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개똥 글에 덧붙이는 이야기.
지난번 개똥 글의 퍼즐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이대로 끝내기에는 제가 아쉬워서, 글을 덧붙여 적고 싶었어요.
개똥을 꿰어서 보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쁘게 한 번 꿰어 볼게요.
그럼, 이제 퍼즐을 맞추러 가봐요!
고단했고
고단하면서도
앞으로도 고단할
삶을,
굳이 빗대어 봐야 한다면
퍼즐로 보고 싶다.
빗댈 많은 소재들이 있지만
퍼즐이란 소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이야기는 퍼즐을 사는 것부터 시작한다.
퍼즐을 사고 나면 주변에서는 마냥 좋아만 한다.
아마 새로운 퍼즐이 생겼다는 사실과,
완성된 퍼즐의 아름다움 때문이지 싶다.
정작 그 퍼즐을 맞춰야 하는 나는,
좋은지, 슬픈지 그저 울고 있는데 말이다.
울음을 그치고 나서야
이제 퍼즐을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포장을 뜯고
조각들을 펼치면
커다란 막막함이 펼쳐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때.
처음이란 이 순간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래도 팁이 있다면,
확실한 네 군데의 모서리부터 채우고
시작하는 것이다.
뭔가 명확한 지점이 있다면,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모서리에 붙어있은 테두리부터
채우기 시작하면 된다.
한 조각 한 조각씩.
든든히, 튼튼히.
그렇게 테두리를 다 채우면,
큰 그림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밝은 부분, 저 부분은 어두운 부분.
그렇게 부분을 나눌 수 있다면,
나머지 조각들을 구분해 두는 것도 좋다.
밝은 조각과 어두운 조각.
그렇게 밝은 조각으론,
밝은 부분을 채우고.
어두운 조각으론,
어두운 부분을 채워나가기 시작하면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그렇게 조각을 하나씩 채워나가 보면
생각보다 금방,
퍼즐은 완성된다.
시작할 때는 막막하고,
크게만 보였던
퍼즐도.
어떤 때는 밝았었고,
어떤 때는 어두웠었던
그 퍼즐은.
결국 하나의 작품이 될 뿐이다.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하나, 하나 채워 만든
어디에도, 누구도 만들지 못한
나의 작품이다.
그렇게
막막하게
시작한 삶은
울음을 터뜨리며 시작해서
하루, 하루 셀 수도 없이 많은
조각을 채워가야만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도,
조각을 채워야만 한다.
수도 없이 많이 만나게 되고
두려워 낯설고 어려워 보이는
처음을, 그런 처음을 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퍼즐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절반 정도 퍼즐을 채웠다면,
다시금 돌이켜 보는 것도 좋다.
어떤 때는
어두움이 한참이나 있어
자신조차 찾을 수 없이
헤메이던 때도,
반대로 어떤 때는
이래도 될 만큼 밝은 시간이 이어져
눈부시게 찬란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뭐 비어 있는 나머지 절반도
비슷할 테지.
어떤 때는 어두울 것이고,
어떤 때는 밝겠지.
그렇게
하루, 하루 채워가다 보면.
나의 퍼즐을 다 채워,
이제 완성되는 순간이 온다.
바로,
이 지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인데,
내가 매일 채우는 조각들로 만들어진
삶이라는 퍼즐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 완성된다.
이 삶이라는 작품은
같은 것이 전무하고도 후무할, 유일한 작품이고
잘하고 못하고도, 좋고 나쁘고도
오로지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
하루하루 퍼즐을 놓는 일은
대체로 고단하고도,
가끔은 기쁘기도
때로는 울컥한 일이지만.
그렇게 삶에 채운 나의 조각들은
결국, 나만의 작품이 된다.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끝내 조각을 다 채워내고만
나 자신을 위한 것
그러니 이 삶이라는 것은,
약간의 흠이 있어도,
살짝 삐뚤어져 있어도,
조금의 틈이 있어도,
하나뿐인
나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