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가이드북: 여행하는 예술가의 리스본
‘문화’라는 단어처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말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라는 용어는 ‘Culture’를 번역한 것이며, 다시 ‘Culture’는 경작하고 재배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Cultur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만약 ‘경작 방식이란 곧 삶의 형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면, 우리가 말하는 ‘문화’란 ‘어떤 지역이나 집단 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형식’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란 어쩌면 ‘나를 포함하는 우리의 정체성’이 성립하기 위한 토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같은 언어, 같은 관습, 같은 가치관 등과 같이,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 일종의 동질성을 더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내가 속해있는 문화는, 내가 숨 쉬는 공기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낯선 문화를 접할 때는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평소와는 다른 공기를 들이마실 때 이상한 냄새를 맡게 되면 갑자기 사람이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냄새가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제야 낯선 향기의 정체를 찾기 시작합니다.
예술가들이 낯선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히티의 자연과 색채에 열광했던 고갱(Paul Gauguin)이 있습니다. 고갱을 예로 들고 보니, 유럽의 미술 기법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탄생한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絵)가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마네, 고흐, 고갱, 드가, 툴루즈-로트렉 등의 작가들을 통해 인상주의를 탄생시켰다는 점도 생각나게 됩니다. 낯선 문화로부터 일종의 번뜩이는 영감(靈感, Inspiration)을 찾는 것입니다.
리스본을 찾은 여행자들이라면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타일 작품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도시 전체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동시에, 리스본 고유의 풍경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포르투갈 전통 타일 예술을 ‘아줄레주(Azulejo)’라고 부릅니다. 아줄레주는 본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전통 타일 공예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 지역에서는 강한 햇살과 바람으로부터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해 점토 타일을 건물 외벽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13세기 무어인의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을 통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세기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물러난 이후 사실 포르투갈에는 별도의 타일 예술 양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포르투갈 왕국을 통치하던 마누엘 1세가 16세기 초에 스페인 세비야를 방문했다가 아름다운 타일 공예에 매력을 느끼면서 비로소 포르투갈에 타일을 건축에 활용하는 기법이 도입되었습니다. 마누엘 1세가 신트라 궁전을 장식하는 데에 채색한 타일을 사용하게 한 것입니다. 이후 16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고딕 양식에 화려한 장식을 가미하는 이른바 ‘마누엘 양식’이라고도 부르는 건축양식과 함께, 채색하고 유약을 발라서 구워낸 타일로 외벽을 덧대는 건축양식이 포르투갈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아줄레주 예술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하학적 패턴을 강조하는 전통적 표현방식의 계승이며, 다른 하나는 이와 더불어 아줄레주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성서와 신화의 내용을 묘사하는 이미지를 여러 장의 타일에 그리는 예술 양식으로 간주되고 채택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벽이나 천장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기존의 방식이 가진 불편함을 대부분 덜어내는 획기적인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천장화의 경우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는 매우 불편한 자세를 유지한 채로 작업을 해야만 했으며, 그래서 벽화나 천장화를 그리는 것은 매우 고되면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줄레주 양식을 경유하게 되자, 이제 화가는 거대한 하나의 그림을 여러 장의 타일에 분할하기만 하면, 단지 그것을 벽이나 천장에 정성스럽게 붙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벽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푸른색과 흰색을 사용하는 아줄레주 형식은 17세기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일본 열도의 에도 막부로부터 포르투갈로 도자기가 수입되었습니다. 우리가 청자(靑瓷)라고 부르는 당시의 도자예술 형식은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포르투갈에서는 귀족들이 아줄레주를 주문하면서 청색과 백색으로 색상을 한정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스본 시내 곳곳은 물론이고 곳곳에 있는 성당이나 아줄레주 박물관을 방문해보면 흰색 타일에 푸른색 안료만을 사용한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동양 수묵화의 표현기법처럼, 푸른 안료의 농담(濃淡) 표현을 통해 이미지가 완성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리스본 아줄레주 박물관(Museu Nacional do Azulejo)에는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되기 이전의 도시 모습을 표현한 파노라마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와 문학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에게 리스본의 과거와 지금을 동시에 상상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 아줄레주 박물관 : R. Me. Deus 4, 1900-312 Lisboa, 포르투갈
18세기에는 건물 외벽을 단순하게 장식하면서 기능적 측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아줄레주 양식도 나타났습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 폼발 후작의 주도 아래 도시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최대한 합리적인 도시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단순한 내진 설계와 조립식 건축 방식을 채택하고 아줄레주 역시 숫자를 줄이고 가장 단순한 형태의 타일을 붙이는 등, 효율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폼발린 양식(Pombalinos, Pombaline style)’이 나타난 것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아줄레주도 당대의 전위적인 예술 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하파엘 보르달루 피녜이루(Rafael Bordalo Pinheiro)라는 작가가 매우 유명합니다. 그는 풍자적인 삽화 작품이나 가난한 농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인 <제 포비뉴(Zé Povinho)> 등의 다수 작품과 함께 창의적인 도예 작품을 만든 작가입니다. 특히 그의 작품 중에는 여러 마리의 제비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양을 도기로 구워내서 건물의 벽에 부착한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리스본을 여행하는 도중 건물의 외벽이나 실내 벽면에서 여러 마리의 제비가 붙어있는 것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스본에 있는 하파엘 보르달루 피녜이루 박물관(Museu Rafael Bordalo Pinheiro)에는 그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기 위해 지금도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 하파엘 보르달루 피녜이루 박물관 : Campo Grande 382, 1700-097 Lisboa, 포르투갈
그는 형제인 펠리시아노와 함께 ‘보르달루 피녜이루 공장(Fábrica Bordallo Pinheiro)’을 설립했으며, 오비두스 북쪽의 칼다스 다 하이냐(Caldas da Rainha)에 있는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는 감각적인 도자기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 파브리카 보르달루 피녜이루 : R. António Oliveira 28, 2500-271 Caldas da Rainha, 포르투갈
그 밖에도 리스본 근교 도시인 신트라에 위치한 신트라 궁전은 포르투갈 최초의 아줄레주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포르투갈 최초의 아줄레주를 보고 그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 신트라 궁전(Palácio Nacional de Sintra) : Largo Rainha Dona Amélia, 2710-616 Sintra, 포르투갈
※ 아줄레주 예술은 철학자와 작가,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개별성과 개체성, 그리고 앙상블 등의 개념을 제안했던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의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직관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타일 하나하나가 개체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다른 타일들과의 앙상블을 통해 더 큰 범주의 개체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즉 시몽동의 ‘기계’를 ‘타일 예술’로 치환하면 조금은 더 쉽게 그의 저서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이해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경유하여 타르드(G. Tarde)나 들뢰즈 등을 읽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아줄레주의 푸른색 농담(濃淡) 표현은, 예술가들에게 ‘과연 색(色)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단지 짙거나 옅음만으로도 ‘다채(多彩)로움’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색의 차이란 단지 빛의 스펙트럼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이미지와 ‘색(色)’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언제나 그 기저에는 인식(=미학)과 인식이 유발하는 정동의 문제가 암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