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반나절을 위하여
태초에 업무가 있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지시사항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출발지가 있기에 목적지가 있는데 현재 그 업무라는 이름의 열차는 내 노트북에서 정차 중이다. 중력은 사과나무만이 아닌 회사일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 낙하하는 움직임 그 밑에 내가 있다.
어제도 일을 하고 오늘도 일을 하고 있지만 일과 나는 서로 초면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서로를 알아갈 필요가 있다. 근무시간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낯선 업무와 안개 속에서 표류중인 상위자의 의중 그리고 복잡하게 꼬여 있는 실타래 같은 이해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실무자가 살아 남는다. 주어진 일을 기한 내에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 그로 인해 상사의 인정을 받고 퇴근 후 삶의 균형을 지켜내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일은 경영진에서 관리자로 실무자로 이어진다. 고층과 저층의 높이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과 디테일로 지시사항은 모양을 갖춰 나간다. 지시가 실무자에게 도착했을 때 비로소 업무라고 부른다. 내가 주문한 택배도 막상 도착하면 “뭘 주문했지?” 하는데 주문하지 않은 택배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홍해가 갈라지고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기적을 부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바로 질문.
상사가 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것이 권리라면 실무자는 지시자에게 질문할 권리가 있다. 까라면 까야 한다는 답변을 들어도 우리는 끈기 있게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까라고 해서 까니까 삽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일은 실무자가 한다. 의미 없는 일을 두 세번 하지 않으려면 질문해야 한다. 실무자가 살아남는 질문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번째 “이 업무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왜’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면 다소 건방지게 볼 수 있다.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업무의 목적으로 바꾸어 말해보면 듣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목적은 업무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아주는데 큰 도움을 준다. 조준을 잘못하면 애초에 필요 없는 일을 하는 거와 마찬가지다. 업무의 목적을 안다는 것은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의 호수에 허우적거릴 때마다 나를 건져주는 구명보트 같은 질문이다.
두번째 “이정도 범위로 하면 될까요?”
가고자 할 방향을 결정하고 나서는 얼마만큼 그 방향으로 움직일지 정해야 한다. 두번째는 업무량을 조절하는 질문이다. 간단한 조사면 충분한지 혹은 세밀한 내용을 반영한 별첨자료까지 준비해야하는 일인지 파악해야 한다. 업무량은 나의 에너지를 배분할 수 있는 질문이다.
간혹 지시자 입장에서도 일의 범위를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첫번째 질문과 세번째 질문을 먼저하고 나중에 해도 무리가 없다. 일을 착수하고 나서 1시간 정도 지난다음 “지시한 일을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보았는데 이정도 규모로 진행하면 될지 확인 부탁드립니다.”로 세련된 방식으로 실무자 스스로 업무량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세번째 “언제까지 작업해서 드리면 될까요?”
업무량을 결정하면 그 다음에는 시간이다. 상사와 나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상사는 하루라도 빨리 보고를 받고 싶어하고 실무자는 한 시간이라도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업무의 마감기한을 협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루 평균 8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직장인은 하루의 반나절을 회사에서 보낸다. 의미 없는 일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길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