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프롤로그

by 익수정


“보증금은 언제 돌려주실 건가요?”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핸드폰 건너편에서 물었다. 나는 두서없이 치고 들어온 한마디에 그대로 길거리에 멈추어 서버렸다.


“운영하고 계신 찜질방, 강제집행 들어간 거 알고 계시죠?”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 민호 씨 아니신가요?”


“네, 맞는데요.”


“아버지는 이 범재 씨 맞고요?”


“네… 그렇긴 한데…“


“아버님이랑 찜질방 하시는 거, 계약 끝났으니까 보증금 돌려주시라고요.”


“네…?”


무슨 소리야 이게.


“아- 거 진짜 말귀 못 알아먹네.”


“아니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진짜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1억 5천 언제 내놓을 거냐고요.”


“네?”


1억 5천? 현실감 없는 액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저기요,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주셔야 제가 대답을 해 드리죠… 1억 5천은 또 뭐 고요…”


“아, 거 젊은 양반이 더럽게 답답하네. 여기 있는 매점 아줌마 꺼 말야, 그거 보증금 언제까지 돌려줄 거냐고 인마. 계약이 끝났으면 받았던 보증금은 뱉어내야 할 꺼 아냐. 그게 니꺼야?!”


“저기, 죄송한데 제가 지금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아버지께 여쭤보고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나는 도망치듯 서둘러 핸드폰의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아버지라고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의 단축번호를 눌렀다. 아침을 거른 탓인지 잠깐의 현기증이 느껴졌고, 다시 정신을 차린 건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던 규칙적인 신호음이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로 바뀌고 난 뒤였다.


“어- 무슨 일이야.”


“아버지 저 민호인데요, 방금 어떤 남자한테 전화가 와서는 뭐 매점 아줌마한테 줘야 할 1억 5천을 달라고 해서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나는 걱정이 된 나머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거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 용역 새끼들이 괜히 겁주려고 전화한 거야. 이 새끼들은 뭐 이런 걸 가지고 애한테 까지 전화를 하고 앉았어.”


아버지는 특유의 귀찮다는 듯한 말투로 투덜거렸다.


“강제집행이라고 하던데요? 그건 또 뭐예요?”


“신경 쓰지 말라니까.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무시해. 그 새끼들 그거 그냥 협박하는 거야, 양아치 새끼들이라.”


“정말 아무 일 없는 거죠?”


“어~ 걱정하지 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하니까.”


“그럼 찜질방엔 안 가 봐도 되는 거예요?”


“어~ 그럴 필요 없어. 그럼 아빠 지금 일 보는 중이니까 나중에 연락할 게. 나중에 얘기하자.”


“아… 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썩 기분 좋은 느낌의 통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찝찝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쩐지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혹자는 이걸 '쌔하다'라고 표현했던가…


그리고 내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자기가 할 말만 되풀이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1억 5천을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던 남자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난 지 오래였고,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고작의 일이란 배가 침몰하지 않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이민호(號)의 선장은 아버지였고, 자의였든 타의였든 간에 나는 이미 그 배 위에 올라탄 선원 나부랭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