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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하 Nov 26. 2018

아주 독립적인 여자의 가족애

가족애 권하는 사회

그럴 거면 뭐 하러 결혼했어?


 요즘 내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이 듣는 말이다. 아이도 갖지 않고, 수입/지출도 각자 관리하고, 서로의 가족에 대한 부담이나 책임도 갖지 않는 그런 결혼생활에 대한 포부를 꺼냈을 때 말이다. 대체 결혼이 뭐길래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도 남들 눈엔 그렇게 불합격인 건지. 아직 시작일 뿐이라 내가 잘 모르는 건지.


 나는 결혼 전에도 내 남자와 함께 살고 있었고, 그리고 그 상태가 마음에 들어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도 여기저기서 참견을 해대는 통에 ‘동거'라는 상태보다는 ‘결혼'이라는 상태 표시 말을 걸어 놓는 것이 이래저래 더 편할 거라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결혼은 내가 내 남자와 편히 지낼, 동거를 더 편하게 지속하기 위한 사회적 수단 그뿐이었다. 그러니 ‘너는 왜 결혼을 했는데도 더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은 내게 무의미하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른다. 아니, 사실은 조금 알 것도 같다. 뭐라 한 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분명 사회에는 ‘가족'이기 때문에 응당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에 대해 싫다 좋다조차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수행하며 사는 것 같다. 그냥 원래 가족은 그런 거니까. 그것이 우리의 정상 이데올로기니까.


수하 씨는 가족애가 너무 없는 거 같아요.


 맞다. 나는 가족애가 없는 편이다. 시댁은커녕 나의 일가친척은 물론이거니와 30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내 직계가족들과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독립적인'이라는 수식어와 ‘가족애'라는 단어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저 가족애가 없다는 말에 조금 슬픈 기분이 들었다. ‘너무'라는 단어는 부정문에 쓰이기 마련 아닌가. 내가 결격사유가 있는 인간으로 정의된 것 같아 화가 났다. 


 사람은 꼭 가족애를 가져야 할까? 가족애가 현대 문명인의 기본 소양일까? 내 생각은 아니올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질을 타고나기 때문에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타인에게 의지하며 서로 돕고 사는 것을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나아가는 것이 취향이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가족다운 가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가족은 없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자신이 행복한 가족 속에서 자랐다고 해서 남들도 그랬을 거란 착각은 방종이다. 내가 화가 났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내게 가족애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은 마치 프랑스인이 내게 ‘수하 씨는 프랑스어 능력이 너무 없는 거 같아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애초에 프랑스어를 국어로 쓰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언어에 소질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지.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쓴다면 그건 물론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프랑스인이라도 그렇게 대단할까?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며 프랑스어에 별로 관심 없다. 다른 것 챙기고 살기도 바빠 죽겠다. 내가 그 프랑스인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뿐이다. ‘그래, 너는 프랑스어 잘해서 참 좋겠다.’


 엊그제 <나 혼자 산다>에 화사가 나와서 자신은 불효녀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자신만의 개성으로 성공했다. 바쁜 스케줄 사이에 고향을 방문하여 일가친척에게 시종일관 애교를 선보였고 밭일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전에 집안의 빚도 다 갚았다. 그런 그녀가 왜 가족 앞에서는 불효녀가 되어 마음 아파해야 할까. 무슨 숨은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화사가 안타까웠다. ‘가족'이란 이름은 행복을 줄 수 있는 만큼 동시에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아니면 옳지 않다고만 할까. 왜 자꾸 내 프랑스어를 지적할까.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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