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유죄인간

by 익수정


“차 키 좀 주시겠어요?”


검은색 세단 앞에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를 발라 고슴도치처럼 딱딱하게 뻗친 머리카락에서 인공적인 냄새가 풍겼다.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차 문을 열어둔 채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돌리고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위이잉, 탁. 기계적인 소음이 주차장을 긁었다. 서너 발짝 뒤로 물러나 그 광경을 지켜봤다. 주차장의 지열이 뒤꿈치가 까진 운동화 밑창을 타고 올라와 발바닥을 연신 찔러댔다.


"차 상태는 괜찮네요. 주행거리도 구매 당시랑 별로 차이가 없고… 말씀드린 대로 1,200에 해드리겠습니다. 1,200도 많이 쳐 드리는 거예요, 소개받은 거라."


1,200… 100만 원이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말하던 1,500과는 커다란 거리감이 있었다.


"보니까 대출 원금이 한 1,180 정도 되네요. 직접 처리하는 건 귀찮으실 테니 저희 쪽에서 처리하고 남은 차액은 계좌로 넣어드릴게요. 괜찮으시죠?"


"네. 그렇게 해주세요."


대답은 무미건조했다. 1,200. 거기서 1,180을 빼면 20만 원이 남는다. 100만 원도 아니었다. 20만 원. 아버지가 보장한 300만 원의 구명보트는 사실 고작 20만 원짜리 종이배였다. 나는 남자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났다. 허나 그 20만 원조차 내게는 절실했다. 오히려 내야 할 이자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판국이었다.


남자는 계약서를 내밀었다. 빨간 볼펜으로 동그랗게 쳐진 항목에 순서대로 서명을 했다. 볼펜에 잉크 찌꺼기가 묻어나와 글씨가 잘 써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쓰는 바람에 서명란이 잉크로 번져있었다. 지저분한 계약서를 그대로 남자에게 돌려주었다. 남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한참을 중얼거렸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눈이 시릴 만큼 매끄러웠다. 뜨거운 햇살 때문에 살짝 현기증이 났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턱끝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저기, 선생님."


전화를 끊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층 낮아져 있었다.


"이거… 차가 묶여 있어서 판매가 안 되겠는데요."


"네?"


"건강보험공단 쪽에서 압류가 걸려있다고 나온다네요."


정적이 흘렀다. 태양의 열기가 소리마저 모두 증발시켜 버린 것 같았다.


"압류요? 그게 무슨…"


"의료보험에서 압류 신청이 들어와 있다네요. 한 400만 원 정도 된다는데… 저희 쪽에서도 압류 신청 들어와 있는 것 말고 자세한 건 알 수가 없어서요. 이게 안 풀리면 저희도 차를 가져갈 수가 없어요."

새롭게 등장한 400만 원. 20만 원의 안도는 400만 원의 압류라는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계산기는 이미 고장 난 지 오래였다.


"대출도 이자가 쎈 곳에서 받으셨던데, 빨리 압류 풀고 파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일단 여기에 입금받으실 계좌번호만 좀 적어주세요. 해결되면 연락 주시고요."


남자는 건네받았던 차 키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고는 주차장을 떠났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차 키는 어느새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주차장 한가운데 버려진 검은색 세단은 이제 자동차가 아니라, 내 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쇳덩어리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건강보험공단. 그곳에 가면 이 부조리한 숫자 400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초점 나간 사진처럼 흐릿하게 지나갔다. 주머니 속에 든 10만 원짜리 봉투는 어느새 땀에 젖어 눅눅해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건강보험공단 민원실 내부는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과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번호표를 뽑고 대기석에 앉았다. 한쪽 벽면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하트모양의 로고가 보였다. 방문객은 많지 않았다. 뒤쪽 의자에는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가 앉아 있었고, 앞쪽에는 한 아저씨가 엎드리는 듯한 자세로 창구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저씨의 허리춤에는 차 키 뭉치가 매달려있었다. 아저씨가 짝다리를 바꿔 짚을 때마다 차 키 뭉치가 엉덩이를 따라 흔들렸다. 주차장에 버려두고 온 자동차 하나가 떠올랐다. 내 목을 죄는 시커먼 쇳덩어리. 아버지도 늘 저렇게 차 키를 덜렁거리며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하곤 했다. 그 촌스러움만이 적막으로 채워진 민원실의 유일한 활기였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안경을 낀 직원이 흘낏 올려보며 물었다.


“자동차에 압류가 걸려 있다고 해서요.”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나는 안경 너머의 눈동자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유죄를 선고받은 죄인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대성 24시 불가마 사우나 맞으시죠? 4대 보험료가 체납된 게 있으시네요.”


“4대 보험료요?”


“네. 대성 사우나 이름으로 사백, 이십, 칠만, 팔천, 육백, 이십 원 체납되어 있으세요. 압류 신청은 그거 때문에 된 거고요.”


직원이 금액을 또박또박 읊었다. 대성 사우나. 한 남자가 화려하게 말아먹은 과거의 잔해들이 현실의 숫자가 되어 나를 덮쳤다.


“그리고… 이 민호 씨 이름으로 건강 보험료 87만 원 미납된 것도 있으시고요.”


“네?”


“근데 이건 압류가 들어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미납 금액이세요.”


머릿속의 회로가 타버린 듯 정적이 찾아왔다. 내 이름으로 얼마를 더 저질러 놓은 걸까. 놀라움은 이미 한계를 넘어 무감각에 이르렀다. 창구 너머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분납 같은 것도 되나요?”


나는 떠밀리듯 대답하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틈나는 대로 편의점과 고깃집, 술집을 전전하며 모은 500만 원. 호주의 새파란 바다와 새로운 삶을 꿈꾸며 쌓아 올린 나의 시간이, 지금 저 모니터 속 숫자 몇 개에 정확히 들어맞고 있었다.


“가능하긴 한데… 압류는 완납을 하셔야만 풀려요.”


직원은 무심하게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완납. 그 단어가 미지근한 공기 속을 떠다녔다. 이걸 내지 않으면 주차장의 차는 고철 덩어리로 전락할 것이고, 대출 이자는 매일같이 내 목을 조이는 밧줄이 될 터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 구치소에 있다. 모든 빚의 이름표는 이제 내 가슴팍으로 옮겨붙었다.


지갑 속에 있는 체크카드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편의점 냉장고의 서늘한 공기, 고깃집의 기름진 열기, 술집의 정신없는 소음까지 나의 대학 생활 모두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500만 원은 나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이 쓰레기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비상구를 내 손으로 닫아야 했다.


“선 생 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음절마다 끊어 부르는 선생님이라는 딱딱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지금 다 낼게요. 일단 압류된 것만요.”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띡.


그 짧은 소음과 함께 6년 남짓한 나의 시간이 영수증 한 장으로 치환되었다.


“다 되셨어요. 압류는 오후 중으로 풀릴 겁니다. 여기 영수증요.”


손에 쥔 종이 쪼가리가 미지근한 바람에 풀럭거렸다. 건물을 나오자 지독한 태양이 다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공단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다른 번호의 버스가 3번 정도 더 지나간 뒤에야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딜러에게 압류를 풀었다는 문자를 보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먼지 낀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쏜살같이 사라지는 거리의 풍경이 호주의 바다와 함께 희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곰팡내가 코를 자극했다. 다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거라며 모아두었던 아버지의 ‘유품’은 여전히 거실 한복판을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그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낡은 가죽 소파가 땀에 절은 내 살등을 쩌억 하고 잡아끌었다.


“사람 사는 집인가, 이게.”


손등으로 가린 얼굴 틈새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그동안 벽시계의 뻐꾸기가 몇 번 울었다. 삐이- 하고 이명이 들렸다. 초점 없는 시선이 천장을 헤맸다. 흐릿해진 시야 속에 천장까지 퍼진 곰팡이가 보였다. 곰팡이를 응시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사방이 어둑해진 뒤였다. 오후 내내 잠식당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옷은 식은땀에 젖어 축축했고, 소파 가죽과 맞닿은 살갗은 끈적였다.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 알람 메시지만이 희미한 빛을 내며 깜빡이고 있었다.


딜러에게서 세 건의 부재중 통화와 문자 하나. 집주인에게서 온 부재중 통화 두 건이었다.


먼저 딜러의 문자를 확인했다. 잔금을 처리하고 차액을 입금했다는 내용이었다. 통장 앱을 켜니 입금 내역에 200,000이라는 숫자가 찍혀있었다. 300은 남을 거라던 그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사라져 버린 280만 원을 뒤로하고 확인했다는 짧은 답장을 보낸 뒤, 곧바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민호 씨. 월세가 밀린 지 벌써 3개월이라 전화했었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정중하지만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처리하신다고 하셨는데 지금 사정이 생기셔서…”


“언제쯤 가능할까요?”


여자가 물었다. 말투는 여전히 단호했다. 나는 언제쯤이라는 질문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 음… 저기, 죄송한데… 사실 지금 아버지가 구치소에 계시거든요. 제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한 달 치씩이라도 갚을게요. 조금만 더 봐주실 순 없나요?”


비굴한 부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수화기 너머로는 긴 침묵만이 들려왔다.


“민호 씨 사정은 알겠는데요, 아버지께서 전에도 여러 번 이러셨거든요. 하도 사정하시길래 제가 봐드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요… 다 내실 수 있는 거 아니면 방을 좀 빼 주셨으면 좋겠어요. 계약서대로 3개월 연체면 해지 사유입니다. 아시죠?”


“예…”


“이번 달 말까지는 집을 비워 주셨으면 해요.”


더 이상 매달릴 여지가 없었다. 알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깜깜한 거실에서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곰팡이가 핀 천장이 나를 향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눈을 감자 뜨거운 물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기가 밴 뺨을 닦아내고 몸을 일으켰다. 발에 족쇄가 채워진 듯 걸음마다 몸이 무거웠다. 부동산 계약서를 찾아야 했다. ‘유품’이라는 이름의 쓰레기 더미 속을 삼십 분 넘게 뒤졌다. 옷장 서랍 구석에서 누렇게 변색된 서류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년 전 망한 핸드폰 매장 계약서부터 생선 트럭 납품 확인서까지, 실패한 삶의 역사가 그곳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다. 서류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먼지 냄새가 쓰레기 더미 위에서 풀풀거렸다. 부동산 계약서는 서류 더미 후반부에서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보증금 1,500에 월세 80만 원. 계약자는 내 이름이었다. 서명란에는 기억에도 없는 인감도장이 붉은 낙인이 되어 찍혀 있었다. 아버지는 내 이름으로 이 집을 빌렸고, 당당하게 월세를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는 부동산 계약서 아래에 깔려있었다. 귀퉁이가 찢어진, 오래된 종이 한 장에.




채무변제확인서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채수 변제 확인서 작성일로부터 5개월 이내까지 원금 삼천오백만 원과 이자 삼천만 원을 합하여 총 육천오백만 원 5개월 동안 법정 이자를 더하여 채권자에게 상환하기로 하며 채무자, 채무자 아들(이 민호) 명의로 공증하여 준다.

본 공증인은 위 채권자 채무자들이 제시한 운전면허증에 의하여 그 사람이 틀림없음을 인정하였다. 촉탁에 관한 대리권은 본인의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위임장에 의하여 이를 인정하였다.

본 공증인은 이 증서를 열석자들에게 읽어주고, 열람시켰던바 열석자들이 이 증서의 작성내용에 이의가 없다고 승인하고 각자 서명 날인하였다.


촉탁인(채권자) 박 상준

촉탁인(채무자) 이 범재 의 대리인 겸

촉탁인(연대채무자) 이 민호 의 대리인 박 상준


이 증서는 20XX년 8월 17일 이 사무소에서 작성하였다. 같은 날 본 공증인은 위 촉탁인 들의 청구에 의하여 정본은 채권자 박 상준에게 등본은 채무자 이 범재에게 각 1통씩 교부한바, 각자 이를 수령하였다.




20XX년. 내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 나의 세상은 이미 그때부터 어느 공증 사무소의 낡은 책상 위에서 팔려 나갔다. 뻐꾸기시계가 다시 한번 정적을 깨고 울부짖었다. 희끄무레한 형광등 불빛이 몇 번인가 깜빡였다. 나는 여전히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적막이 내려앉은 방 안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새까만 구석에서 곰팡이 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전 08화8장: 아빠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