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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Mar 29. 2019

영화 <바이스Vice>, 조용한 자를 조심하라

딕 체니, 미국 정권의 숨겨진 실세에 관한 페이크-다큐멘터리 영화



 개인적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영화가 드디어 한국에서도 선을 보인다. 지난 2018년 12월 첫 선을 보인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 <바이스>가 2019년 4월 11일 한국에서도 개봉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관심은 골든글로브는 물론이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 영화를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게 했고, 결국 <바이스>는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비스무리한 영화는 수입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다. 안 팔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 개봉 소식이 들리지 않는 실정을 아쉬워하던 차에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들렸고, 아니나 다를까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개봉을 앞두게 된 것이다.


 영화 <바이스>는 대기업 CEO를 역임하기도 했던 미국의 정치가 ‘딕 체니Dick Cheney’(크리스천 베일Christian Bale 분)의 생애에 대한 전기적(傳記的) 블랙 코메디이자 다큐-드라마 영화이다. 아담 맥케이Adam McKay는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티비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코미디언 겸 배우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이번 영화 <바이스>에서는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직접 맡았다.



딕 체니? 누구?



 ‘딕 체니’는 한국의 대다수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이름이다. 간혹 뉴스나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미국의 정치권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언뜻 들어본 적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영화 <바이스>에서는 간혹 다른 인물들이 딕 체니를 ‘리처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딕 체니의 본명이 리처드 브루스 체니Richard Bruce Cheney이기 때문이다.


 딕 체니는 1941년 네브래스카 주 링컨에서 태어났으며, 와이오밍 주 캐스퍼 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의 가문은 17세기 중반 잉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의 후손들인데, 먼 조상 중에는 프랑스에서 잉글랜드로 이주했던 조상도 있다. 그 덕분에 체니는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전 대통령과도 아주 먼 친척관계에 있기도 하다. [<Lynne Cheney: VP, Obama are eighth cousins>(NBC News, updated 10/17/2007 7:27:24 AM ET) 참조.] 참고로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과도 마찬가지 이유로 먼 친척관계라고 한다.


 영화 <바이스>의 초반부는 딕 체니의 어린 시절과 예일 대학교에 입학한 사실, 그리고 1962년과 1963년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이력, 1964년 그의 부인인 ‘린Lynne Vincent’과의 결혼, 1969년 닉슨 정부에 국회 인턴쉽에 참여했다가 이어서 도널드 럼스펠드의 보좌관으로 합류하며 정치권 경력을 시작한 그의 삶 전반부를 빠른 호흡으로 보여준다. 체니는 제38대 대통령 ‘포드Gerald Ford’가 럼스펠드를 국방부장관으로 호명하면서 그와 함께 백악관 수석 보좌관 White House Chief of Staff 자리에 부임하게 되고, 이를 통해 정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딕 체니는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H.W. 부시George H.W. Bush’(이후 ‘아빠 부시’)의 호명으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국방부 장관에 재직하게 된다. 그러니까 체니는 1990~ 91년 걸프전 당시 미국 국방부장관이었던 것이다. 비록 영화 <바이스>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미국의 제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George H. W. Bush’(이후 ‘아들 부시’)가 911사건 이후 이라크에 침공과 아빠 부시의 걸프전 사이의 연결 고리 자리에 바로 딕 체니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이후 아빠 부시가 실각한 이후 체니는 1995년에서 2000년까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에너지 대기업 중 하나인 ‘할리버튼Halliburton’의 CEO로 재직한다. 그리고 나서 아들 부시가 대통령 경선에 참여할 때 러닝파트너로서 함께한 체니는, 이윽고 아들 부시 정권에서 부통령, 즉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 President로서 미국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영화 <바이스>는 딕 체니의 최고 경력인 부통령에서 그 제목이 유래했다.



‘조지 부시’ 대신 ‘딕 체니’?



 여기서 잠깐 우리에게 <월드 트레이드 센터>(2006), <스노든>(2015) 등의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영화 <W>(2006)를 언급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은 영화 <W>는 미국의 제43대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W. Bush’에 대한 전기적 영화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조지 부시의 어린 시절 생애와 아버지와의 갈등, 정치계에 입문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여정, 그리고 이라크 침략 전쟁의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감독 특유의 시선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영화 <바이스>에서 딕 체니 역을 맡아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크리스천 베일이, 사실 <W> 제작 당시 조지 부시 역할을 제안 받았다는 점이다. 당시 베일은 조지 부시를 연기하기 위해 수 개월을 준비했지만 결국 보철물 테스트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면서 탈락하게 되고, 결국 배역은 조쉬 브롤린 Josh Brolin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당시 ‘아들 부시’ 배역에서 탈락한 아쉬움을 간직한 크리스천 베일이 이번에는 아들 부시의 배후에 있었던 ‘딕 체니’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므로 단지 보철물에만 의지하는 대신 크리스천 베일이 18㎏의 체중을 증량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영화 <바이스>에서 크리스천 베일이 배역을 위해 보여준 변신과 연기력은 영화 <다키스트아워>(2017)에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을 연기한 배우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의 사례를 떠올리게도 만든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이러한 전례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영화 <바이스>는 <W>와 형식적· 내용적 측면에서 일종의 연작으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크리스천 베일이라는 배우가 양쪽 모두에 연관되어있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다만 <W>와는 다르게 <바이스>에서는 ‘아들 부시’를 얼간이 머저리로 그리고 있다. 영화 <바이스>는 교활한 딕 체니가 멍청한 아들 부시를 전면에 내세운 다음, 그에게서 국정 운영에 관한 결정권을 얻어내 미국을 자기 마음대로 휘둘렀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W>와 <바이스> 이전에 먼저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911 Fahrenheit 9/11>(2004)을 먼저 떠올려야만 한다.



지금의 한국 이야기



 놀랍게도 영화 <바이스>의 내용은 지금-여기 대한민국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탄핵 후 독방에서 아마도 드라마를 시청하며 지내고 있을 누군가를 앞에 내세우고, 그 배후에서 국가 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익을 챙긴 사건이 2019년 현재에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는 과거의 사건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결코 끝난 게 아니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그들은 딕 체니의 사례를 연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한국에는 부통령이 없는 대신 국무총리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 <바이스>는 페이크-다큐멘터리Fake-Documentary 형식을 가지고 있다. 딕 체니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내레이터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밝고 유쾌한 내레이션 목소리의 주인공 ‘커트Kurt’(제시 플레먼스Jesse Plemons 분)는 아이와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영화 중반부가 되어서야 커트는 딕 체니가 계획하고 실행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침공에 참전했던 미군 군인이었음을 밝힌다. 그런데 왜 커트가 내레이터인지에 대해서는 종반부가 되어서야 그 정체를 드러낸다. 심장마비로 인해 쓰러진 딕 체니가 이식받을 새로운 심장이 필요해진 시점에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체니에게 심장을 ‘기증’하게 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 딕 체니에게 심장을 누가 기증했는지는, 딕 체니 본인을 포함해서 우리는 결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멕케이 감독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커트는, 독자 또는 관객들을 시종일관 웃게 만들던 유쾌한 커트는, 결국 영화 종반부의 희생을 통해 체니에게 착취당하고 희생당한 대다수 미국인들이자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한국의 독자 또는 관객들 중 한 명이 된다. 한국이 미국의 입김에 얼마나 크게 휘청거리는가를 떠올려본다면, 그리고 지금의 다에시(ISIS) 사태가 딕 체니의 삽질 때문에 발생했다는 영화 <바이스>의 주장이 옳다면 영화 <바이스>가 보여주는 커트의 이미지는 한없이 섬뜩하게 다가오게 된다.



또한 앞으로 우리의 이야기



 아담 맥케이 감독은 영화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Beware the quiet man. For while others speak, he watches. And while others act, he plans. And when they finally rest…he strikes.” – ANONYMOUS

“조용한 자를 조심하라. 남들이 말하는 동안, 그는 주시한다. 그리고 남들이 행동할 때, 그는 계획한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 휴식할 때… 그는 공격한다.” - 익명


 맥케이는 커트의 목소리를 빌려 딕 체니는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한 번도 사건의 최전선에 직접 나선 적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대신 그는 한 걸음 뒤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해왔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911테러사건의 배후로 이라크와 사담 후세인 당시 대통령을 지목하고 생화학탄 등의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인들의 공포를 자극했던 주체가 바로 딕 체니였으며, 이를 통해 체니와 더불어 그가 CEO로 있었던 할리버튼 등의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이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익명’으로 번역된 ANONYMOUS는 아나키즘을 표방하는 불특정 해커들의 그룹 명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익명’이란 어쩌면 맥케이 감독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심지어 바로 독자 또는 관객 스스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며, 혹은 맥케이 감독이 독자 또는 관객이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기를 원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따라서 영화 종반부에 위치한 체니의 인터뷰 장면, 딕 체니가 직접 맥케이의 카메라, 혹은 관객들을 응시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 <바이스>의 핵심이 된다. 체니는 이렇게 말한다.


“You chose me … I did what you asked.”

“당신들이 나를 선택했고 … 나는 당신들의 요구에 응했을 뿐이야.”


 나의 선택, 우리의 선택이 나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체니의 이 대사가 남기는 여운은 영화 <바이스>가 앞으로의 한국을 살아갈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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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 클로즈 크레디트가 올라간 이후 쿠키 장면이 재미있다. “팩트가 옳다고 인정하면 진보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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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냥 좀 나가자. 영화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좀 조용히 하든가. 큰 목소리로 담화를 나누던 어떤 커플이, 뒷사람들이 뚫어져라 쳐다볼 때는 모르다가 앞사람이 뒤돌아보니까 그때서야 목소리를 줄이는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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