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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각 Oct 24. 2021

우리회사에 악당이 살고있다

관점으로 빌런 무찌르기

마음의 소리가 목청을 높일 때가 있다. 회사 가기 싫다는 속마음이 가끔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나오곤 한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뒤에서 “어딘가 갈 수 있을 때가 좋은 거야” 하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속도 모르고” 라며 조용히 덧붙였지만 어머니는 못 들으셨던 거 같다. 


가끔 무기력한 증상이 심해지면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한 가득이다. 대부분 일시적인 경우라 몸에서 빠져나간 기력은 다시 초인종을 누르며 찾아온다. 다만 직장생활 2년차일 때 한동안 나는 “회사 가기 싫어”라는 고약한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다. 


악당은 히어로 앞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벽을 타거나 하늘을 날지 못해도 그들은 회사에서 존재감을 들어낸다. 악당은 형태를 자유롭게 바꾼다. 야근을 부르는 일더미의 모습으로 책상에 떨어지기도 하고 같은 한국말을 사용하지만 소통이 어려운 외계인으로 나타나곤 한다. 회사 가기 싫은 이유는 저마다 수백가지가 있겠지만 “회사 가기 싫어”라는 불평을 꾸준히 늘어놓게 하던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 라는 이름의 악당만큼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지원팀에서 근무했다. 지원부서는 영업부서를 서포트한다. 지원팀은 영업사원들이 영업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준다. 무대 위가 아닌 무대 뒤가 어울리는 팀이라는 생각에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라는 불만을 키우기만 했다. 그렇게 의욕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그래프가 0을 찍던 시기 제안서 회의에 참석했다.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메시지를 작업하는 회의였다. 아이디어를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의자 광고 하나를 우연히 보았다. 광고의 핵심은 명료했다.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의자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의자를 구매해야 한다.’ 광고를 보기 전에는 의자가 썩 중요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15초짜리 광고를 보고 난 후 “역시 의자가 좋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계속해서 곡소리와 불평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없어 나를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악당을 물리치기로 결심했다. 회사에서는 제안서의 차별화된 메시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에 새로운 관점을 찾아야했다. 의자의 의미를 재해석한 광고처럼 결국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만의 관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기력이 안개가 되어 아무것도 안보이게 되었을 때 한 줄기 등대 불빛처럼 빛나는 관점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배우들이 핀조명을 받고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지원팀 덕분이다.”


안개는 걷혔고 넓어진 시야 끝에서 ‘기획’이란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력자에서 기획자의 이름을 붙이고 업무를 바라보니 무대 위만을 바라보던 나는 무대 뒤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초능력은 아니지만 관점의 전환이란 기술을 통해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한다고 불만을 늘어놓게 하던 내 마음속의 악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 물론 <관점 바꾸기>가 모든 악당을 처리하는 특급 필살기는 아니며 스트레스의 근원을 치유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내 회사생활을 좀먹는 해충을 충분히 퇴치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회의 때 봤던 광고는 성공했다. 의자에 대한 나의 관점이 바뀌었고 덕분에 업무를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을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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