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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하 Oct 22. 2018

아주 독립적인 여자의 자존감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아서

<네이버 지식백과> 자존감 [self-esteem]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주장이 매우 강한 편인데 비해 자존감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에게 내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나는 그런 쪽으론 촉이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정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저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지 아닌지. 나는 진짜 나보다 그 사람의 눈에 비친 내가 중요한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닌데,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를 그 사람 눈에 비친 나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달까.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내 나름의 변명을 해 보자면 이렇다. 누군가가 내게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한다면 그것은 별게 아니다. 하지만 그 문장을 말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내 지위가 낮으면 그 메주는 내가 내 손으로 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게 메주를 억지로 쑤게 하고서는 고마워하긴커녕 당연하게 여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쪽에겐 응당 그 정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옳고 그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앞뒤 재지 말고 멀리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다.  


 내게 만약 메주 쑤기를 거부할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내 자존감이 이렇게 낮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주 덩치가 크고 힘이 셌거나, 능력이나 재력이 누구도 무시 못 할 수준이었거나, 혹은 자꾸 타인에게 메주를 쑤게 하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 못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메주의 미음만 나와도 지랄발광을 하는 성깔을 키우긴 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나를 살핀다. 그 미음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때때로 내가 왜 발끈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너무 많이 말해서 지겨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예비 시어머니로부터 “교사 며느리가 갖고 싶었다, 여자가 야망을 가지면 가정이 흔들린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안다, 이 말속에 악의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혹자는 그냥 그 속에 담긴 부모의 마음만 알고 넘기면 되지 왜 밑바닥의 숨은 뜻까지 끄집어내고 재생산하냐고 한다. 나도 내가 제3 자라면, 그러니까 내가 저기 스위스쯤의 토박이거나 혹은 중년 남성이라면 그저 ‘아들을 소중하게 키우셨구나.’ 또는 ‘아들이 행복하길 바라시는구나.’ 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이 바라는 그 소중한 아들의 행복은 며느리의 희생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 희생자 후보 1번이 바로 나다. 왜 또 메주 쑤기는 나의 몫인가? 어떻게 내가 거기서 침착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애정 하는 4살 서은이가 내게 거짓 울음을 보이며 사탕을 달라고 떼를 쓴다면 나는 ‘사탕이 정말 먹고 싶은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가 사실은 다른 이에겐 무서워서 떼를 쓰지 못하지만 나는 얕잡아보고 연기를 하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아이는 아이고 나는 아이에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에 내 지위가 조금 낮아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다. 어떻게 하면 내 주변 성인들의 폭력을 4살짜리 떼 정도로 웃어넘길 수 있을까. 


 세상에서 이유 없이 나를 낮게 보는 이는 너무 많다. 나의 가족들, 회사의 리더들, 혹은 길이나 상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까지. 하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점 하나는, 그들이 내게 메주를 쒀주길 기대한다 하더라도 내가 쑤기로 결심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억지로 내가 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며 나는 나의 메주나 잘 쑤며 살면 된다. 주변에 성숙하지 못한 이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내가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 이 방법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들을 4살짜리 아이라 생각하고 시혜적인 태도로 너그러이 봐주려 노력해보고자 한다. 어차피 안 쒀줄 메주에 내 마음을 소모하는 것을 그만두려 한다. 그것만이 내가 나를 너그러이 놔주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서은이에게는 얼마든지 메주를 쒀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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