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핀 라일락을 보고 아빠 생각이 났다.
어릴 적에 아빠가 라일락 꽃을 집에 가져와 예쁜 화병에 꽃아 두곤 향이 좋다고 했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아빠는 꽃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는 항상 꽃이나 식물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독립을 하고 난 이후의 일이다.
한 번은 스투키라는 선인장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보는 것을 좋아하고 키우는 데는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정말 키우기 난이도 '하'라는 스투키마저도 오래 키워내지 못했다. 그 당시 신혼집이 친정 근처여서 종종 집에 놀러 왔던 아빠는 스투키가 시들어 있는 모습을 보더니 살려서 돌려주겠다며 화분을 가지고 가셨다.
이후 몇 개월이 지났을까. 아빠가 작은 스투키를 예쁜 화분에 심어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지난번 죽었던 스투키 옆에 새순이 나고 있었어. 그래서 그걸 좀 더 키워서 화분에 심은 거야 이번엔 한번 잘 키워봐'
(곧, 그 스투키는 다시 하늘나라로 갔다)
그때 아빠의 선물이 반가웠다. 그리고 새삼 아빠라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나와는 반대로 죽어가는 식물조차 살려냈다. 무언가를 할 때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마음을 다했다.
아빠는 식물을 대하듯 그렇게 우리를 키워냈다.
물론 그 당시 아빠들처럼 조금은 무뚝뚝한 아빠인 모습이 많았다. 표현을 많이 하거나 아주 다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딸인 나에게만큼은 다정하려 애썼던 것 같다.
돌아보면 어릴 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빠였고, 아주 희미한 기억이지만, 나중에 크면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했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린 나는 항상 아빠 배 위에 누워 있는 게 취미이고 행복이었다.
하지만 아빠와 잠시 멀어진 적도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 엄마 아빠는 이혼을 했다. 그 이후 할머니네 집에서 대가족으로 살게 되었는데, 이혼 이후 직업을 바꾼 아빠는 일에 치여 해가 뜨는 새벽에서 해가지는 밤까지 일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한집에 살면서도 이전처럼 자주 보지도 못했고 대화를 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때 나는 사춘기였고 이유 없이 아빠가 미운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이젠 그때의 아빠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조금은 원망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을 텐데, 우리에게 눈물을 보인 적도, 다른 누군가를 험담한 적도 없었고 그저 묵묵히 아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 점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준 것이 고마웠다.
청소년기를 다정하게 보내진 않아서인지, 지금 아빠랑 대화하면 종종 어색할 때가 있다. 아빠도 농담으로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우리는 각자도생이다!'라며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얘기한다.
하지만 내가 가끔 먼저 연락을 할 때면 아빠는 딸내미 무슨 일이냐며 누구보다 반갑게 전화를 받고, 종종 찾아갈 때면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 준다.
길가에 핀 라일락을 보니 문득 그런 아빠가 생각이 난다. 조만간 아빠에게 연락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