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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각 Oct 24. 2021

대화의 빈칸을 채우지 않는 용기

타인의 이야기에 손을 뻗지 않는다

구전동화(口傳童話)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시간을 초월한다. 동화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수록 이야기의 뼈대가 단단하게 굵어지고 살은 풍성하게 차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의 이야기다. 


구전동화에 주인은 없다.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자가 이야기의 주인이다. 같은 이야기여도 보따리에서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 앞으로 관객은 모인다. 반면 남의 이야기는 주인이 별도로 존재한다. 문자 그대로 남의 이야기는 내가 아닌 남이다. 법적 효력을 갖춘 저작권은 없더라도 동료의 일상은 신뢰를 담보한다. 상대의 일상과 경험을 주인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사용하면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남의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하는 사람은 “입이 싸다”라는 평가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제 어디서 내 이야기를 퍼트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나는 점심시간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 동료들과 함께 회사 주변으로 나가곤 한다. 햇살도 쬐면서 광합성을 하고 가볍게 걸으면서 소화도 시킨다. 그럴 때 같이 나온 동료와 이런 저런 일상을 주고받는다. 어제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 먹었다는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앞으로 독립할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목돈 마련하는 것이 고민이라는 중차대한 이야기까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보고서 작성 건으로 팀장님하고 잠시 회의실로 향한다. 팀장님은 내가 야식으로 먹은 치킨을 소재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때 나는 어리둥절하다. 야식으로 먹은 치킨의 행방은 분명 홍대리만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팀장님이 알고 있지?” 기분이 이상하게 묘하다. 이야기의 대소 여부를 떠나서 내 일상이 빠른 속도로 퍼졌다는 사실에 불쾌하다. 나는 홍대리에게 따지기도 뭐해 앞으로 말을 가려서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할말이 없지만 무언가 말은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말없어도 편안한 상대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어색함이 줄어드는 사람이 많은 곳이 직장이다. 대화가 없는 공기가 어색해 여기 저기서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고요한 공백을 채운다. 그때 많이들 남의 이야기를 꺼내 든다.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세부적인 사항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에피소드에 각색을 첨가하고 심하면 왜곡을 가하기도 한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침묵을 유지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국 내가 대화의 빈칸을 채우지 않으면 누군가는 채우려고 할 것이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아끼는 법도 연습해야 한다. 침묵은 금이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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