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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하 Mar 04. 2019

아주 독립적인 여자의 ‘자기만의 방’

왜 아빠 방은 있는데 엄마 방은 없을까?

 우리 식구는 내가 서른에 독립할 때까지 한 번도 이사 가지 않고 살았다. 그 집은 엄마 아빠의 신혼집이었다. 신혼부부가 입주할 때는 3살이었던 아파트가 33살이 되도록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대로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낡고 불편했지만 계속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집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식구는 네 명인데 방은 두 개뿐이었다는 거다. 그러면 보통 부모방과 자녀방으로 나누기 마련인데 방 하나가 도저히 둘이서 쓸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언제나 큰 방은 부모님이 쓰는 안방이었고 어려서는 나와 내 동생이 거실에서 지냈다. 그렇게 거실에 학생용 책상 두 개와 이 층 침대를 두고 살았다. 미닫이문이 달려있어서 밤에 문을 닫으면 꽤나 방 느낌이 나긴 했다. 하지만 거실은 거실이었다. 나는 방이 갖고 싶었다. 


 작은방은 아빠 차지었다. 늘 문을 닫고 들어가 사장님이 쓸 것 같은 큰 책상에 앉아 담배를 피워댔다. 하얀색 책장이 윗부분만 누렇게 그라데이션 되도록 피워댔다. 혼자서 컴퓨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책도 뒤적거리고 그러는 것 같았다. 아빠는 큰방도 쓰고 작은방도 쓰는 셈이었다. 어린 마음에 생각해도 참 불공평한 처사였다. 집에 방이 두 개뿐인데 그걸 한 사람이 다 쓰다니. 게다가 아빠는 개인 사업을 위한 사무실도 따로 있었다. 그럼 아빠는 방이 세 개인 셈이잖아. 엄마랑 나랑 동생은 하나도 없는데. 그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왜 아빠들은 서재를 가질까? 프리랜서로 일할 것도 아닌데 왜 자신의 서재를 우선적으로 갖고 싶어 할까? 왜 엄마의 서재는 존재하지 않을까?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도 더 길고 집 관리에 대한 기여도도 높은데.


 내 일생이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한 투쟁이나 마찬가지 었기 때문에 그 의미와 효용은 버지니아 울프님까지 다녀오지 않아도 잘 안다. 나는 독립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취미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내 안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랬다. 나만의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고 나서야 삶이 한층 안정됨을 느꼈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마 아빠의 마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방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리고 누구나 하나씩 가질 수 없다면 나눠가져야 되는 거였다. 그렇게 혼자서 다 차지하면 안 되는 거였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원룸에 산다. 서른 살에 목표했던 금액을 다 모아서 독립을 하며 종결된 줄만 알았던 ‘자기만의 방'을 위한 투쟁은 아직 표류 중이다. 아직도 몇 번씩 내 방을 가지고 싶단 생각을 한다. 아주 작아도 좋다. 하나 갖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책도 더 많이 보고 창작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잠도 더 많이 숙면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 중 절반은 현실과 다르겠지. 결국 평소만큼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SNS를 할 거다. 오히려 혼자 방에 틀어박혀 퍼져서 삶의 질은 떨어질지도 몰라. 씻지도 않고 그냥 잠드는 날이 태반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따금 남편이 늦게 퇴근하거나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설레는 마음을 애써 감춘다. 몰래 혼자 놀 것이나 먹을 것, 혹은 저녁에 더블베드를 다 차지하고 누워 빔프로젝터로 보다 잠들 영화를 미리 정해두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이 사람 정도면 딱히 불편하지도 않고 내가 선택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 우리가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게 된대도 나는 남편의 방을 우선적으로 배정해 줄 생각이 없다. 집에 방이 두 개뿐이라면 침대를 거실로 빼서 각자의 방을 확보하든지 안되면 둘 다 가질 수 없는 거다. 내 방만 있고 남편은 방이 없어도 괜찮지만(아마 이건 남편이 안될 거다. 똑같은 성격이라.) 그 반대는 안된다. 사실 나는 지금처럼 방이 없어도 괜찮긴 한데 그래도 부부 중에 남자만 서재를 갖는 보통의 행태가 꼴 보기 싫어서 절대로 안된다. 


 이제는 동생도 독립해 나와서 부모님 집에 가면 다시 부부 침실과 아빠 방이 있다. 아빠 방을 볼 때마다 그 이기심에 화가 치민다. 왜 아빠들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데 엄마들은 그렇지 않을까. 왜 아빠들은 자기만의 방을 당당히 요구하는데 엄마들은 요구하지 않을까. 어떻게 그렇게 분노도 짜증도 없이 이 중요한 걸 양보하고 희생할까. 그게 사랑일까. 그렇다면 왜 엄마만 아빠를 사랑할까.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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