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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길

by 온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임산부 좌석에 앉아있는 임산부를 보고 문득 출산했을 때가 떠올랐다.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이 계신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어서 그런가.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때가 떠올랐다.


첫째는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다.

아침 8시부터 유도분만을 하다가 탯줄을 감고 있는 아이가 심박수가 점차 느려져 응급제왕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진통까지 겪고 무통 주사까지 다 맞았지만,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던 내 바람과 다르게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을 하는 과정은 지금 떠올려봐도 생생하다.

그날 응급제왕으로 수술을 시작했는데,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커다란 수술조명 아래 수술대 위로 내가 스스로 올라가 누워야 했다는 것이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수술대 위로 올라가 누워 손발을 고정시키고 수술 받을 비를 했다.



수술 직전 마취를 할 때는 처음에는 하반신 마취를 했지만 결국 전신마취를 하게 되었다.


출산 후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막 태어난 내 아가를 안아보고 싶어 하반신 마취를 원했으나, 마취제가 들어가자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으로 전신마취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태어난 직후의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마취가 살짝 깼을 때 아기를 보려고 몸부림치며 겨우 봤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는데, 출산 뒤 나중에 남편이 찍어준 영상을 보니,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보여주고 있고, 마취에서 덜 풀린 모습으로 눈을 반쯤 떠 아기를 바라보는 나와 그런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었다.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나의 공황장애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26살 어린 엄마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둘째를 가지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고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원래 남편과 나의 자녀계획은 2명이었고 첫째가 동생을 너무도 원해 결국 네 살 터울로 아이를 가졌다.


만삭이 되자 출산 직전에 또다시 수술과 마취에 대한 두려움을 떠올렸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했고, 주치의에게 첫째 출산 당시에 겪었던 일에 대해서도 말을 했.



첫째 출산병원과는 다른 병원이기도 했지만, 둘째 출산은 조금 달랐다. 차가운 수술대도 아니었고 커다란 수술 조명도 없었다. 응급이 아니다 보니 급박한 상황도 아니었다. 예약을 잡고 준비하니 나도 조금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수술을 시작하고 마취를 하려 하반신 마취액이 들어갔을 때, 첫째 출산 당시에 느꼈던 느낌을 그대로 느꼈다. 숨이 안 쉬어졌다. 너무 힘겨워 숨이 안 쉬어진다고 겨우 얘기를 꺼냈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손을 잡아주셨다.

정말 신기하게도 죽을 것 같은 느낌에서 조금 견딜만한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큰 이벤트 없이 둘째를 건강하게 출산해 전신마취 없이 태어난 둘째 아이를 곧 안아볼 수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이 신기한 일을 겪고는 나도 누군가에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힘겨운 상황에서는 큰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때론 손을 잡아주는 것과 같은 작은 도움도 당사자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손을 잡아줬을 뿐이었는데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나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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