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발견하는 것

나의 열정 찾기

by 나답게 류태섭

작게 시작했던 나의 실험들

"회사 6년 차, 아침 7시의 작은 도전"

회사 생활 6년 차.

저는 그때 묘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일이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인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그 혼란 속에서 문득 후배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저와 똑같은 표정으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이.

'내가 먼저 시작해 보자.'

그렇게 시작한 게 아침 7시 30분 세션이었습니다.

일찍 출근해서 회의실 하나를 예약하고, 관심 있는 후배들을 모았습니다. "커리어 고민, 일의 의미, 나다운 삶" 같은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 그렇게 작은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4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늘었습니다.

그 시간을 준비하며 저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모든 걸 기록했습니다.

세션에서 나눴던 이야기, 후배들의 고민, 제가 느낀 점. 퇴근 후 그날의 대화를 복기하며 노트에 적었습니다. 흩어진 생각들이 글이 되고, 글이 인사이트가 되었습니다.

둘, 콘텐츠로 만들었습니다.

기록한 내용을 정리해서 강의 콘텐츠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비슷한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며, 그들이 공감해 주는 걸 보며,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셋, 발표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사내 교육이 있으면 손을 들었습니다. 부서 회의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자원했습니다. 처음엔 떨렸지만, 말하면 말할수록 제 생각이 명확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반응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방식으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2015년 11월, 저는 퇴직했습니다.


대책 없는 퇴직, 그러나 확신은 있었다

"다음 회사는 정했어?" "무슨 사업할 건데?" "계획은 세웠어?"

주변에서 물어봤지만, 저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직할 회사도, 창업 아이템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는 퇴직이었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확신은 있었습니다.

퇴직을 준비하며 몇 달간 깊이 고민했던 한 가지 질문.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영상 1개와 기획서 1장이었습니다.

겨우 그것뿐이었지만, 그 안에 제 철학과 방향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내용들이 지금 제 사업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9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빡' - 경계를 허무는 작은 단어

채용 담당자로 일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

지원자들이 본인을 충분히 탐색하지 않고 취업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이 일이 나한테 맞을까?" 이런 고민 없이, 그저 "어디든 취업해야 해"라는 조급함으로 면접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사회 선배로서 참 미안했습니다.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하고 싶다.'

그 소명을 품고 있을 때, 유영만 박사님의 '브리꼴레르',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경계 속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을.

'차이'는 '차별'을 만들고, '차별'은 '틀리다'를 만들고, '틀리다'는 '경계'를 만들고, '경계'는 '한계'가 된다.

남의 시선, 사회 통념, "이래야 한다"는 틀. 그 한계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만의 삶도, 나다운 모습도 잃어버린 채.

저는 생각했습니다.

'경계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세상.'

그 철학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빡'


빡.

이 단어 하나에 모든 게 들어있었습니다.

"가슴에 빡 들어왔다" - 긍정의 빡 "아 빡친다" - 부정의 빡
"빡빡하다" - 가득 찬 빡 "빡빡 밀다" - 비어진 빡

긍정도, 부정도, 가득 찬 것도, 비어진 것도 공존하는 단어.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이중적인 표현.

경계가 없는 공간. 그래서 오롯이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공간. 누가 뭐라 해도 나답게 살 수 있는 공간.

저는 이 철학을 담아 영상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빡. 가슴에 빡 들어왔다. 긍정의 빡. 아 빡친다. 부정의 빡. 빡빡하다. 가득찬 빡. 빡빡 밀다. 비어진 빡. 긍정도, 부정도, 가득찬 것도, 비어진 것도, 공존하는 경계가 없는 공간. 그래서 오롯이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공간. 나의 삶, 그 공간 빡. 빡. 누가 뭐라 해도 넌 너답게 살아."
https://youtu.be/wUEfbgeccuU?si=dBCzsaQAvjVUGsYW


퇴직할 때 가진 건 이 영상 하나와, 프로그램 기획서 1장. 그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방향은 명확했습니다.


무료에서 시작한 확산의 여정

퇴직 후, 저는 일단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 온오프믹스에 무료 강의 올리기

"커리어 고민 있는 분들, 함께 이야기 나눠요."

수강료 0원. 장소는 무료 공간. 신청자는... 4명.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4명이라도 진심으로 고민을 나누고, 변화를 함께 만들었으니까요. 강의가 끝나고 한 분이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야 해요."

그 말이 힘이 되어, 계속 강의를 올렸습니다.

두 번째 실험: 관악 청년이음에서 2년간 무료 강의

2년 동안 매달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무료였지만, 그 시간이 저에게는 가장 값진 배움이었습니다. 청년들의 진짜 고민을 듣고, 제 콘텐츠를 다듬고,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중 하나에, 관악구 주무관님이 직접 참여하셨습니다.

세 번째 확산: 주무관님의 제안, 그리고 일자리카페 사업

강의가 끝난 후, 주무관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습니다.

"선생님, 구에서 일자리카페 사업을 준비 중인데... 이 내용을 꼭 더 많은 청년들이 들어야 할 것 같아요. 함께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관악구 일자리카페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료 강의 4명에서 시작했던 제 실험이, 이제 구 단위 사업이 된 겁니다. 더 많은 청년들을 만나고, 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 메시지를 더 넓게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확산: 대타 강의가 만든 연쇄반응

목포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선배님이 급하게 대타 강의 요청이 왔습니다.

"내일 내가 급한 일정이 생겼는데... 내일 강의 가능하나?"

보통은 거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준비 시간도 없고, 갑작스러운 요청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항상 이런 기회를 '만남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네,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는 해당 대학의 고정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다섯 번째 확산: 목포에서 목포 전역으로

그렇게 목포 대학에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의를 진행하고 버스를 탔는데, 목포 일자리카페 광고가 보였습니다. 어차피 목포에 있어야 하니 남은 시간에 무료로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도움을 드리겠다고 했더니, 같이 하자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목포 일자리카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새벽 기차를 타고 내려가 하루 종일 청년들을 만나고, 밤 기차로 다시 올라오는 일정.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습니다.

목포 청년들의 고민은 서울 청년들과 또 달랐습니다. 지역에서 나다운 삶을 산다는 것, 서울로 가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관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연결이 일어났습니다.

목포 일자리카페 강의를 들으신 목포 YWCA 담당자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내용을 직원들YWCA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요"

물론이죠!

그렇게 목포 YWCA 강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도 강의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습니다.

돌아보면 놀랍습니다. 카페에서 4명으로 시작한 무료 강의가, 관악구 청년이음으로, 관악구 일자리카페로, 목포 일자리카페로, 목포 YWCA로.

한 번의 강의, 한 명의 만남이 다음 기회를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1. 내 콘텐츠를 계속 정리했습니다. 매 강의, 매 상담 후에 배운 것을 기록하고 업데이트했습니다.

2. 말하는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었습니다. 무료든 유료든, 3명이든 300명이든, 서울이든 목포든, 모든 기회를 잡았습니다.

3. 모든 걸 기록했습니다. 강의 자료, 상담 내용,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 쌓았습니다.

4. 꾸준히 전파했습니다. 온오프믹스에 제 메시지를 계속 내보냈습니다.

5. 누적의 힘을 믿었습니다. 당장 결과가 안 나와도, 쌓이면 변화가 온다는 걸 믿었습니다.

6. 공감을 우선했습니다. 돈보다 먼저, 사람들과의 진심 어린 연결을 만들었습니다.

7. 사람들이 스스로를 찾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답을 찾도록 도왔습니다.


제가 퇴직하고 10년.

되돌아보면, 영상 1개와 기획서 1장으로 시작한 게 믿기지 않습니다. 카페에서 4명으로 시작한 무료 강의가, 지금은 서울에서 목포까지, 기업 교육, 컨설팅까지, 온라인 강의에서 오프라인 공간까지. 제 열정이 수입이 되고, 일이 되고, 삶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큰 자본이 없어도 됩니다. 명확한 계획이 없어도 됩니다.

하나의 확신과, 작은 실험. 그리고 꾸준함.

그것만 있다면, 당신의 열정도 분명 세상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당신답게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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