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씨발. 근데 아빠는 뭐 땜에 들어간 건데?”
동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진호에게 이 상황은 일상을 방해하는 불쾌한 변수일뿐이었다. 비극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찜질방 보증금 때문에 그래. 1억 5천 정도.”
건조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1억 5천? 좆됐네?”
무심한 대답이었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진호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 속 현란한 게임 화면에 꽂혀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씨팔 내가 해 주지 말라니까 그걸 왜 해줘가지고… 어휴… 형도 노답이다 진짜, 노답.”
진호는 나에게 명의를 빌려주지 말라고 경고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동생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기억을 재조립하고 있었지만, 굳이 대꾸하지는 않았다. 바로잡을 의욕조차 없었다.
“집주인이 이번 달까지는 방을 빼달래.”
“뭔데? 뭔 갑자기 이번 달까지야. 한 달도 아니고 2주밖에 안 남았잖아. 돈도 없는데 어디로 가라고.”
“월세가 너무 자주 밀렸다더라고. 아무튼 이사 갈 집은 내가 알아서 찾아볼게.”
“아, 몰라. 됐어. 같이 안 살 거야.”
진호가 짜증을 내며 선언했다.
“안 그래도 나갈라고 했어. 어차피 잘됐네, 뭐. 보증금이나 대줘. 요새 뭐 500이면 원룸 같은 거 찾을 수 있더만.”
“그건 아버지한테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
“아니 어차피 거기 들어가 있다매. 아빠가 거기서 뭐 어쩔 건데?”
진호의 말이 맞았다. 구멍 뚫린 구명보트에 굳이 동생까지 태울 이유는 없었다.
“어… 알았어. 밀린 월세 내고 나면 한 1,200 정도 남을 거 같으니까 거기서 500 보태줄게. 그걸로 방 구해.”
“어. 그럼 짐은 내 거만 싸면 되지?”
“응.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동생은 대답 대신 목에 걸쳐둔 헤드셋을 다시 귀 위로 덮었다.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닫힌 방문 너머로 “얘들아, 나 좆됐다, 씨발.”이라며 게임 속 친구들에게 중계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다시 거실의 적막 속으로 밀려났다. 베란다 창밖으로 누런 가로등 불빛이 번져 있었다. 그대로 내 방으로 돌아와 매트리스 위에 몸을 뉘었다. 골목 어딘가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는 배기음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 위해 계약서에 쓰여 있던 부동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구치소 면회 예약을 잡았다. 이사 소식을 핑계 삼아 어제 발견한 ‘채무 확인서’에 관해 물어볼 셈이었다. 다행히도 오늘 날짜로 먼저 면회를 예약한 사람은 없었다.
아,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전에 나는 첫 면회 이후 아버지를 보러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착각이었다. 정확히는 이날 면회 이후부터다. 사소한 기억의 오류지만, 나는 누군가처럼 거짓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정직은 내가 가진 비참하지만 유일한 자존심이다. 적어도 그것만큼은 지키고 싶다.
초록색 시트지가 내부를 틀어막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누런 종이들이 벽면을 가득 채운 사무실이 나타났다. 사무실 가장 안쪽에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의 아줌마가 의자에 파묻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문 앞에 서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저기요.”
아까보다 큰 목소리로 아줌마를 불렀다. 그러자 아줌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로 오셨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아줌마가 대답했다.
“로얄 아파트 502호인데요. 방을 이번 달까지 비워달라고 해서요…”
“502호? 아, 아드님이시구나?”
아줌마는 뭔가 생각난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안 그래도 어제 집주인분께 얘기 들었어요~ 아버지가 구치소 들어가 계신다고… 젊은 나이에 고생이 많겠어. 여기 좀 앉아요.”
아줌마는 사무실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소파 두 개를 가리켰다. 아줌마가 권한 소파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책상 쪽에서 아줌마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왔다.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펭귄이었다.
“젊은 사람이 딱하기도 하지… 어쩌다 그런 일을 겪어가지고…”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아줌마가 말했다.
“내가 아버지가 참 인상도 좋고, 말씀도 잘하셔서 기억하고 있거든. 어디 가서 나쁜 일 하실 분은 아니시던데… 어쩌다 안 좋은 일에 엮이셨나 봐요, 주님도 무심하시지… 그때 계약할 때도 아버지가 하~도 사정사정을 하셔가지고 내가 복비도 안 받고 해 드렸었거든.”
“아… 네…”
“세 분이서 살고 계시죠? 아버지가 아드님이랑 동생분도 한 분 있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아, 네. 맞습니다…”
“그럼 지금 딱 좋은 방 하나가 있거든? 남자분 세 분이서 지내기에도 참 좋아요. 지금 사는 아파트 뒤에 있는 빌라 알죠? 거기에 방 세 개짜리가 하나 나왔거든. 집주인이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신데 이분도 참 욕심도 없고 하신 분이라 월세도 안 올려서 받으시고 그래요. 가격도 너무 좋아, 1,000에 60. 이 가격이면 어디 가서도 못 구해요. 어때요? 여기 집주인이…”
“아, 말씀 중에 죄송한데… 동생은 따로 나가서 살기로 했습니다.”
나는 아줌마의 말을 끊었다. 애초부터 셋이 살 집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줌마는 내게 묻지도 않았다. 세 사람이 같이 지낼 방을 구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그저 쉴 새 없이 제 할 말만 쏟아내고 있었다.
“아, 그래요?”
내 대답에 목소리의 온도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아줌마는 입 안에서 딱, 딱 소리를 내며 껌을 씹기 시작했다. 잠시, 불쾌한 정적이 흘렀다.
“그럼, 동생분은 원룸으로 알아보시는 건가요? 동생은 어느 쪽으로 가신대? 여기 가까운 데에 원룸도 괜찮은 거 많거든~”
아줌마는 소파 테이블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때묻은 파일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검지에 침을 묻혀가며 페이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이 두꺼운 파일 위를 분주하게 훑어댔다.
“아… 그런데 동생은 자기가 따로 알아본다고 해서요.”
“아~ 그래요?”
아줌마는 들고 있던 파일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딱, 딱 거리는 껌 소리가 아까보다 빨라져 있었다.
“에휴, 근데 따로 사는 거보다는 가족이 다 같이 사는 게 돈도 덜 들고 좋기도 더 좋을 텐데… 그럼 찾고 있는 게 얼마짜리예요?”
“보증금 500…정도요.”
“500? 어휴 요샌 그런 푼돈으로는 방 두 개짜리는 못 구해요~”
아줌마가 손사래를 쳤다. 두꺼운 손가락 마디에 끼워진 커다란 보석 반지가 허공에 휘날렸다.
“아, 방 두 개짜리까지는 필요 없구요… 방은 하나만 있으면 돼요.”
“투룸? 투룸이면… 어디 보자… 음…”
아줌마는 다시 파일을 집어 들고는 뒤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깍지 낀 두 손으로 손등을 문지르며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여기 딱 하나 있긴 하네. 그런데…”
‘그런데’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줌마는 다시 한번 ‘딱’하고 크게 소리 내어 껌을 씹었다.
“근데 여긴 별로 추천하고 싶지가 않네요. 안 그래도 저희랑 오랫동안 계약하신 손님인데 이런 방 보여드리기는 좀 그래서… 그냥 동생분한테 말씀드려서 좀 전에 1,000짜리 방으로 가는 게 어때요? 열쇠도 지금 저한테 있어서 바로 보러 갈 수 있는데… 정말 좋아요, 그 방.”
아줌마의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아줌마의 권유는 집요했다.
“아뇨, 반지하라도 괜찮습니다. 혹시 그 방도 지금 볼 수 있나요?”
“아, 네. 물론이죠.”
아줌마는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뚱거리며 책상으로 걸어가더니 서랍을 한참 동안 뒤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란한 소리에 비해 아줌마의 몸뚱이는 너무나도 느리게 움직였다.
“따라오세요.”
열쇠 꾸러미를 챙겨든 아줌마가 말했다. 말투는 이미 사무적으로 변해있었다. 아줌마는 나를 지나쳐 먼저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꾸 없이 그 뒤를 쫓았다. 딱, 딱하는 파열음이 침묵이 고인 골목길을 도려내고 있었다.
아줌마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학교 뒤편의 좁고 지저분한 골목이었다. 눈앞에는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름한 빌라 하나가 서 있었다. 담벼락엔 고양이들이 헤집어놓은 쓰레기봉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지독한 여름 더위 속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이쪽이에요.”
아줌마는 빌라의 지하 계단을 가리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가만히 그 뒤를 따랐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투박한 철문 하나가 나타났다. 아줌마는 열쇠 꾸러미에서 집 열쇠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녹슬고 비틀린 금속음이 지하실의 정적을 찢었다.
도착한 방 안은 이미 곰팡이가 점령하고 있었다. 퀴퀴한 곰팡내가 폐 깊숙이 박혔다. 장판이 벗겨진 바닥은 콘크리트가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 있었고, 거실 겸 부엌의 유일한 창문으로는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쓰레기 더미가 보였다. 먼지 쌓인 창문을 열자 썩은 악취가 뜨거운 열기를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구역질이 올라와 황급히 창을 닫았다.
“어떠세요? 가격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텐데.”
등 뒤로 들려오는 아줌마의 목소리.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지옥 같은 공간을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아줌마의 말에 순간 적개심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표정을 지웠다. 분노조차 돈이 드는 일이었으니까.
“아버지께 말씀드려 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러세요, 그럼. 말일까지는 방 빼시는 거죠?”
“아, 네. 집주인이 그렇게 해 달라고 했으니, 거기에 맞춰야죠…”
“네, 그럼 방 빼시는 날 오시면 돼요. 전기요금이나 가스비 같은 건 이삿날에 처리하시면 되구요.”
아줌마는 내 대답 따위는 기다리지도 않고 서둘러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나는 혹시라도 내가 살게 될지도 모를 건물의 외관을 눈에 담았다. 지하실에서 마주친 곰팡이가 무너져가는 벽돌 틈새마다 이끼처럼 돋아나 있었다. 주변에는 방금 소개받은 집과 비슷한 고만고만한 높이의 빌라와 주택들이 소나무 껍데기마냥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었다. 그 꼭대기 너머로는 새로 생긴 아파트의 마천루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풍기는 썩은 내는 한층 더 지독해졌다. 담벼락 위에서 나를 구경하던 고양이가 '야옹'하고 울더니 이내 발바닥을 핥기 시작했다. 무심한 폐허를 뒤로하고 큰 길가로 나가 버스에 올랐다. 이제 아버지라는 이름의 채무자를 만날 차례였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과 대조적으로, 구치소 내부는 어두웠다. 형광등을 아무리 켜놓아도 그 특유의 칙칙하고 눅눅한 공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예약 덕분에 면회는 순조로웠다. 두꺼운 유리 벽 너머의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핀잔부터 늘어놓았다.
“면회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오냐. 급한 일 아니면 오지 말라니까.”
“중요한 일이라서 온 거예요. 집주인이 이번 달 말까지 나가래요.”
단도직입적으로 내뱉었다. 아버지는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다는 듯 건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 쩝… 이사할 집은? 거기 부동산 아줌마한테 얘기하면 알아서 구해줄 텐데?”
“이미 다녀오는 길이에요.”
“그래? 그럼 아줌마가 소개해 준 대로 해.”
“반지하를 보여주던데요.”
“반지하? 반지하는 뭔 반지하야. 1,500이면 멀쩡한 집 쌔고 쌨을 텐데.”
“진호가 따로 나간대요. 그래서 원룸 보증금으로 500 보태주기로 했어요. 월세 밀린 거 까고 나면 700 남아요.”
아버지는 혀를 찼다.
“거 새끼는 꼭 말 안 듣고… 아빠가 안된다 그래!”
“그럼 직접 말하세요. 여기 왜 들어왔냐고 묻길래 다 얘기했어요. 거짓말할 힘도 없어요.”
“그래도 아빠 체면이 있지… 그걸 다 말하면 어떡하냐…”
체면. 그 단어가 들리는 순간, 온몸의 진이 빠졌다. 더는 대꾸할 가치가 없었다. 익숙한 침묵이 유리 사이를 메웠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버지였다.
“…차는 팔았냐?”
“네. 1,200 받았어요.”
“1,200? 1,500은 받아야 된다니까?!! 에라이 답답한 놈의 새끼야. 그게 얼마짜린데 1,200을 받아!”
“시세가 1,200이에요.”
“1,500이야.”
“누가 그러는데요…”
“차 잘 아는 친구가 1,500이라고 했다니까!”
“잘 받아야 1,200이에요. 지금 시세가 그렇다고요.”
“니가 속은 거겠지, 이 멍청한 놈아. 어휴… 세상 물정도 모르고… 답답하다, 답답해.”
“미숙 아줌마 소개로 팔아서 겨우 그만큼 받은 거예요.”
혀를 차며 힐난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미숙 아줌마의 소개로 팔았다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아버지는 꼬리 물기를 멈췄다.
“그리고 차 파는데 4대 보험료 체납으로 압류 걸려있어서 그것도 제가 냈어요. 420이요. 그리고 제 이름으로 87만 원인가 의료보험이 체납되어 있던데 그건 뭐예요?”
굳게 닫힌 아버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 이어나갔다.
“박상준은 누구예요?”
유리 너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박상준이가 뭐.”
“방에서 계약서 찾다가 얼떨결에 찾았어요. 채무 어쩌고 하던데, 제가 보증인이더라고요?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이것도 또 명의 도용이잖아요.”
“뭐? 너 내 방 뒤졌냐? 너는 남의 방을 허락도 없이 막 그렇게 뒤지고 그래? 도둑놈이야?”
“집주인이 나가라는데 그럼 계약서를 찾아봐야지, 안 찾아요? 그럼 제가 아버지 방에 들어갈 때마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매번 허락받고 들어가야 돼요? 급해 죽겠는데? 중요한 일 아니면 오지도 말라면서요. 그리고 도둑놈이요? 지금 상황이 이런데 미안하지도 않으세요? 양심이라는 게 있긴 해요?”
비겁한 침묵은 계속되었다. 불리하면 입을 닫고, 아쉬우면 화를 내는 그 역겨운 생존 방식. 더는 견딜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계세요. 아버지 물건 다 갖다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아시구요. 말 안 하면 다 버릴 거예요. 나도 몰라요, 이제.”
“버린다고?”
“네. 버릴 거예요.”
“거… 내 옷이랑 가구 같은 건 좀 챙기면 안 되냐? 등산용품이랑…”
“가구는 못 가져가요… 지금 어디로 이사 갈 줄 알고 그러시는데요… 장롱에, 침대에, 소파에 그걸 어떻게 다 챙겨요. 들어갈 데도 없어요.”
아버지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럼… 가구는 고가구 상에 팔고, 내 꺼는 그 옷이랑… 방에 있는 서류들이랑 등산용품만 챙겨. 가구는 지금 팔아도 돈 좀 될 거야.”
“서류는 오래된 것도 엄청 많던데… 그걸 다 챙기라고요?”
“알아서 해, 그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비겁한 인간. 아니, 비겁하다는 말마저 칭찬일 인간.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면회소를 떠났다.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는 타이머의 시간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면회소를 나와 바로 버스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미숙 아줌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호야, 아줌마가 급해서 그런데 하나만 물어볼게.”
‘여보세요’라는 인사말을 하기도 전에 아줌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혹시 오늘 니가 면회했니? 아줌마가 면회를 하려고 하는데 누가 먼저 했다고 해서… 그래서 지금 누가 한 건지 알아보고 있거든.”
“아, 네… 제가 방금 다녀오는 길이에요.”
“그랬구나… 앞으로는 면회 가기 전에 아줌마한테 먼저 얘기해 주면 안 될까? 아빠한테 할 말 있으면 아줌마가 대신 전해줄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수화기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민호야 부탁 좀 할게. 아줌마가 민호 좋아하는 거 알지?”
부탁을 가장한 통제. 미숙 아줌마의 목소리는 점막처럼 끈덕지게 귓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까 본 반지하방 창문 너머의 쓰레기 더미가 떠올랐다. 옆구리가 터진 봉투에서 흘러나온 그 썩은 냄새가 버스 안까지 따라온 것 같아 구역질이 났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버스는 이미 동네 어귀를 지나고 있었다. 서둘러 하차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개인적인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2주. 그 안에 이 지옥의 악취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나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동산의 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갔다. 그 쓰레기 구덩이만큼은, 절대로 나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