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눈빛으로 말하는 곳이 아니다
회사가 강남에 있었다. 집 현관문에서 회사 자동문까지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는데 회사로 향하는 사람은 많았고 빈좌석은 없었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데 이러한 눈치를 출근할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규칙적인 시간에 지하철을 탑승하니 특정 승객과 하차역을 자연스럽게 기억할 수 있었다. 눈썰미 덕분에 부족한 아침잠을 청하곤 했다. 나와 비슷한 능력을 보유한 경쟁자가 생겨나 하차 준비중인 승객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 치열했던 적이 있다.
회사에도 이런 자리 싸움이 있다. 승진이라 부르는 자리인데 만원 지하철 좌석만큼이나 모실 수 있는 자리가 항상 부족하다. 지옥철에서 앉아서 가는 강력한 방법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정류소로 향하면 눈치싸움 없이도 착석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급시즌을 일찌감치 대응한 사람은 고배보다 축배를 마실 확률이 높다.
직장인은 업무로 시작해서 업무로 마무리한다. 결국 회사일로 자신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 증명이 제 역할을 해내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승진자 명단에 안전하게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약간의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매 순간 좋은 성과를 내면 무척 좋은 시나리오지만 항상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연출가일수는 없다. 따라서 작은 성과여도 꾸준히 어필할 필요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친구가 집을 사면 머리에서 열이 난다. 동료들 다 하는 진급을 본인이 못할 경우 흔들림없이 초연해질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은혜를 베풀되 대가를 바라지 말고 선행하라는 의미다. 업무는 무료봉사가 아니며 은혜를 베푸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침묵 속에서 홀로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다. 나의 쓸모를 알리는 행동은 꼭 승진을 위해서만 필요 한 것은 아니다. 회사가 나에게 주는 급여, 그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퇴사를 고했을 때 나를 붙잡지 않는다면 이는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일의 필요성을 주변 동료에게 상기시키며 실무자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티를 내보자. 각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렇기에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회사에서만큼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발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왜 있는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