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하는 것을 나도 모를때
가끔 사막에서 보물찾기를 해야한다
나는 술에 약하다. 맥주 2잔 정도가 딱 적당한 수준의 주량이다. 술보다 탄산음료를 좋아하지만 나에게도 아끼는 술잔이 하나 있다. 워크샵을 기념해서 만든 술잔인데 가끔씩 찻장에 잘 있나 확인하는 정도로 잔을 모셔두고 있다.
워크샵의 분위기는 대체로 딱딱하고 무겁다. 왜냐하면 사업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논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결 부드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지원팀에 근무했던 나는 워크샵 참석인원 각각의 개성을 소주잔에 각인해드렸던 선물이 기억에 남는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경쟁입찰에서 항상 좋은 성과를 보여준 과장님은 ‘불패신화’라는 별명을,
시원한 성격으로 팀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대리님은 ‘걸크러쉬’를,
체구가 듬직하고 성함에 ‘철’자가 있는 팀장님은 ‘아이언맨’이라고 이름을 짓는 방식이었다.
많은 분들이 소주잔을 받고 즐거워했고 워크샵을 어느때보다 부드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벤트를 준비하고 보니 지원팀의 잔이 남아 있었다. 정작 우리는 가장 마지막에 소주잔을 만들었는데 서로 지어주거나 스스로 만들자고 했다. 나는 셀프로 별명을 만드는 쪽을 택했다. 스스로 머리를 깎으려고 하니 가위를 어떻게 잡는지 모르겠고 직접 밥을 안치려 하니 물의 양을 적정하게 맞추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고심 끝에 나온 셀프 별명은 잘 어울린다는 동료의 인정을 받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다.
누가 만들어준 이름보다는 내가 만든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다. 사실은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정체성이 필요했다. 워크샵에서 진행할 목표달성 자료를 준비하던 나는 사방이 모래로 가득 찬 사막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뾰족하고 빛나는 재능을 찾고 싶었다.
나는 계속 제자리 걸음인데 시간은 추월해서 저만치 나아가고 있었다. 연차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먼지처럼 소복하게 쌓여만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뭘 잘하지?”란 질문을 마음 속에 달고 살았는데 그 때 내 앞에 놓인 네 글자 글짓기는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나그네에게 갈 곳을 알려주는 길이자 전환점이었다.
퇴근을 하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중 직전에 함께 근무했던 팀장님을 만났다. 팀장님은 그 때의 닉네임을 부르면서 새로운 팀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안부를 건네셨다.
“네 <멘트천재>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답변을 하고 보니 셀프 닉네임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주변에서 멘트를 부탁하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시선을 확 끌 만한 카피 한 줄 없을까?”
“신규 프로젝트에 들어갈 서비스 브랜드가 필요한데?”
“보고서의 헤드라인을 조금 더 매끄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제자리에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뭘 잘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잘 하는 그 무언가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아직 발견하지 않았을 뿐이다.
마음 속 찻장에서 잔을 꺼내자. 그리고 외쳐본다. 힘차게.
“나 자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