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증거불충분 II

by 익수정


"수감자랑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직원이 안경 너머로 힐끗하고 쳐다보며 물었다.


"아들…입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타일이 어둑한 형광등 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맡기실 물건은 없으시고요?"


"아… 네, 네. 급하게 오는 바람에…"


나는 팔뚝에 들러붙은 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대답했다. 창구 직원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고, 벽에 걸린 선풍기가 고개를 돌리며 내는 털털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수감자 번호는 1883번이시고요, 13회 9번 면회실입니다. 12시 20분 면회 시구요. 들어가실 때 신분증 보여주셔야 되고, 면회 시간 10분 전까지 대기실에 오셔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다음부터는 그냥 수감자 번호랑 신분증만 제출하시면 면회하실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건넨 주민등록증을 받아 들고 창구가 바로 보이는 앞쪽의 기다란 벤치에 앉았다. 나는 다시 한번 땀을 훔쳐낸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와 보는 구치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확인 절차를 거치던 입구부터, 면회 신청서에 적혀 있던 수감자니 영치금이니 하는 것들까지 무엇하나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익숙하다고 할 만한 게 있다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번호표 발행기 정도일 것이다. 저 번호표 뽑는 기계는 은행에서도 본 적이 있다. 구치소에서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기계에서 나오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으면, '띵동'하는 소리와 함께 창구 위쪽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 번호가 표시된다. 그러면 차례가 된 사람들이 창구 앞으로 가서는 신청서를 보여준다음 가지고 온 것들을 직원에게 맡긴다. 생필품을 싸 들고 와서 맡기는 사람도 있고,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은 봉투 더미를 건네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직원은 건네받은 물건의 내용물을 확인한 다음 플라스틱으로 된 바구니에 담아 무심하게 뒤쪽으로 넘긴다. 그러고 나면 다들 하나같이 다시 여기있는 벤치로 돌아와서는 면회를 위한 다음 기다림을 시작한다.


'띵동', '띵동'.


알림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일어나고, 다시 사람들이 자리에 앉는다. 그 때마다 끼익 거리는 의자 소리가 구치소 내에 울려퍼진다.


'아, 그런데… 지금이 몇 시였지?'


구치소 직원은 나에게 12시 20분 면회라고 했다. 문득 정신이 들어 왼손으로 고개를 돌려 손목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거기 있어야 할 손목시계가 오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렸을 리는 없다. 아마 처음부터 시계를 차고 나오지 않았을 거다. 급한 대로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창구 주변을 둘러보자 벽 한쪽에 오래된 에어컨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십 년도 더 전에 이름이 바뀌어버린 브랜드의 대형 에어컨은 덜덜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찬바람인지 아닌지도 모를 무언가를 힘겹게 내뿜고 있었고, 그 위로 커다란 아날로그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시침은 10을 가리키고 있었고, 분침은 6에 놓여 있었다. 면회 시간까지는 약 2시간여가 남아있는 셈이었다. 아무리 예약 없이 바로 찾아온 거라지만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창구 오른쪽 복도 끝에 있었다. 벤치에서도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화장실로 가는 복도에는 '구치소 소개'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 몇 점이 걸려있었다. 첫 번째 사진에는 커다란 모래 운동장과 수감소로 보이는듯한 네모반듯한 건물의 전경이 찍혀있었다. 첫 번째 사진 바로 옆으로는 샤워실과 체력 단련실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찍어놓은 사진이 걸려있었고, 그다음으로는 수감자들이 실제로 입는 옷가지를 비롯해 식사할 때 쓰는 식판과 비누, 치약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생필품들이 마치 전시라도 하는 양 걸려있었다. 빳빳하게 다려진 수감복에 반짝거리는 식판, 그리고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것 같은 샤워실의 비누… 이 모든 것들은 수감 생활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증거들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나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한 '증거불충분'의 판결처럼, 저 사진들 역시 실제의 비루한 진실을 가리기 위한 불충분의 기록에 불과했다.


전시관을 지나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 들러 땀이 엉겨 붙은 팔뚝과 손을 찬물로 씻어냈다. 이미 절어버린 티셔츠는 세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대로 두기로 했다. 다시 창구 쪽으로 돌아와 현관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주차장 벽이 태양 빛을 반사해 눈을 찔러댔고, 방금 물을 끼얹은 팔뚝에는 어느새 물기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을 지나 구치소의 정문으로 나갔다. 정문 길 건너에는 아까 내렸던 작은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구치소를 따라 난 좁다란 도로는 여전히 그늘 한 점 없이 타오르고 있었고, 산을 깎아서 낸 길을 따라 세운 회색의 높은 돌담은 눈앞의 구치소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해 감춰버리고 있었다.


얼마나 걸은 걸까.

이십 분?

삼십 분?


아니 잘 모르겠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간 건지… 무작정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돌벽을 따라 걷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등을 따라 땀방울이 하나둘 흘러내리는 감촉만이 선명하게 느껴졌고, 쉴 새 없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길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멀리 산길 굽이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아지랑이 틈새에 섞여 작은 건물 하나가 함께 피어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멈춰 선 자리에서 손등으로 이마를 훔쳐낸 다음 아지랑이를 향해 걸었다.


가까이 가 보니 멀리서 보았던 건물은 작은 카페였다. 커다란 유리문 너머에 보이는 내부는 얼핏 보기에도 좁아 보였고, 손님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나무 계단을 올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삭은 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카페 내부는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좁았고, 이 좁은 공간에 테이블 하나라도 어떻게든 더 들여놓자고 궁리를 한 흔적이 역력했다. 나는 장애물 사이를 피하듯 테이블 사이를 지나쳐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카운터에는 50대 중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줌마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기요-"


"아! 어서 오세요!"


카운터 위를 노크하듯 조심스레 두드리며 부르자 아줌마가 화들짝 깨며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영업하시는 거죠?"


"아~ 네네. 영업해요, 영업."


"저… 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손가락으로 메뉴판에 적힌 글자를 가리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 블랙커피 말씀하시는 거죠?"


"아, 네. 맞아요."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아니면 차가운 걸로 드릴까요?"


"아이스로요."


"아~ 맞다 맞다, 아이스라고 하셨지~ 내 정신 좀 봐, 들어놓고도 까먹었네. 아유~ 제가 가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걸 아직 잘 몰라요~ 호호호. 자리로 금방 갖다 드릴께요~ 거기 앉아 계세요~"


나는 지갑에서 눅눅해진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카운터 너머로 건넸고, 아줌마는 비린내 나는 동전 몇 개를 거스름돈으로 건넸다. 동전을 받아 들고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카운터 앞에 딱 달라붙어 있는 테이블 자리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블랙커피… 라…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엄마는 항상 아메리카노를 블랙커피라고 했다. 그럼 아마 저 아줌마도 엄마랑 비슷한 연배겠지… 카운터 너머로 흘끗하고 주방 안쪽을 보니 아줌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디마다 주름이 잡힌 손가락은 커피 머신의 버튼 위에서 매번 머뭇거렸고, 다른 한 손에 든 머그잔은 손잡이가 아닌 반대쪽을 쥐고 있어 당장이라도 잔을 떨어트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나는 그 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지금 나에게는 1억 5천만 원의 진실을 찾기 위한 일보다 저 위태로운 머그잔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대한 문제였다. 하지만 차마 그 끝을 지켜보지 못한 내 두 눈은 이내 다시 카페 안쪽으로 시선을 옮겨버렸다. 카페 구석에는 먼지가 쌓인 화분이 놓여있었고, 테이블 위의 빛바랜 메뉴판은 온 힘을 다해 귀퉁이를 비틀어대고 있었다. 순간 찜질방 입구에 놓여있던 화환과 창고의 낡은 비품 장부가 떠올랐다. 실패가 예정된 공간 특유의 적막함. 적막함 속에서 찜질방의 퀴퀴한 습기와 아버지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시선을 어디로 향하든 도망갈 구석은 없었다.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쉰 다음 의자에 등을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테이블 위에는 어느새 잔 하나가 놓여있었고, 얼음이 녹아 가장자리에 물방울이 맺힌 잔 속에는 검은색도 갈색도 아닌 미지근한 액체가 담겨있었다. 아줌마는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었고, 다른 손님 또한 보이지 않았다. 달라진 건 나와 눈앞의 액체뿐이었다. 액체가 든 잔을 들어 한 입 머금자 밍밍하고 텁텁한 쓴맛이 혀끝에 남았다. 커피라고 하기에도, 물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맛. 세상은 언제나 나에게 이런 식으로 불충분한 증거만을 내밀었고, 그 대가로는 1억 5천이라는 확실한 형량을 선고했다.


잔을 내려놓고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잠들어있는 아줌마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일 텐데 고개가 꺾인 목덜미는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차갑게 식은 팔뚝 위로는 소름이 돋았다. 양손으로 팔뚝을 비비며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끈적한 열기가 폐 깊숙한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다시, 구치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이전 05화5장: 증거불충분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