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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챗쏭 Dec 01. 2019

아빠와 딸, 단둘이 떠난 여행

[에필로그] 다시 단둘이 떠나기 위한 준비


딸과 여행을 다녀와서, 아내가 이 질문을 할까 가장 두려웠다.


“몇 번 싸웠어?”


딸을 잘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더니, 잘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화를 냈다거나 짜증 냈다거나 또 그래서 아이가 삐지고 눈물 흘리고 그랬다면... 아마도 나는 다시 아내의 허락을 받아 딸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 어려울 테니까.


아이와 여행에서 돌아오고는 한동안 ‘마카오’만 생각났다. 푹신했던 호텔의 이불 감촉부터 화려했던 야경까지. 댄싱 오브 워터쇼에서 얼굴에 튄 물방울도 다시 느껴질 정도였다. 모든 것이 다 좋았던 여행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딸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이의 식사 문제였다. 원래도 입이 짧았고 가리는 것이 많은 아이여서 먹는 것이 가장 신경 쓰였다. 마카오를 다녀온 주변 사람들이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보다 음식이 훨씬 다양하고 먹을거리가 많다고 해서 나는 괜찮겠다 생각했지만 실제는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한참 주문해놓고는 한 숟가락도 뜨지 않아 반쯤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오기도 했고 주문해 놓은 음식을 앞에 놓고는 먹지 않겠다고 해서 속상한 마음에 아이를 다그쳤다가 눈물 바람이 되기도 했다. 흑당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해서 사줬더니 두 번 먹고는 내게 들이민다. 서울에서 먹던 흑당 맛이 아니라나?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했다.


어느 누구와 여행을 하든 여행 중의 식사는 무척 중요하다. 일부러 식당만 골라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여행 중에 무엇을 먹었다는 것이 여행의 중요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아이와의 여행도 그럴 줄 알았다. 아이와 둘이지만 우리는 2인분의 음식을 어디서든 잘 먹으리라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아이와의 여행이 다른 여행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매 끼니마다 아이 위주로 식사를 했고 아이가 먹기 싫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먹고 싶다고 해도 먹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나는 아무리 먹기 싫어도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먹어야 했다.


나는 음식이 여행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이와의 여행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틀이 걸렸다. 아이를 두 번 울리고는 나는 다음 날부터 1인분만 주문했다. 아이가 뭐든 먹는 것에 관심을 보이면(하다못해 지나가다가 저 아이스크림 맛있겠다고만 해도) 가던 길을 멈추고 바로 먹었다. ‘용과’를 먹겠다는 아이를 위해 타이파 빌리지의 대형 마트를 물어 택시를 타고 가서 과일을 잔뜩 사고 과도까지 사 가지고 오기도 했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하고 보니 그간의 나의 여행이란 것이, 혹은 우리 가족의 여행이란 것이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구나 싶다. 아이는 낯선 곳에서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에 힘들어했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어른의 입맛, 우리의 기준으로만 생각했다. 남들이 다 맛있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그것이 맛있지 않을 수 있고 남들이 그것은 꼭 먹어야 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렇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여행은 아이들 위주가 아니다. 낯선 곳에서 평소에는 먹지 않는 음식도 먹고 불편한 곳에서 잠도 자고 다른 경험도 해 보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아이와 둘이 여행을 해보니 우리 가족의 여행이 세심하지 못했구나 싶다. 모두 아이에게 맞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의 목소리를 보다 잘 들어야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후에 아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랑 마카오 여행할 때 뭐가 젤 좋았어?”


아이는 여행을 마치기 하루 전날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아이가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그것으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돌이켜 보니 나도 그날이 가장 즐거웠다. 아이는 종일 재잘거렸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자지러지게 웃고 그런 날이었으니까.


나는 평소에 가족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간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집에서는 각자의 주파수대로 살다가 여행을 떠나면 서로의 주파수를 확인하기 위해 맞춰가다가 드디어는 지지직 거리지 않는 주파수에 신경을 써서 드디어는 온가족이 완벽한 하나의 소리를 찾아 함께하는 것 말이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했지만 다음에 있을 우리 가족의 여행, 또 아내와 혹은 다시 아이와 둘이서 떠날 다음번 여행을 생각했다. 다음에 이런 여행을 또 떠나게 된다면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서 함께 웃고 떠들고 하는 즐거운 여행을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래서 아이와 몇 번 싸웠을까.


두 번쯤?



*이 글은 아래의 글로부터 이어진 마지막 편입니다. 다음 번 더 즐거운 여행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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