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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Sep 17. 2020

집에 있을 때 '히치콕' 보려고 했잖아요

<싸이코>(1960)를 보고


서스펜스와 공포는 곧잘 동의어로 쓰이곤 하지만 서스펜스의 명장 앨프리드 히치콕은 그것은 오해라고 말한 적 있다. 다큐멘터리 <히치콕 트뤼포>(2015)에서 1962년의 히치콕은 공포가 없이도 서스펜스는 형성될 수 있으며, 예컨대 남자에게 고백받은 여자의 대답을 전화 너머 기다리는 도청자의 심정이 곧 서스펜스라고 친절히 덧붙인다.


<싸이코>(1960)는 <현기증>(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의 후작이자 <새>(1963)의 전작으로 언급한 걸작들과 함께 히치콕에게 후기 최전성기를 만들어준 또 한 편의 걸작이다. 음산한 집에서 금발의 미녀에게 칼을 휘두르는 미치광이 캐릭터와 샤워 살인 시퀀스의 유명세는 <싸이코>의 서스펜스를 쉬이 공포로 한정한다. 그러나 기실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사이코의 등장 전부터 있었으며 샤워실의 비명 뒤에도 계속된다.


출처 = IMDb <Psycho>(1960)


이어달리기에서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듯 범죄 스릴러 <싸이코>는 러닝타임(109분) 절반 지점(49분)에서 발생하는 매리언 크레인(재닛 리)의 죽음을 기점으로 미스터리물로 변신한다. 전반에서 관객은 고객의 현금 사만 달러를 훔친 부동산 직원 매리언이 무사히 도망갈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며 지켜본다. 차를 타고 도주 중인 매리언이 신호를 받고 멈춰있을 때 길을 걷던 상사가 그를 알아보고 쳐다보는 순간이나 그를 은근슬쩍 뒤쫓는 교통경찰의 위협적인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은 너도나도 침을 꼴깍 삼키게 하는 대목이다.


사람만큼이나 돈도 신경 쓰인다. 매리언의 가방 안에 잠들어 있던 현금다발은 그가 들린 중고차 가게 화장실에서 잠깐 바깥 공기를 마셨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신문지에 싸여 매리언이 묵은 모텔의 객실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안착한다. 저 신문 뭉치가 돈이란 걸 아는 관객으로선 노출된 그것의 안전을 걱정하고 단순한 배경이었던 객실 1호는 세상 불안한 공간이 된다.


출처 = https://bostonhassle.com/psycho-1960-dir-alfred-hitchcock/


예상치 못한 매리언의 이른 퇴장으로 관객은 감정 이입할 인물을 잃고 졸지에 스크린 속 미아가 된다. 그러나 그 꼴도 잠시 매리언의 시신과 돈다발이 함께 실린 차가 늪에 순순히 잠기다가 갑자기 멈췄을 때, 노먼 베이츠(앤서니 퍼킨스)와 함께 어서 다시 차가 가라앉길 바란 관객은 자신이 새로운 이입 대상을 찾았음을 직감한다. 노먼은 모텔 주인으로서 꽤 친절했고 매리언을 죽인 건 그가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는 최근의 기억은 미심쩍은 그를 선택했다는 관객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하지만 그가 분명 벽에 낸 구멍 너머로 매리언을 훔쳐봤고 살인을 은폐했단 사실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먼을 사립 탐정 아보개스트(마틴 발삼)가 노먼을 매리언의 애인 샘(존 개빈)과 친언니 라일라(베라 마일스)가 모텔을 수색할 때 그가 걸리지 않길 바라는 관객의 마음은 죄책감과 떨어질 수 없다. 어머니의 실체가 자꾸만 유예되고 노먼이 결말 직전까지도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격상되지 않아 관객은 조바심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언덕 위의 집 지하실에서 오래전 해골이 된 어머니와 이성 복장 도착자라는 본모습으로 라일라에게 달려드는 노먼을 목격했을 때 관객은 혼비백산한다. 관객을 애먹이는 것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히치콕이 바라는 바다.


출처 = http://retlaw.lenburgpics.com/1960/index.htm


히치콕은 <싸이코>의 극장 관람에서도 관객을 애먹였다. 1960년 여름에 개봉한 <싸이코>는 당시 상영 중간에 관객 입장이 절대 불가한 영화였다. 저예산에 톱스타가 없는 영화를 위해 감독과 배급사 패러마운트가 도모한 요란한 홍보 작전이었다. 그들은 극장과 계약할 때 영화 시작 뒤에 손님을 받지 말라는 전제 조건을 극장주에게 내걸기까지 했다.


내키는 대로 극장 안을 들락거리던 시절에 난데없이 경호원의 통제를 받으며 영화 시작 전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싸이코>의 예비 관객은 다음과 같은 히치콕의 음성 메시지도 듣게 된다. “<싸이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쭉 봐야 가장 즐겁게 감상할 수 있어요. 여러분에게는 이런 방식이 낯설겠지만, <싸이코>는 대부분의 영화와 다르고, 앞으로 되돌려 보면 재미가 떨어진답니다.” (「히치콕과 사이코」, 스티븐 레벨로, 북폴리오, 2012) 이 낯설고도 까다로운 사전 의식으로 길 위의 관객은 영화 시작 전부터 긴장과 흥분 상태에 빠진다. 서스펜스의 거장은 이미 관객과의 게임을 시작했다.





[chaeyooe_cinema]

싸이코 PSYCHO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싸이코>의 서스펜스는 사이코의 등장 전부터 있었으며 샤워실의 비명 뒤에도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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