 뒤로 몇 번이고 울렸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먼저 물품 보관함이라고 쓰여 있는 반투명한 로커와 그 옆의 안내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분증을 제외한 모든 소지품은 보관함에 넣어주세요.' 안경을 벗고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글씨로 쓰인 안내문은 볼품없이 벽에 붙어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나 보던 기다란 플라스틱 벤치가 놓여있었고, 면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정확히 서로 한 칸씩 떨어져 앉아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낸 다음 로커 앞으로 걸어갔다. 로커는 이미 가방이나 쇼핑백 같은 다른 짐으로 가득했다. 비어 있는 로커를 찾아 주머니에 있는 지갑과 핸드폰, 동전 몇 푼을 던져넣고는 로커 문을 닫았다. 황량하기만 한 내 로커 안은 비어 있는 다른 로커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몸을 돌려 방 안쪽에 있는 의자의 빈자리를 찾아보았다. 한 칸씩 떨어져 앉은 의자에는 더 이상 빈자리가 없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로커 반대편의 구석으로 가서 등을 벽에 기대어 섰다. 시멘트벽의 서늘함이 티셔츠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등 전체로 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앞쪽으로 향하자, 면회실 입구로 이어져 있는 듯한 통로 끝에 책상이 하나 놓여있는 게 보였다. 책상에는 구치소 직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자세는 바르게 하고 있었지만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리고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가며 돌리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따분함이었다. 거리가 있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방금은 얼핏 하품한 것 같기도 했다.


"13회 면회자분들 입장해주세요."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직원이 고개를 들어 내 차례를 알렸다. 그와 동시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나며 우르르하고 발소리를 내었다. 나는 먼저 들어간 다른 면회자들의 뒤를 따라 책상이 놓여있는 면회실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 끝에 앉은 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자 "9번이요."라고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다. 책상이 놓여있는 막다른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꺾인 길로 들어가자 다른 복도 하나가 나타났다. 복도 양쪽에는 커다란 철문이 여럿 있었고, 이미 다른 사람들은 면회실 안으로 들어간 건지 복도에는 고요함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복도를 따라 9라고 쓰여 있는 문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끼익하고 철문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적막한 복도에 비명처럼 울려퍼졌다.


면회실은 좁고, 밀폐되어 있었다. 두꺼운 유리창이 좁은 방 한가운데를 양단(兩斷)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빈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앞에 보이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철로 된 의자의 감촉은 딱딱했다. 천장 모서리에 박힌 감시 카메라의 새까만 렌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죄를 지은 건 내가 아니었음에도, 그 무심한 시선이 닿을 때마다 뒷덜미가 화끈거렸다. 그때, 반대편 철문이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화장실 복도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고, 그 미소는 유리에 반사된 내 얼굴과 겹쳐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가슴팍에 박힌 '1883'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의자를 끌어 유리 벽 가까이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자 유리 벽 옆의 작은 기계에서 붉은 글씨가 켜졌다.


[10:00]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적막 속에 조용히, 깎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 씨. 너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스피커 너머로 쇳소리가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그렇게 운을 떼고는 다시 한번 멋쩍게 웃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체면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잘 지내지?”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숫자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진호는 잘 있냐?"


"갑자기 진호는 왜요. 걘 잘 있어요."


"나 여기 있다는 거 진호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라. 그냥 어디 지방에 사업 하러 갔다고 해. 알았지?"

23살이나 먹은 동생이 그 말을 믿을 리가 없다는 건 아버지도 알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거짓된 평화를 택했다. 나는 비겁한 요청을 무시하고 본론을 꺼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지금 이게."


"아주 나쁜 새끼들이야. 처음부터 건물주가 변호사하고 짜고 나를 속인 거라고. 그 공증 받았던 거 있지? 그게 알고 보니 계약이 끝나도 보증금을 못 돌려받게 되어 있더라고. 아는 친구 통해서 알아봤는데, 잘 모르는 사람 등쳐먹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더라."


"제가 계약 전에 분명히 계약서 내용이 맞는 건지 다시 좀 보라고 말씀 드렸었잖아요. 그럼 아버지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넙죽 도장을 찍은 거예요? 몇억씩이나 되는 사업을 하면서? 그리고 공증 받으면 사기 당할 일 없다면서요!"


"아니 나는 그게… 계약 내용을 지켜주는 건 줄 알았지."


말문이 막혔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아버지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침묵을 선택했다. 유리 벽 옆의 타이머는 무정하게 깎여 내려가고 있었다.


"그럼 명의는요? 매점 아줌마 얘기는 뭐예요? 보증금 돌려 달라고 난리던데."


"세 준 거야. 건물주한테 보증금만 돌려 받으면 다 해결되는 거였어."


"아뇨, 그게 아니라요. 분명 저한테 찜질방 계약 말고 다른 건 없다고 하셨잖아요. 매점 아줌마도 그냥 다 직원이라면서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고요."


"…"


"그 계약서에 있는 제 이름이랑 도장은요? 그것도 아버지가 하신 거예요?"


또 다시 묵비권. 나는 굳게 닫혀있는 아버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자본금 있다고 했잖아요. 그동안 벌어 둔 돈으로 할 거라고. 대출 같은 것도 필요 없다고. 그래서 해드렸던 거잖아요."


"자본금은 충분했어. 세 들어온 사람들 껄로 채우면 되니까. 건물주 놈이 먹어버린 보증금만 돌려받으면 되는 거였다니까?"


"그거, 돌려막기잖아요."


"돌려막긴 뭘 돌려막아, 인마. 원래 다들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모르면 가만히 있어."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모르면 가만히 있어'… 아버지의 그 말들은 나의 3,200만 원짜리 졸업장을 다시금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계약서 그거. 명의도용인 건 아세요? 제 이름 마음대로 가져다가 쓰고 도장 찍으신 그거요. 그거 범죄라구요."


나지막이 말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저릿해진 양쪽 턱에서 으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범죄? 뭐 이 자식아? 그게 무슨 도용이냐! 내가 니 애비인데! 그리고 내가 뭐 니 이름 가져다가 나쁜 짓이라도 했다는 거야? 어? 넌 나를 니 애비로 생각 하기는 해?"


아버지는 욱하며 소리질렀다. 구태의연한 반격. 나는 눈앞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한 남자를 뒤로하고 가슴팍에 새겨진 표찰로 시선을 옮겼다. 1883. 남자의 얼굴보다 그 숫자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거기 사기죄로 들어 가 계신 거 아니었어요?"


나는 그렇게 뱉어내고는 유리 벽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방탄유리일지도 모를 단단한 벽이 아까보다 더 두꺼워 진 것 같았다.


"…아니야. 사기는 아니라고."


날뛰던 남자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당한 거야. 그러니까 지금 아는 친구 통해서 변호사도 선임 한거고. 안 그래도 너 오기 전에 변호사가 와서 얘기했었는데, 충분히 승소할 수 있대. 근데 재판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니까 판결 날 때까지는 어쨌든 여기에 있어야 하는거야."


"얼마나요."


"몰라."


"저한테도 1억 5천인가 돌려달라던데요."


"누가."


"이 점례 씨 가요. 어떤 남자한테서 전화 왔었어요."


"그 정신 나간 여자가 씨…"


"정신 나간게 아니라 원래 그 아줌마 돈이잖아요."


"그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넌 걱정 하지 마. 아빠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전화 온 놈들은 용역 새끼들이니까 상대하지 말고. 그거 다 그냥 협박이니까 신경 쓸 거 없어."


'아빠가 알아서 할게.'


언제나 전매특허처럼 내뱉던 그 말. 집안의 전기와 가스가 끊기기 직전인 상황인데도 남자는 여전히 구름 위에 자신만의 성을 쌓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또 경고장 날라왔어요. 이번엔 보니까 50만 원이 넘어요. 전기랑 가스 다 끊긴대요. 그리고 집주인한테도 월세 밀렸다고 문자 왔어요. 연락 안 받으신다고."


익숙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타이머의 숫자는 붉게 점등하며 00:00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급한대로 아빠 차 팔아라. 안 그래도 자동차 대출금 때문에 차 팔려고 아는 친구한테 물어봤었거든? 친구가 그러는데 요즘 시세로 1,500은 받을 수 있대. 남은 차 원금이 1,200 정도 되니까 갚고 나면 300은 남을 거야. 그걸로 밀린 월세랑 전기세 같은 거 내고 당분간 생활비로도 하고 그래. 그럼 될거야."


남자가 제시한 300만 원짜리 구명보트. 그걸로 어떻게든 하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당장 눈 앞으로 밀려온 1억 5천의 쓰나미에 비하면 300이란 숫자는 코웃음이 나올 만큼 하찮은 액수였다.


"애비가 이런 꼴 보여서 미안하다. 나도 잘 해보려고 한 건데…"


냉소 섞인 웃음이 식기도 전에 남자는 대뜸 나에게 사과했다. 살면서 처음 듣는 사과였다. 하지만 그 사과는 좀전의 미지근한 커피처럼, 어딘가 텁텁하고 불쾌하기만 했다. 나를 위한 사과이기는 한 걸까? 더는 들리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지?"


"네."


"그래. 그나저나… 이거 안경을 좀 바꿔야 할 거 같은데 말야."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안경 한쪽 알에는 금이 가 있었다.


"여기서 있다가 안경이 깨지는 바람에… 테까지 바꾸면 비쌀 테니까, 테는 그대로 두고 알만 갈아서 내 이름으로 넣어줘. 여기서도 밖으로 물건 같은 걸 내보낼 수 있대. 집으로 보낼 테니까 내 이름으로 다시 넣어주면 돼. 눈이 잘 안 보여서 너무 불편하다."


남자는 자신의 과오로 인해 무너진 눈앞의 아들의 인생은 보지도 못하면서, 당장 제 눈이 안 보이는 건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야. 면회가 하루에 한 번밖에 안 된다니까, 중요한 일 아니면 이제 안 왔으면 좋겠다."


그 말과 동시에 유리 벽에 붙어있던 기계에서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신호음이 울렸다. 남자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왔던 문으로 사라졌다. 철문 닫히는 소리가 쿵 하고 면회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그가 오지 말라고 해서는 아니었다.


며칠 뒤, 집에 도착한 깨진 안경을 들고 안경점을 찾았다. 투명하게 갈아 끼운 안경알은 면회소 유리 벽보다 한참이나 얇았다. 손을 대기만 해도 다시 깨져버릴 것 같았다. 이 안경알 너머로 아버지는 어떤 걸 보며 지내게 될까. 문득 궁금했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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