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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n 18. 2019

영화<갤버스턴>, 참혹한 장면이 없어서 더 무서운 영화

‘폭력성’ 개념에 관한 진지한 고찰


 2018년 영화 <갤버스턴Galveston>이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작년 미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덴마크, 러시아, 쿠웨이트, 리투아니아, 스페인, 에스토니아, 베트남, 멕시코, 네덜란드,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도 스크린에 걸리게 되었다. 배우이자 피아니스트, 가수,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 환경운동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다재다능한 예술가 멜라니 로랑Mélanie Laurent이 감독을 맡았다.


 닉 피졸라토Nic Pizzolatto의 동명소설 『갤버스턴』이 원작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의 시나리오 역시 원작자인 그가 직접 맡았지만, 영화의 크레디트에는 짐 해밋Jim Hammett이라는 가명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완성된 시나리오는 자신이 유일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가명을 쓴 것 같다는 견해도 있다.(https://ew.com/movies/2018/10/18/nic-pizzolatto-galveston-pseudonym/)


 영화 <갤버스턴>은 1980년대 후반 미국 하층민들이 살아가는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1988년의 뉴올리언스New Orleans와 갤버스턴Galveston 등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히트맨 로이Roy(벤 포스터Ben Foster 분)가 의사에게서 폐암 진단을 받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병원을 박차고 나온 로이에게 그가 속한 폭력조직의 두목이 새 의뢰를 맡기지만, 사실 그것은 로이를 제거하고자 하는 두목의 함정이었다. 로이는 적들을 모두 죽이고, 그곳에 붙잡혀있던 어린 창녀 록키Rocky(엘르 패닝Elle Fanning 분)를 구하며 간신히 목숨을 건져 그곳을 빠져나온다. 로이는 그녀와 함께 서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로이는 록키의 어린 여동생 티파니Tiffany(애니스톤& 틴슬리 프라이스Anniston and Tinsley Price 분, 성장한 티파니는 릴리 라인하트Lili Reinhart 분)까지 함께 데리고 텍사스 갤버스턴에 도착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 <갤버스턴>



 이 영화는 구성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 정도로 매우 정석적이다 못해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플롯은 단선적이며 결코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디제시스, 그러니까 영화 속 공간의 시간 흐름도 순행한다. 영화의 첫 장면이 가장 과거이며, 마지막 장면이 가장 나중이다. 이러한 단순한 플롯 구성 덕분에 영화 <갤버스턴>에는 독자 또는 관객들의 집중력이 온전히 주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생긴다.


 불안한 희망이 꺾이고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되는 원인이 다름 아닌 등장인물들의 ‘하마르티아’라는 점도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어 ‘하마르티아άμαρτία’는 ‘(던진 창이) 빗나가다’ 또는 ‘실패하다’, ‘좌절하다’, ‘잘못을 저지르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 ‘하마르타노ἁμαρτάνω’에 명사형접미사 ‘-ίᾱ’가 붙어 형성된 단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비극’은 뛰어난 인물이 가진 하마르티아로 인해 초래되는 비극적 결말을 다룬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그가 말하는 하마르티아는 그 인물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일종의 결함이나 결핍 등을 의미하는데, 즉 태생적이거나 운명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인 성격상의 특성이나 혈통 내지는 소속 민족이나 국가 등의 요소를 말한다. 결국 독자 또는 관객들이 사랑할 법한 인물이,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어떤 힘과의 갈등에 의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결말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바로 ‘비극’인 것이다.


 로이는 폐암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죽음’이라는 하마르티아를 지닌 인물이다. 이로 인해 그의 선택은 과감해지고, 때로는 과격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록키의 하마르티아는 바로 티파니이다.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와 강간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록키 역시 그녀의 행동을 티파니에 근거하여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하마르티아들로 인해, 이들에게 제시되는 희망은 무참하게 꺾인다. 결국 로이와 록키는 절망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고전적인 이미지


 영화의 이미지 역시 어찌 보면 꽤나 고전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영화의 추세가 짧고 장면들의 빠른 전환으로 점점 기울어가고 있는 것은 좀처럼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피와 무기, 범죄와 살인 등의 폭력과 액션이 담긴 영화의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독자 또는 관객들이 선호하는 방향을 따라 영화가 변화하는 것인지, 혹은 영화가 변하는 흐름에 그들이 따라가는 것인지는 아직까지는 분명치 않다. 어쩌면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얽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 <갤버스턴>은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최근 관객들의 취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숏들은 다소 긴 편이고, 잔인한 폭력의 순간은 결코 직접적인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참혹하다. 영화의 이미지 군데군데에 얼룩처럼 나타나는 폭력의 끔찍한 흔적들 때문이다. 이미지들이 의도적으로 비워놓은 그 자리에 출몰하는 것은― 히치콕의 유명한 샤워실 시퀀스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 또는 관객들이 상상하고 구축한 가장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유령들이 될 것이다.



다시, 리얼리즘


 이렇게 놓고 본다면 영화 <갤버스턴>은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처럼도 보이는 리얼리즘 정신과 스타일로 다시 되돌아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제시스의 시간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미래라는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혼자 힘으로 다수와 맞붙어 승리하는 허구적 영웅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압도적 폭력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망치거나 숨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 하여 스크린을 마주한 독자 또는 관객들은 법이나 정의, 진리와 선善 등의 가치들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자본과 폭력이 결합한 패권에 의해 얼마나 쉽게 꺾여버리고 마는가를 선명하게 목격하게 된다. 영화 <갤버스턴>은 배경이 되는 미국, 혹은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가 일상적 장막 뒤에 은폐하고 있는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홀로 힘겹게 성장한 티파니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 이제 곧 결혼을 앞둔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티파니는, 로이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질문하는 그녀는, 방금까지 그 이야기를 보고 들었던 독자 또는 관객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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