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마지막 기회

by 익수정


찜질방.


이걸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찜질방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하지만 사장은 나였다. 그걸 사장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던 중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건설 인부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건설 인부 일을 하게 된 것은 그쪽에 소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들이 건설 인부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편견처럼, 잇따른 사업 실패로 말미암아 아버지에게는 남아있는 선택지라는 게 그것뿐이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집은 사업 실패라는 꼬리표만 떼어내고 보면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아, 아버지랑 엄마랑 이혼한 걸 빼먹었구나.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가정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니 여러분들 역시 그냥 넘어가주었으면 한다. 요새는 이혼 같은 건 흠도 아니라고들 하잖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이 이야기의 무대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평범한 가정의 저녁 시간으로 넘어간다. 어느 때처럼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방에 들어와 유행하는 PC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조용히 내 방 문을 두드리며 할 말이 있으니 '이야기' 좀 하자고 방 문 건너에서 말을 걸어왔다. 평소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아버지였기에 처음엔 조금 의아했지만, 그래도 모처럼 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어 준 것이니 아들인 나로서도 딱 잘라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해서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절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래서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가 보다.


방 문을 열어 주자 아버지는 부엌에서 식탁 의자를 하나 가져오더니 컴퓨터 앞의 내가 안고 있는 의자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라는 걸 꺼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내가 일을 하는 곳 근처의 목이 아주 좋은 편인데, 얼마 전에 큰 찜질방 하나가 매물로 나왔더라. 그런데 건물주 놈이 –아버지는 정확히 ‘놈’이라고 표현했다. 절대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워낙 시원찮은 놈이라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사람들이 찾지를 않는다. 거기를 조금만 손 보면 바로 대박이 날 게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신용불량자 상태라 임대계약을 할 수가 없으니 너에게 대신 부탁을 좀 하고 있는 거다. 도와주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사업자 등록을 내기 위해 내 명의를 빌려 달란 소리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 정확히는 신용불량자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살짝 당황해 버렸다. 평소 우리 집 생활이 어려운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신용불량자였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이었다. 신용불량자, 그리고 명의…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저 두 단어가 들어가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수식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의 내가 아무리 경험이 없는 대학생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뉴스만 보더라도 충분했다. 잘 풀리지 않는 사업, 사채업자, 길바닥에 나 앉은 가족…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그 드라마의 주인공 역이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계속해서 지금 하려고 하는 사업이 얼마나 괜찮은지, 주변 상권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고 교통은 어떤지 따위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내가 잠자코 듣고 있자 아버지는 신이 났는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사업이 잘 되고 난 다음 본인이 다른 사업을 하게 되었을 때, 나에게 찜질방을 물려주고 난 뒤의 원대한 계획까지도 나에게 말해 주었다. 아버지의 구상 안에서 찜질방의 성공은 이미 이뤄진 거나 다름없는 거였고,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마음속은 이미 지금의 찜질방이 아닌 다른 사업으로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버지의 그 '꿈'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들렸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찜질방조차 아직 시작도 안 해봤는데? 만약 한다고 하더라도 난 그저 월세만 밀리지 않고 낼 수 있어도 그걸로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나는 사업의 시작부터, 그러니까 사업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부터가 서로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에게 절대 설득당하지 않겠다. 이번에는 약해지면 안 된다. 그렇게 결심하고 보니 계속 이어지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고, 지루하다 못해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서서히 정신이 몽롱해짐과 동시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번이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해서 잘해보고 싶다. 그리고 잘 됐으면 좋겠고.”


인생의 마지막 기회. 꾸벅거리며 졸고 있던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또렷해져 가는 시야로 상기된 붉은 얼굴이 제일 먼저 보였고, 그다음으로 깊게 패인 주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흔적을 조각해 넣은 듯한 아버지의 얼굴은 어느 한 남자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지금 제 아들 앞에서 삶에 대한 간절함, 그 절박함을 담아 ‘마지막 기회’라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보였다, 정말로. 그래서 나는 원래 하려고 했던 대답과는 달리, ‘아버지를 도와주겠다’는 뜻을 비췄다. 그러자 아버지는 갑자기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처음 보는 아버지의 반응을 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이게 과연 잘한 일일까 하는 묘한 걱정과 함께.


그로부터 일주일.


나는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동네에 자리 잡은 변호사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임대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서류를 작성하는 내내 서류 내용과 아버지를 번갈아 보며 ‘이게 맞는 거냐, 확실한 거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아무 문제없으니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모습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었는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건물주라 소개받은 노인이 ‘허허허’ 하고 웃으며 끼어들었다.


“젊은 친구, 이거는 그냥 형식적인 거야. 걱정하지 말고 그냥 쓰면 돼.”


나는 세상물정 모른다는 듯한 그 말투에 어쩐지 기분이 나빴지만, 괜히 발끈하기라도 했다가는 계약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잠자코 계약서 작성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을’의 입장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인감도장을 찍는 것으로 계약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것으로 얼떨떨하기만 했던 생에 첫 계약서 작성이 끝이 났다. 이후에는 공증인가 뭔가 하는 걸 받았는데, 아버지 말로는 계약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일종의 보험 같은 거라고 했다. 그래야 떼어먹힐 일이 없다나 뭐라나… 그때의 난 아무것도 몰랐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계약 이후의 개업 준비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니, 진행되었다기보다는 진행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찜질방을 찾아갔을 때, 가게는 이미 계약서와는 상관없이 대대적으로 수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고, 간판을 비롯한 홍보 전단들도 미리 제작된 상태로 창고 안에 보관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한가운데에 오픈 날짜까지 커다랗게 박아 넣기까지 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사업 계약서를 쓰기 전부터 이미 건물주에게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아버지에게 사업을 도와주겠다는 허락을 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이미 이 사업을 벌여놓았던 거다. ‘이거는 그냥 형식적인 거예요.’라며 비웃던 -그 남자가 정말로 비웃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 그 웃음은 정말로 비웃음처럼 들렸다- 건물주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한창 수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찜질방의 한복판에 서서 분주히 오고 가는 공사 인부들을 보며, 나는 아버지가 나를 속였다는 커다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아버지에게 사업자 동의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아버지는 이미 이만큼이나 일을 벌여놓은 상태에서 대체 그다음을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었던 걸까?


화가 났다. 아버지가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보였다. 나는 씩씩거리며 한달음에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갔다. 두 칸, 세 칸씩 뛰어넘어 오르느라 숨이 찼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어요?”


사무실 문을 박차며 소리치자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여기 이 건물요. 어떻게 벌써 공사를 해요?”


“건물주한테 이미 허락 다 받았어.”


“돈은 어디서 나서요? 아버지 돈 없으시다면서요.”


“알아서 한다니까 뭐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냐. 안 그래도 마무리 공사 때문에 바쁜데 쓸데없는 걸로 까탈스럽게 굴지 좀 말어.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 모아둔 돈 있었어.”


“까탈스럽다구요? 이게 어떻게 까탈스러워요. 순서가 이상하잖아요.”


“아 그놈 새끼 참…”


“넌 그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것 좀 그만하면 안 되냐? 왜 사사건건 시비야 대체. 그리고 어차피 네가 해 줄 거였는데 순서가 뭐가 어떻다고 그래. 결과는 똑같잖어~! 그리고 이게 오히려 더 시간절약인 거야. 그리고 원래 다 이렇게 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아무리 그래도… 어찌 됐든 제 이름으로 사업자를 내는 건데 그래도 저도 최소한 알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구요.”


“권리? 뭐 이놈아? 이 자식 말버릇 봐라? 그게 애비한테 할 말이야? 권리 같은 소리 하네. 니가 뭐 사업을 알긴 해? 그렇게 너처럼 하나하나 꼬투리 잡으면 잘 되려던 일도 안 되는 거야. 괜히 초 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씩씩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에이 씨-!” 하는 소리가 사무실 안까지 메아리쳤다. 그로부터 한참을 사무실 안에 멀뚱멀뚱 혼자 서 있었다. 쿵쿵 거리며 내려가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고, 이내 전부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먼저 나가버린 사무실의 비상계단 쪽으로 따라 나가보았다. 당연하게도 아버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반복되고 있는 잿빛의 시멘트 계단을 따라 한 걸음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짜증을 일방적으로 받아내기만 했다는 사실에 왠지 비참한 기분이었다. 하루 이틀 일인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을 겪는 건 아무리 반복되어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터덜터덜. 터덜터덜. 네모난 층계를 몇 층이고 계속 내려간다. 내 옆으로는 마무리 공사에 한창인 인부들이 몇 번이고 부산스럽게 계단을 쿵쾅거리며 오르내린다. 계단 가까이에서는 규칙적인 리듬의 망치소리가 천둥을 쳐댔고, 멀리 서는 전동 드라이버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계단까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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