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요? 완전 똑같아요. 원래 같이 살았으니까요.
회사에 다니면서 결혼하니 좋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럼 나는 똑같다고 한다. 물론 아재들은 빼고. 동거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너무 촌스러우니까. 결혼해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더 이상 아재들에게 내 상태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그 외 젊고 친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근데 의외인 것은, 많은 여자들이 내게 ‘다행이네, 축하해! 너무 잘 됐다. 그게 제일 좋은 거잖아.’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너무 똑같아서 그 고생 시런 결혼식을 왜 했나 싶은데 똑같다는 게 축하까지 받을만한 일이라니? 제일 좋은 거라니? 나 진짜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우리가 결혼한 이유? 간단해. 사회의 요구지.
마침내 남편이 쿨하게 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말을 기다려 왔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이렇게 간단한 걸 왜 여태까지 숨겨서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어? 내가 서운해할까 봐 그랬어? 난 또 네가 다른 꿍꿍이라도 있나 했잖아. 그런데 내 주변에는 결혼 압박하는 사람 없었었는데?
우리 부모님만 이야기하는 게 아냐. 동기들 단톡방만 해도 애인이 없거나 결혼을 못 한 게 나이를 먹을수록 더 놀림감이나 개그 소재가 되잖아. 너도 분명 거기서 벗어났음에 안도감을 느낄 때가 있을걸.
맞다. 우리끼리는 그냥 동거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결혼 적령기에 적당한 짝과 결혼을 하라.’는 사회의 지령과 압박을 받아 이행하고 그 대가로 결혼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 나는 그 자유가 너무나 홀가분해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한강 공원에서 비를 맞으며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 해방감은 거기까지였다. 우리의 결혼에는 분명 나는 느끼고 그는 느끼지 않는 찝찝함이 있었다. 아무런 문제없는데 왜지? 결혼식에 들인 시간과 돈, 마음고생에 비해 대가가 시시해서 그런가? 아니야, 그건 우리 둘 다 같잖아. 이번 명절에 시댁에 가야 돼서 그런가? 아니야, 그거 한 번 정도는 따라가서 놀다 올 수 있지. 매 명절마다 꼭 가야 되는 것도 아닌걸. 나와 너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저 다른 것은 내 마음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컸다. 어려서부터 남자 새끼들만 소용 있다는 할머니를 보고 컸다. 엄마만 고생하는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컸다. 그리고 지금은 농촌 총각이 결혼을 못 하면 해외에서 어린 여자를 ‘구매’해 올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는 나라에서 산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미워했다. 자연스럽게 이 말도 안 되는 부조리를 미워했다. 결혼을 미워했다기보다는 가부장제를 미워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나는 가부장제의 일부로 자람과 동시에 가부장제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결혼은 가부장제의 꽃이다. 할머니는 여자가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해야 하는 이유가 ‘요즘에는 그래야 시집가니까.’라고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꿈꾸면서도 결혼을 미워했다. ‘나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겠지.’하는 마음과 ‘그따위 걸 내가 하나 봐라.’하는 마음이 늘 공존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러다가 사회의 요구대로 돈을 벌고 쓰고 세금을 내는 어른으로 자랐고 결혼 적령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나와 상황이 비슷한 ‘남자’였다. 왠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결혼은 자연스러웠고 필연적이었다. 왠지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결혼을 안 하는 것뿐이에요.”라고. 그래서 결국엔 결혼을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결혼하는 이유를 내 안에서 찾지 못해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우리의 결혼은 가부장제로부터의 지령이었다. 나는 그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그 망할 가부장제에 굴복하고 그들의 요구에 따랐다. 압박을 받는다고 내가 그렇게 쉽게 호로록 넘어갈 줄 몰랐는데 그렇게 내가 제일 미워하는 가부장제의 말에 따랐다. 나는 이 굴복이 정말 뼈아프다.
원래는 결혼이 굴복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최전방에서 권리를 하나씩 쟁취해 가며 가부장제와 싸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엄마랑 다르게 잘 살면 그게 더 멋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들었던 말은, “그럴 거면 왜 결혼했어?”였다. 그러게요, 나는 왜 결혼했을까요? 나는 결혼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왜 결혼을 했을까요? 나는 그 누구보다 결혼을 미워하는데 왜 결혼을 했을까요? 그토록 분노하는 이 구조에 저항하고 요구를 무시했어야 되는데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그건 내가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나 좀 편해보려고 부조리에 눈 감고 편승하고 나 스스로를 저버렸습니다. 그러고도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냥 비겁한 사람입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남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신뢰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조력자다. 그가 여자든 남자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사람이든 고양이든 간에 우리의 동거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결혼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아직도 가끔씩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가 보수적인 업계에 종사하지 않았어도, 어른들이 안 계셨어도,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났어도, 혹은 이성 커플이 아니었어도 결혼을 했을까? 이 결혼은 꼭 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 나는 어쨌거나 결혼을 했을 거다. 이 사회에서 모지리 취급받고 싶지 않아서, 노처녀로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아서, 떠도는 온갖 외로움에 대한 괴담에 겁에 질려서 나는 결혼을 했을 거다. 나는 혼자 독립적인 척은 다 하면서 실은 이 사회의 틀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그런 겁쟁이라서, 나는 결국 결혼을 했을 거다. 이게 내가 결혼한 진짜 이유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