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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Mar 16. 2018

임금 꺾기를 아시나요?

연장근로수당에 대하여

약자의 권리는 쉽게 꺾인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정규직 노동자들이야 노조를 통해서 꺾인 권리에 대해 저항이라도 해 보지만, 서연과 같은 알바 노동자들은 권리가 꺾인 줄도 모른다.  하긴 알았다 한들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판 싸우고 그만두거나, 노동부에 진정 혹은 고소를 하고 계약이 해지되거나, 알면서도 참고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구석자리에서 동료들과 꺾인 권리에 대해 한탄하거나...


차라리 권리를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서연은 생각했다.




흩어진 시간, 사라진 임금...



점장이 서연을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한 건 서연이  연차휴가를 다녀온 이후였다.

연차휴가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과근로수당을 둘러싼 서연의 주장이 점장의 부아를 돋우었다.

매장의 독특한 제도 중 하나가 15분 단위 초과근로수당 지급이었다. 본사에서 만든 제도로, 각 지점에 근무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제도였다.


서연에게는 노동법 노트가 있었다. 알바를 하면서 궁금한 것들, 혹은 삼촌에게 배운 것들을 정리해 둔 노트였다. 노트에 필기된 내용을 뒤적뒤적하다 보니 연장근로와 초과근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언제 적었는지 기억도 없었다.


1. 계약서에 나와 있는 근로시간을 소정근로시간이라고 한다.

2. 이러한 소정근로시간이 그 회사 내에서 동일한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 정규(통상) 근로자보다 짧은 근로자를 법적으로는 단시간 근로자라 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8호) 

3. 정규 근로자의 경우 법정근로시간(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이를 연장근로수당이라 하며, 근로기준법 제56조 참조)

4. 단시간 근로자의 경우 소정근로시간만 초과하더라도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이를 흔히 초과근로수당이라 하며,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참조)

5. 단, 1.5배를 지급해야 하는 사업장은 상시 근로자수가 5인 이상인 사업장에 한한다.


서연은 자신의 시간이 공중에 흩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식업체의 특성상 근무시간이 끝났다 하더라도 최소 10분가량은 뒷정리를 해야 했다. 

계약상의 퇴근시간은 10시였지만 실제 퇴근시간은 10시 10분이었다.


하지만 그 10분이 허공에 뿌린 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초과근로는 15분부터 인정해 주고 있었다. 10분만 더 근로했다는 이유로 - 15분이 아니라 - 가게에선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계약 연장도 안될 텐데, 따져볼 건 따져보자, 싶었다.


"점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서연씨 뭐지? 드디어... 사표 내려고?"


점장은 막가파가 되어 갔다. 언어의 품격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저렇지는 않았었는데... 서연은 약간, 아주 약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어 보았댔자 점장의 인품이 바뀔 것 같진 않았다. 

인품은 훌륭하지만 본사의 강요와 압박 때문에 하릴없이 악역을 맡는 점장도 있지만 박점장은 인품 자체가 의심스러운 인간이었다.


"점장님, 저 같은 알바 노동자들, 보통 10시 10분까지 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10분에 대해서는 수당 지급, 안 하는 것 같아서요"

"휴... 독하다 독해. 하다 하다  이제 10분을 가지고 따지냐?"


"아뇨. 10분이 아닙니다. 저만 하더라도 빨리 퇴근하는 날을 빼면, 거의 매일 10분을 더 근무합니다. 1주일에 보통 40분을 더 근무하고요... 한 달로 따지면... 40분 곱하기 4주. 160분입니다.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 규정이 그래. 15분 단위로 연장근로수당 지급한다고 돼 있어. 그걸 법적으로 취업규칙이라고 하지. 취업규칙은 내 맘대로 만든 거 아냐! 제발, 좀! 적당하게 살자. 응?"


"잘못된 건 고쳐야지요. 어차피 전 나갈 날도 얼마 안 남았고요. 제대로 계산, 안 해주시면 노동부에 진정서 내겠습니다. 제가 독하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법대로 지급해 주시면 됩니다"


내가 독한 게 아니라 그깟 10분, 지급 안 하려는 회사가 독한 거, 아닌가? 

왜 우리 사회는 을에게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으면서도 갑에게는 손쉽게 면죄부를 주는 걸까?


서연은 자기가, 독한 사람 취급받는 게 억울했다. 
상식과 법을 얘기하는 사람에게 관대하지 못한 사회였다.
성희롱을 당했다고 얘기하면 되려 피해자의 옷차림을 문제 삼는 사회. 
정시 퇴근하는 여성을  땡녀라고 비난하는 사회. 
연장근로수당, 달라고 하는 알바생을 독하다고 욕하는 사회.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사회생활 못한다고, 뒷담화를 하는 사회...
10분의 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회...

우리 사회 노동인권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노동자는 산업화 시대의 역군이었고,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할, 위대한 대한민국의 근로자였다. 


10분의 권리 따위, 공기 중의 티끌만도 못한 것이었다. 
미세한 파시즘의 흔적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다.

점장은 계속 취업규칙을 거들먹거렸다. 취업규칙에서 15분 단위로 지급하기로 돼 있으니, 그대로 지키는 것뿐이라고 했다.   


"점장님, 그 취업규칙이 불법입니다"

"뭐, 뭐라고? 서연씨. 이 취업규칙, 그냥 만든 거 아냐. 본 인사팀에다가 담당 변호사가 붙어서 같이 만든 거라고! 외식업체에 적합한 모델로 말이야. 네가 그 사람들보다 법을 잘 알아? 응?"


"노동법을 잘 모르는 전문가인 모양이죠... 그 사람들..."

"참나... 서연씨. 그 정도로 자신 있어? 한 번 해 봐. 그럼... 누가 이기나 보자고"


이런 취업규칙을 제안한 인사담당자나 사내 변호사를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회사에서는 인건비를 절감할 방법을 찾으라고 닦달을 했을 테고, 그들은 그저 법망을 피해갈 창의적인 방법(?)을 찾았을 게다. 단지 그 방법이 상식을 벗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서연과 같이, 상식을 외치는 알바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근로감독관을 만나다.



사실 서연은 근로감독관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전 직장에서 서연은 매주 15시간을 근무했다. 한 주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이상이면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회사는 서연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서연은 노동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근로계약서에 14시간이 적혀 있다는 이유로 주휴수당을 인정하지 않았다. 계약서는 14시간으로 찍혀 있지만, 사실은 매일 15시간 근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근로감독관은 오히려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지금 학생 말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잖아요. 자기 권리를 챙기려면 미리 준비를 좀 해요. 학생. 억지 주장만 하지 말고..."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억울하고 불쾌했다.

특히 억지, 라는 단어 사용이 서연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마치 없는 일을 꾸며서, 주휴수당 받아내려는 악질적인 알바생처럼 비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 창피한 일인지 몰랐다. 


때로 진실은 스스로를 깊은 어두움 속에 감추기도 한다. 원래 가치 있는 건 발견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진실은 보물찾기 같은 건가, 서연은 생각했다.      


우리나라 근로감독관들의 살인적인 업무량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데, 인원과 물리적 시간의 부족은 조사의 부실을 낳고, 조사의 부실은 진실의 은폐로 이어졌다. 근로감독관의 숫자도 늘려야 한다. 해마다 시간과 사람이 부족하다는 변명을 반복한다면, 어떠한 진보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거다. 


※ 2018년 7급, 9급 공무원 시험부터 고용노동직렬을 추가, 대규모의 인원을 선발하는 것으로 확정되었으며, 노동법 과목도 추가되었다. 근로감독관의 업무량을 조정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해석된다. 




노동부를 찾아갔다. 지난번 일을 거울삼아, 서연은 꼼꼼하게 증빙자료를 준비했다. 


약자의 권리를 먼지처럼 여기는 사회에서는
약자 스스로가 좀 더 움직여야 했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래도 현실이었다. 

서연은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현실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챙겼다. 매장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세부적인 근로시간도 정리해 두었다. 10분의 초과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동료 알바생들의 증언도 받아 두었다. 

특히 알바노조에 가입돼 있던 한신이 뒤에서 조용히 서연을 도와주었다.   


근로감독관은 서연을 칭찬했다.


"와. 대단하네요... 이렇게 꼼꼼하게 준비하다니... 이거 점장님이 어떻게 못하겠는데요. 점장님, 이건 초과근로수당, 지급하셔야 합니다. 5인 이상 사업장이니까, 곱하기 1.5로 해서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회사 취업규칙이 그렇게 돼 있다고요. 15분 단위로 연장근로수당 지급한다고요. 그 취업규칙, 이 친구도 이미 알고 있고요."


"점장님, 그 취업규칙. 불법이에요. 일을 시켰으면 돈을 주셔야죠.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법이에요. 점장님, 알고 계시죠?"


"아, 아니, 그래도..."


"그러니깐요... 그거 근로기준법 위반한 취업규칙이니까, 지급하셔야 합니다. 안 하시면 검찰로 사건, 송치합니다. 아시겠어요?"


생각보다 사건은 쉽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매장의 알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꺾인 줄도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10분의 무상봉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매장의 어떤 알바생들은 서연을 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독한 알바생을 만난 점장이 불쌍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동정만으로 사회는 성장하지 않는다. 

서연은 최선을 다해 일했고, 일한 만큼의 권리를 주장했을 뿐이다.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꺾인 권리에 대해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만큼 사회는 진보한다.


점장은, 서연의 앎이 실천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기 드문 알바 노동자였다.


앎과 삶이 공존하는 청춘이란, 이런 사회에서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알지도 못하거나, 혹은 실천하지 못하거나...


그들의 권리를 꺾는 것은 그들의 청춘을 꺾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청춘의 임금을 꺾고, 시간을 꺾고 있다.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꺾기의 시대...


서연은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당시의 서연은 송곳과도 같이 날카로웠다. 


제8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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