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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하 Nov 05. 2018

아주 독립적인 여자의 점심시간

 4학년 방학 때 산업 단지에서 인턴을 했다. 그 시절 가장 뇌리에 깊게 박힌 장면은 점심시간 종이 땡 치자마자 지하 식당을 향하여 우르르 몰려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소형차 두 대는 들어감직한 화물 엘리베이터에 마치 여기가 아우슈비츠인 것 마냥 썩은 표정으로 몸을 빽빽이 구겨 넣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지만 너무 작았다. 사고가 나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 점심시간에 화물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말라고 매일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소용없었다. 그 순간 그들에겐 그저 점심을 빨리 먹고 돌아와 1분이라도 더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당시에도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었던 ODD 즉, 시디롬 디스크 드라이브를 만드는 팀에 있었다. 열 명도 안 되는 남자 팀원들과 매일 그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식단은 근처의 삼성전자와 같다고 들었지만 너무 후져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맛없는 것이라도 많이 먹고 싶었다. 아주 열심히 죽기 살기로 먹었다. 그래야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을 수 있었다. 아재들의 먹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이튿날부터 나는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 뭐든지 닥치는 대로 숟가락으로 입에 퍼 넣었다. 그래도 나는 늘 늦었다. 한가득 입에 음식을 쑤셔 넣고 빵빵해진 볼을 한 채 사람들을 따라 식판을 들고일어났다. 삼킨 음식들은 위에서 돌덩이처럼 뭉쳤다. 나는 공대 여자답게(?) 친구들 사이에선 빨리 먹는 편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진짜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하튼 그들에겐 그저 얼른 돌아가 잠을 자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았다.


 졸업 후 취직한 곳은 훨씬 더 규모가 큰 제조업장이었다. 출근을 한 첫날 식당에서 나는 다시 충격을 받았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식판이 음식이 담긴 채로 내 쪽을 향하여 흘러오고 있었다. 이곳은 식사조차 그들의 방식대로 제공하는 모양이었다. 음식을 담아 주시는 분의 얼굴도 볼 수 없고 "감사합니다." 혹은 "많이 주세요."같이 간단한 소통을 할 기회조차 차단되었다. 그냥 벨트에 탄 듯이 줄을 서서 한 방향으로 흘러가다가 벨트에서 흘러나오는 식판을 받아 갈 뿐이었다. 내가 영화 <모던 타임스> 안에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비참한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대신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다니기 시작한 지 5년이 다 되어간다. 10분 일찍 나가서 2.5km를 걷고, 10분 정도 공원에 앉아 있다가 다시 2.5km를 돌아온다. 원래는 혹한기랑 혹서기를 제외하고 일 년의 절반 정도만 다녔는데, 작년부터는 따뜻하게 챙겨 입고 눈밭도 끄떡없이 걷는다. 출근하면 오전은 공원 갈 시간만 기다리며 버티고 오후는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버틴다. 그 정도로 그 시간이 힐링 타임이다. 공장 근처에 공원 다운 공원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팀 아재들은 내게 밥을 안 먹고 어떻게 일을 하냐 한다. 글쎄, 나라고 밥을 안 먹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배고프면 내 돈으로 김밥이나 과자를 사 먹으면서 걷는다. 다만 주어진 자유시간은 한정적이고, 그 시간을 아재들과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흘러나오는 그저 그런 밥을 먹고 퍼지는데 써버리기엔 너무 아까울 뿐이다. 


 공원은 규모도 있고 잘 정비되어 있는 데다 산자락에 있어서 앉아있노라면 많은 이들이 오가는 걸 본다. 등산을 막 마친 중년들,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는 동호회 사람들,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들, 졸업사진을 찍는 고등학생들, 도시락을 들고 산책을 나온 주민들, 그리고 벚꽃과 단풍과 고양이 친구들까지. 다들 저마다 눈부신 태양 아래서 자신들의 시간을 즐긴다. 나만 빼고. 나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 회사에 돈을 받고 팔아넘겨버린 시간 속에 있다가 그 사이를 비집고 잠시 나왔을 뿐이다. 잠깐이라도 내가 나이고 싶어서 회사가 허락해 준 시간만큼만 잠시 나왔을 뿐이다. 나는 나를 먹여 살리고자 할 뿐인데 왜 밥을 굶어가며 내가 나이고자 하고 있을까. 나의 것이 아닌 시공간 속에서 내가 나일 수 없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남이 시키는 일을 하다가,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정해진 시간에 나와서 남이 주는 식사를 하고, 그리고 또다시 남이 시키는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의 식사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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