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스본에서 예술가의 하루-파두, 사우다데

포르투갈 가이드북: 여행하는 예술가의 리스본

by 미니고래


‘문화’라는 단어처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말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라는 용어는 ‘Culture’를 번역한 것이며, 다시 ‘Culture’는 경작하고 재배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Cultur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만약 ‘경작 방식이란 곧 삶의 형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면, 우리가 말하는 ‘문화’란 ‘어떤 지역이나 집단 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형식’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란 어쩌면 ‘나를 포함하는 우리의 정체성’이 성립하기 위한 토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같은 언어, 같은 관습, 같은 가치관 등과 같이,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 일종의 동질성을 더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내가 속해있는 문화는, 내가 숨 쉬는 공기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낯선 문화를 접할 때는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평소와는 다른 공기를 들이마실 때 이상한 냄새를 맡게 되면 갑자기 사람이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냄새가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제야 낯선 향기의 정체를 찾기 시작합니다.


예술가들이 낯선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히티의 자연과 색채에 열광했던 고갱(Paul Gauguin)이 있습니다. 고갱을 예로 들고 보니, 유럽의 미술 기법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탄생한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絵)가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마네, 고흐, 고갱, 드가, 툴루즈-로트렉 등의 작가들을 통해 인상주의를 탄생시켰다는 점도 생각나게 됩니다. 낯선 문화로부터 일종의 번뜩이는 영감(靈感, Inspiration)을 찾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에는 고유하고도 독특한 전통문화가 몇 가지 있습니다. 다른 언어와 대비되는 ‘포르투갈어’라는 언어적 차이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와의 차이를 표지하는 이와 같은 전통문화야말로 ‘포르투갈(Portugal)’을 규정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는 사우다데(Saudade)라는 슬픔과 한(恨)의 정서를 담아내는 음악 장르인 ‘파두(Fado)’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파두’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리스본의 알파마와 바이후알투 등 항구와 인접한 지역에서 19세기 초에 형성되기 시작한 ‘리스본 파두(Fado de Lisboa)’를 말합니다. 본래부터 존재하던 전통 음악 장르에,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브라질, 인도네시아 지역의 토속 음악으로부터 영향이 더해지면서 지금과 같은 스타일이 형성된 것입니다.


‘리스본 파두’는 주로 배를 타고 떠났다가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정인(情人)에 대한 그리움, 간절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에는 자신이 없음을 깨닫고 느끼게 되는 질투와 슬픔과 체념, 리스본 항구를 떠나 오랜 항해를 거쳐 머나먼 타지에 머물거나 이민을 떠난 사람들이 느끼는 향수(鄕愁) 등을 노래합니다. 물론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는 가볍고 유머러스한 곡도 있습니다.


알파마 지구에 위치한 파두 박물관 ⓒ미니고래


그러므로 먼저 파두 박물관(Museu do Fado)에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알파마 언덕 동남쪽 기슭에 있는 일명 파두 거리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상설전시뿐만 아니라 리스본을 여행하는 바로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기획전시도 열립니다. 행운이 따른다면 공연을 비롯한 파두 관련 행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리스본에서는 파두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미니고래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면 파두 공연이 열리는 레스토랑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습니다. 오래 전 이곳 알파마의 허름한 식당이나 선술집에서 음식과 술을 즐기면서 파두를 듣고 또 따라부르기도 했을 리스본의 정서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아말라아 호드리게스 박물관, 에두아르두 7세 공원 근처에 그녀의 이름을 딴 공원도 있습니다. 출처 : 구글 맵(좌),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재단(우)


1999년에 세상을 떠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ália Rodrigues)’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두 가수 중 한 명입니다. 조금씩 침체되어 가던 전통적인 파두를 20세기 중반에 지금과 같은 스타일로 재해석하면서 화려하게 부활시킨 주인공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세상을 떠난 이후 국립 판테온에 안치될 정도이니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지금도 알 수 있습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박물관(Casa-Museu Amália Rodrigues)은 그녀가 말년까지 살았던 집을 개조해서 만든 박물관입니다. 세계적인 예술가의 일상을 체험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곳의 정원에서는 다른 방문자들과 함께 파두 라이브 콘서트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 그밖에도 또 다른 스타일을 가진 ‘코임브라 파두(Fado de Coimbra)’도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코임브라 대학교로 유명한 이 작은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파두 장르입니다. 만약 여행 중 코임브라를 찾아간다면, 그곳에서도 파두를 찾아가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