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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n 02. 2018

비닐 봉지 내려놓기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며

 3년 가까이 넘게 몸 담아왔던 곳을 떠나, 나는 또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 중에서는 가장 오래 있었고, 또 원없이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렇게 회사생활에 익숙해지고 또 그 안에서 편안함을 찾게도 되었지만, 이제 난 과감히 틀을 벗어나기로 했다. 익숙함에 길들여지는 게 나에겐 맞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아침 출근 길에 늦을까봐 버스 안에서 마음 졸이는 것, 늘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 것... 그 밖에도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주변 지인들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늘 입을 모아 '그렇게 살 수 있는 네가 부럽다'고 한다. 그리고 퇴사와 동시에 으레 내가 어디로 떠나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행선지를 물어본다. 역시 기술이 있으니 그렇게 그만둘 수 있는 거라는 사족을 덧붙이면서... 하지만 당장 어디론가 떠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그만두면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마음먹은 것을 행동에 옮기느냐 옮기지 않느냐 하는 선택의 차이일 뿐이다.


 퇴사하고 나면 마냥 홀가분할 것 같았지만, 이번 퇴사 후에는 예전과는 다르게 약간의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이렇게 쉬어도 되는 것일까 싶고... 그런 마음을 눈치 챈 고래군은 나에게 말했다. 오랜 시간 무거운 비닐 봉지들 여러 개를 꾸역꾸역 혼자 들고 가면서 손가락에 자국도 생기고 아프기도 했다가, 갑자기 그 모든 비닐 봉지들을 내려놓게 되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한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났더니, 덕분에 퇴사 후에 느낀 그 감정이 한 번에 정리되었다.


 이제 퇴사하고 난 후의 생활에 익숙해져 나름의 백수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슬슬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러나 이제는 떠나서 마냥 놀고 먹는 삶이 아닌,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또 어디 낯선 곳에서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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