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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Oct 10. 2023

리스본에서 예술가의 하루- 페소아, 사라마구

포르투갈 가이드북: 여행하는 예술가의 리스본

    

 ‘문화’라는 단어처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말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라는 용어는 ‘Culture’를 번역한 것이며, 다시 ‘Culture’는 경작하고 재배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Cultur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만약 ‘경작 방식이란 곧 삶의 형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면, 우리가 말하는 ‘문화’란 ‘어떤 지역이나 집단 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형식’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란 어쩌면 ‘나를 포함하는 우리의 정체성’이 성립하기 위한 토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같은 언어, 같은 관습, 같은 가치관 등과 같이,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 일종의 동질성을 더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내가 속해있는 문화는, 내가 숨 쉬는 공기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낯선 문화를 접할 때는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평소와는 다른 공기를 들이마실 때 이상한 냄새를 맡게 되면 갑자기 사람이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냄새가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제야 낯선 향기의 정체를 찾기 시작합니다.     

예술가들이 낯선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히티의 자연과 색채에 열광했던 고갱(Paul Gauguin)이 있습니다. 고갱을 예로 들고 보니, 유럽의 미술 기법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탄생한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浮世絵)가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마네, 고흐, 고갱, 드가, 툴루즈-로트렉 등의 작가들을 통해 인상주의를 탄생시켰다는 점도 생각나게 됩니다. 낯선 문화로부터 일종의 번뜩이는 영감(靈感, Inspiration)을 찾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문학을 사랑했습니다. 철학이든 예술이든 인간과 삶의 더하기로서의 세계로부터,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짐작되는 진리(Aletheia)를 찾는 탐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문학은 포르투갈의 자연과 함께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가지는 가치관이나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으로서의 관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며 한국 문화가 온몸에 배어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포르투갈의 언어와 문화는 정말이지 드넓은 강 건너편 멀리에 있어서 그저 아스라이 작게만 보이는 어떤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포르투갈의 문학은 포르투갈의 언어가 직조하는 특유의 감각과 색채를 멀리서나마 엿볼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망원경이기도 합니다.   


  

아 브라질레이라 카페 앞에 있는 페소아 동상(좌), 기념품샵에 전시된 페소아 기념품(우)  ⓒ미니고래


 페르난두 페소아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는 포르투갈의 시인입니다. 그는 동시에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 철학자이기도 했으며, 그러한 활동을 통해 수많은 저작을 남겼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와중에 여러 개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작가가 사용하는 이런 가명을 보통 ‘필명’이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페소아는 그 이름들이 모두 상상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삶의 궤적을 가지고 고유한 사고와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 이름들은 가명(假名)이 아니라 ‘이명(Heteronym, 異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를테면 가장 유명한 이명 중 하나인 ‘베르나르두 소아레스(Bernardo Soares)’는 회계사로 추정되는 인물로, ‘근대적 도시로서의 리스본’을 돌아다니면서 응시하고 기록하는 ‘산책자(Flâneur)’로 유명합니다.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는 페소아의 유명한 책인 『불안의 책(Livro do Desassossego)』의 서술자로서 내세워진 인물로, 책의 부제로 “리스본의 회계보조원 베르나르두 소아레스 저작(Composto por Bernardo Soares, ajudante de guarda-livros na cidade de Lisboa)”이라는 말이 붙어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페소아는 19세기 모더니즘 공간에 대한 근대적 주체의 독백을 선보입니다. 이를 통해 근대적 도시공간의 길거리 풍경, 상점과 건물들, 사람들, 교통, 테주강이 흐르는 모습, 날씨, 그리고 심지어 ‘리스본에 사는 페르난도 페소아라는 이름의 어떤 작가’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페소아는 그밖에도 수많은 ‘이명’을 사용했으며, 1935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집계된 이명은 모두 약 7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통해 페소아는 인류 전체를 다음 세계로 이끄는 위대한 시인 ‘수퍼-카몽이스(Super-Camões)’*의 출현을 예견하거나, 구조와 패러다임의 경계를 횡단하고 초월하는 것에 대한 철학적 경향을 가진 수필을 쓰기도 했습니다. 모리스 블랑쇼 바로 직전에 페르난도 페소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 루이스 카몽이스(Luís de Camões)는 16세기 경에 활동한 포르투갈 출신 작가로, 셰익스피어나 단테와도 비교되는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어는 카몽이스의 언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포르투갈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에스파냐, 프랑스, 프로이센과 이탈리아 등 당대 유럽 전역에 걸쳐서도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후 카몽이스는 포르투갈의 민족주의를 확립하는 중요한 아이콘이 되기도 했으며, 카몽이스를 기리기 위해 포르투갈에서는 (출생일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가 사망한 6월 10일을 ‘포르투갈의 날’이라는 국경일로 지정하고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있습니다.     


 시아두(Chiado)에 있는 유명한 카페 ‘아 브라질레이라(A Brasileira)’는 페소아의 단골 카페로도 유명합니다. 『불안의 책』에는 소아레스가 이 카페에서 페소아라는 작가를 관찰하는 부분이 실려있기도 합니다. 카페 앞 광장에 마련되어있는 페소아의 동상 주변으로는 지금도 리스본을 느끼고 경험하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리스본을 여행하다 보면 중절모와 동그란 안경테, 그리고 콧수염을 조합한 이미지를 쉽게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페르난도 페소아를 상징하는 아이콘입니다. 그리고 리스본에는 페소아가 생전에 살았던 집을 보존하고 개조한 박물관도 있습니다. ‘페소아의 집(Casa Fernando Pessoa)’은 주제 사라마구 기념관과 함께 문학을 사랑하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 Casa Fernando Pessoa : R. Coelho da Rocha 18, 1250-088 Lisboa, 포르투갈         



주제 사라마구 기념관 외부와 내부의 모습  ⓒ미니고래


주제 사라마구     


 주제 사라마구(José de Sousa Saramago)는 포르투갈의 소설가입니다. 그는 198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화로도 유명한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작품이 유명하며, 한국에는 그밖에도 약 10여 개의 작품이 더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47년부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창작을 이어갔으며,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라마구는 특유의 문체로 매우 유명합니다. 그의 소설은 서술과 작중인물의 대사 사이에 경계가 없습니다. 마침표를 쓰지 않고 최대한 쉼표를 활용하여 한 개의 문장을 매우 긴 호흡으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문장은 한 페이지를 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절대적으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순식간에 길을 잃고 방황하기가 십상입니다. 지금 이 부분이 어떤 인물의 대사인지, 아니 대사이기는 한지, 대화를 나누는 건지 혼잣말을 독백하는 건지도 모호해져서 다시 몇 번이고 앞으로 되돌아가 재차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한국어 번역본의 경우에는, 한국어가 하나의 서술어가 하나의 종결어미와 마침표를 동반하기 마련이라서, 그 정도가 굉장히 약화된 편이기는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특징은 사라마구의 작품이, 그 자체가 한 명의 서술자의 독백과도 같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작품 내에서 작중인물들과 서술 주체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독자는 서술 주체와 단독으로 대면하는 자리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술 주체의 상상적 목소리는 독자 주체의 일부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사라마구의 작품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주체성에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한 개의 균열을 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알파마(Alfama) 남쪽 기슭에는 주제 사라마구 기념관이 있습니다. ‘뾰족한 것의 집(Casa dos Bico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기념관은, 본래 16세기 초에 처음 건설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1960년대에 리스본 시의회가 매입한 후에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지하에서 로마와 무어 시대 유적의 발굴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흰색 벽면을 가득 채운 뾰족한 돌기들 덕분에 사라마구 기념관은 제법 멀리서도 금세 찾을 수 있습니다.     


- José Saramago Foundation : R. dos Bacalhoeiros 10, 1100-135 Lisboa,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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