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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Mar 09. 2018

빨리 퇴근하세요. 돈은 없습니다!

휴업수당에 대하여.

인연의 끈



다시는 점장의 이름을 들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연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어느 날, 민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연아, 너 인터넷 봤어? 우리 회사가 실검 1위야. 와, 대박"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한 번 인터넷 들어가 봐. 우리, 일 없을 때, 점장이 자주 조퇴시켰던 것, 기억나니?"

"응, 그랬지"


"민기가 터트렸어."

"응?"


"최근에 민기가 알바, 관뒀거든. 근데, 민기가 퇴직하면서 점장한테, 그거 잘못된 거 아니냐며, 휴업수당인가, 뭔가를 달라고 했대."

"민기가? 점장한테는 끽소리도 못하는 민기가?"


서연은 재차 민기가 그런 요구를 한 게 맞는지 확인했다.


"그렇다니까. 나, 완전 깜놀. 점장도 놀랐겠지. 그래도 점장이 줄 사람이냐? 근데, 민기도 보통이 아니더라고. 노동부에 가서 터뜨렸어. 아는 기자 형님도 있었나 봐. 기자한테도 다 터트리고... 인터넷에 그것 때문에 난리 났어. 인터넷도 좀 보고 그래라."

"어, 어, 그래... 알았어. 민주야. 나 지금 좀 바빠서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 고마워."




서연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5시부터 10시까지 일했었다.

5시부터 9시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음식 나르고, 정리하고, 손님들 불평 들어주고, 청소하고...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는 날에는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도 벌어지곤 했다. 인생이 다 그런 모양이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의 연속들...


그나마 9시가 지나면 여유가 있었다. 눈에 띄게 손님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9시 반 이후에는 아예 테이블이 다 비어있는 날도 있었다.


"서연 씨, 잠깐 나 좀 볼까?"

"예, 점장님"


"오늘 손님도 별로 없고 하니까, 오늘은 그만 들어가 봐"

"네? 그래도 10시까지가 근무시간인데..."


"괜찮아. 손님도 없는데, 뭐. 그냥 들어가."

"아. 예... 그래도 되는 건지..."


서연은 처음에는 그게 호의인 줄  알았다. 꽤 쿨한 점장이라고 생각했다.

조그마한 가게의 어려움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조그마한 회사도 아닌 누구나 알 만한 굴지의 외식업체에서 그런 꼼수를 쓸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월급이 나왔다.

뭔가 이상했다. 시급에 근로시간을 곱한 금액이 아니었다. 점장을 찾았다.


"저기요, 점장님... 월급이 좀 잘 못 들어온 게 아닌가 싶어서요..."

"응? 그럴 리가? 뭐가 문제지?"


"원래 근로시간만큼 돈이 안 들어온 것 같아서요. 저 매일 5시간씩 일했는데, 아무리 계산해도 금액이 안 맞아서요..."

"서연 씨.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자기, 이번 달에 네 번 조퇴했잖아. 기억 안 나? 30분 빨리 퇴근했잖아. 조퇴한 것까지 임금을 줄 수는 없어. 안 그래?"


"아, 그건 점장님이 빨리 퇴근하라고 하셔서..."

"그래, 그래. 그래서 빨리 갔잖아. 손님도 없는데 빈둥빈둥 있으면서 월급 받아가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그게 조퇴라는 거야."

법을 모르면 궤변도 논리가 된다.


서연은 점장의 논리가 좀 이상했지만 빨리 퇴근한 것도 사실이므로 이후에는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걸 조퇴라 지레 믿어 버렸다.




휴업수당의 요건



서연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민주의 말대로 서연의 가게가 실검 1위에 올라와 있었다.

"우리나라 대표 외식업체, 알바생 임금 떼먹어..."라는 제목부터, "사라진 근로자의 임금", "억지 조퇴로 임금 착취"라는 제목까지, 다양한 표현으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한 신문기사를 클릭했다.


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유명 외식사업업체가 노동자 1,000여 명에 대해 약 1억 6천만원에 해당하는 임금을 체불한 것이 드러났다. 노동부는 조사 결과 이 업체가 연차수당, 약정한 시간보다 일찍 퇴근시키는 경우 주게 되어있는 휴업수당, 15분 단위로 임금을 지급하는 소위 꺾기로 인한 임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매장도 꽤 문제가 많았구나, 서연은 생각했다.

그리고 기사의 한 단락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약정한 시간보다 일찍 퇴근시키는 경우 주게 되어 있는 휴업수당...


서연은 그제야, 자신의 퇴근이 조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쩐지... 뭔가 이상했어. 조퇴는 자기 사정으로 빨리 가는 거잖아. 내가 빨리 간 거는 점장이 가라고 해서 간 거고. 그걸 휴업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삼촌이 훈련을 시켜서 그런지, 서연은 기사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근로기준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휴업, 휴업, 휴업... 어디에 있을까? 휴업... 아, 찾았다. 여기 있구나'


휴업은 휴업수당이라는 이름으로 근로기준법 46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46조 휴업수당]
①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이 통상임금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을 휴업수당으로 지급할 수 있다.
②제1항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한 사유로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제1항의 기준에 못 미치는 휴업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자기가 빨리 퇴근한 게 아니고, 사용자가 빨리 퇴근시킨 걸 법에서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라고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아, 근로자는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회사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휴업이구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빠도 회사의 경영상황이 좋지 않아서 몇 시간 빨리 퇴근하곤 했었는데...'


판매가 부진해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 자금난 때문에 일을 시키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은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법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휴업이라 표현하고 있었다.




휴업수당의 금액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을 한 건 아니다. 서연은 당연히 임금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노동법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동자의 보호법. 노동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틀을 바꿔야만 했다.  


사용자가 일을 시키지 않은 책임을 근로자에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경우에는 근로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하여,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해야 한다. 그게 노동법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노동자만을 편애하는 법은 아니다.

 

회사는,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70%에 미치지 못하는 휴업수당을 지급할 수 있었다. 꼼수를 쓴 경우가 아니라면, 회사에게도 피할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인권의 가치


갑자기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점장의 전화번호였다.  


박서연 님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업체가 근로기준법을 숙지하지 못하여 일부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근로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저희 한국점에서도 이에 따라, 박서연 님이 근무하는 기간 중 지급하지 못한 휴업수당 80,000원을 오늘자로 귀하의 급여통장으로 입금해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이해를 구합니다.
혹 문의사항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점장, 박영구 드림.


잊고 있었다. 점장의 이름.

이런 사건으로 다시 그 이름을 보게 될 줄 몰랐다.

점장은 서연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거다. 하지만, 서연은 그 짧은 시간을 도려내고 싶었다.

마지막 두 달은 가게로 나서기 위해 신발을 신을 때부터 괴로웠다.


두렵지는 않았지만, 싫었다.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너희를 위협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감추어진 일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일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누가복음 8장 17절)


'결국 드러났구나. 예언의 성취인 건가...' 

서연은 마치 점장처럼 중얼거렸다.  


옛날에 한 영국의 기자가 그랬단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대구, 마산, 창원의 노동자들. 현실 속에서 학문을 추구한 정의로운 대학생들. 그리고 이름 없는 들풀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민주주의가 쓰였다.

 

그렇지만, 일터에서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서연은 그 영국 기자의 조롱을 반박할 수 없었다.


노동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정의와 인권이 아니었다.
오직 생존이었고, 오직 돈이었고, 오직 권력이었다.
낡은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지저분한 차별의 칼부림이 난무했고,
성희롱의 눈빛과 말투는 거침없이 온 공간에 퍼져 가고 있었다.


적자생존의 신자유주의의 질서 속에서,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과연 인권의 꽃이 필 수 있을까, 서연은 회의적이었다.

노동인권의 토양이 척박한 우리나라에서, 아직 희망은 누군가의 용기에서, 누군가의 희생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민기에게 빚을 졌네. 8만원...'


한 때는 민기의 비겁함에 실망했다.

하지만 결국 민기의 용기가 없었다면, 이 8만원은 공중에 흩어져서 사라질 돈이었다.


통장에 선명하게 찍힌 ₩80,000의 가치는 그런 것이었다.


소수의 용기와 희생 위에 세워진 인권의 값이었다.  

민기는 그 대기업체에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를 원했다.

민기의 스펙은 나쁘지 않았고, 점장도 민기를 추천해 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 회사가 민기를 채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민기에게 카톡 문자를 보냈다. 두 달만에 보내는 카톡이었다.


"네가 가고 싶어 했던 대기업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다니, 대단하다, 너... 민주가 고맙다고 전해 달래. 나 역시. Me too."


제7화. 끝.


브런치에 연재된 "소설로 읽는 사회생활과 노동법"을 엮어서 "당하지 않습니다(카멜북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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