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딸과 단둘이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둘이서만? 딸하고 둘이서만 여행을 간다고? 왜?"
아내와 둘이서 가는 것도 아니고, 큰 아이 아들내미보다도 먼저, 딸아이와 둘이서 여행을 가는 것이 사람들은 이상해 보였나 보다. 물어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만한 그런 대답을 해주면 좋겠지만, 내게 ‘딱 이거야’ 라며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글쎄, 나는 왜 우리 딸하고 둘이서 여행을 가고 싶었을까.
세상에 많은 여행이 있고 각각의 여행에는 ‘동행’의 이름으로 맺어진 동반자가 있다.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도 있고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고 부부가 여행을 떠나고 연인이 여행을 떠난다. 부자간에 여행을 가기도 하고 모녀간에 여행을 간다. 모자간에도 간다. 그 수많은 조합 중에 가장 빈도가 적은 여행 동반자가 ‘아빠와 딸’, 이 둘이 아닐까. 사람들이 나의 여행 계획을 어색해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고백하건대, 그런 어색함은 내게도 머물고 있었다. 나뿐이었을까.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 그러니까 아내도, 아들도, 또 시골의 우리 부모님도, 모두 되물었다. 둘이서? 아니 왜?
궁금해하는 모두에게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 채 딸과 나, 그렇게 우리 둘은 마카오행 비행기에 올랐다.
딸은 마냥 좋은 것 같았다. 아빠랑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 딱 좋다기보다는 해외여행을 간다는 그 자체가 더 좋은 듯 보였다. 아빠랑 둘이어서 더 좋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무척 감동이겠지만 나와 딸의 관계가 세상의 여느 아빠와 딸의 조합과 달리 유별난 친밀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가겠다고 스스럼없이 나선 것만 해도 어딘가. 딸과 여행을 하고 싶었던 나조차 ‘무엇 때문이었을까’ 궁금한 마당에 아이가 ‘아빠랑 둘이서 여행을 가서 좋아’하는 반응은 애초에 어려운 얘기다.
그렇게 우리는 출발을 했고 마카오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내고 또 한밤을 같이 보냈다. 생각보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을 잘 즐기고 있다. 다니는 곳마다 친밀감을 드러내며 아빠와 같이 사진을 찍고 팔짱을 끼고 또는 잠시도 손을 놓지 않고 그렇게 여행을 즐기고 있다.
저녁을 먹었다. 입이 짧은 딸아이가 무어라도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를 바라며 이것저것을 시켰다. 아주 흡족한 식사를 했다면 좋겠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몇 번 숟가락을 오가더니 이내 수저를 내려놓고는 몸을 배배 꼰다. 벌써 배가 다 찼다는 신호다. 아니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남은 음식을 싸서 숙소로 가던 길. 낮에 지나쳤던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하고 원하는 대로 아이스크림을 고르라 했더니 세상 가득 환한 표정으로 재잘거리며 얘기한다. 호텔 로비에 앉아서는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얘기, 또 한 숟가락에 좋아하는 과일 얘기, 한 숟가락 또 뜨고는 좋아하는 과자 얘기. 이런저런 얘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함께 떠 넘기며 아이의 눈을 보고 있었다. 순간 이렇게 오래도록 아이와 온전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종일, 아이가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아이에게 온 관심과 주의를 집중했던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아이가 먹고 싶은 것, 아이의 컨디션, 기분, 하고 싶어 하는 것, 하나하나 아이를 바라봤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러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와 온전하게 보내는 시간. 그런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사실 사람들이 왜 둘이서만 여행을 가는가라고 물었을 때, 내가 했던 대답은 이랬다.
“딸아이가 조금 더 크면, 사춘기가 될 테고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을 텐데 그러기 전에 여행을 떠나고 싶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아이에게 그랬다.
“딸, 나중에 누군가와 훨씬 더 가까워지고 싶거나 혹은 원래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진다 싶으면, 함께 여행을 떠나봐. 아빠가 이번에 왜 너랑 둘이서 여행을 오고 싶어 했는지 아빠도 궁금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너랑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랬나 봐. 이렇게 하루 종일 눈을 마주하고 너랑 함께 모든 시간을 보내니까 알 것 같아. 이런 시간을 너랑 보내고 싶었던 것 같아.”
별다른 여행 계획도 없이 떠나온 여행. 어디든 상관없었던 여행이다.
한 번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꼭 잡은 딸아이의 손이 내 손으로 가득 쥘 수 없어지기 전에, 또 아장아장 걸을 때 곤히 자던 아이의 얼굴이 아직은 기억에서 생생하여 지금 딸아이의 얼굴에 그때의 얼굴을 겹쳐볼 수 있을 때, 그렇게 한번 둘이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우리는 지금 여행 동반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글은 아래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