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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ul 06. 2019

산다는 건

이책이글 98회_이글_모든게 다 이 스마트폰 때문이다_190501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쉽게 먹고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


빈 소주 병을 뒤집어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선배가 말했다. 언제나 하나 마나 한 소리만 하는 사람이라서, 영수는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냥 선배라는 호칭 정도가 충분한, 다른 사람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영수는 대답하지 않았고, 선배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애초에 쉽게 먹고살려고 시작한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돈을 벌고 싶었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도 싶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일을 찾아 악착같이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와서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 일이 딱히 사람을 돕는 것도 아니고, 돈이 당연하게 따라붙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영수는 일단 개업만 하면 어떻게든 잘 풀릴 거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서둘러 개업부터 했고, 한 달 정도 사무실 가구만 쳐다보며 지냈다. 자신의 천직이 이쪽이 아니라 인테리어가 아니었을까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려는 무렵, 첫 의뢰인이 찾아왔다.


의뢰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고소장에 꼭 넣어달라며 자신이 적어온 글을 건넸다.


[모든 게 다 이 스마트폰 때문이다. 이따위 기계만 없었다면 내가 그런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원인 제공을 한 것이 스마트폰이다. 나는 그저 할 수 있으니까 한 것뿐이다. 할 수 있게 만들어놓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무슨 법이란 말인가. 나는 지금 내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


의뢰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다가 잡혔다고 했다.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찍었고,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찍었다. 왜 찍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적어온 것이었다. 찍을 수 있으니까 찍었을 뿐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찍은 게 아니고 그냥 찍었을 뿐인데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건가. 라는 것이 의뢰인의 주장이었다.


의뢰인은 애플을 고소해달라고 했다. 그는 갤럭시로 사진을 찍었다. 그럼에도 애플을 고소하겠다고 했다. 갤럭시를 쓰지만 역시 스마트폰 하면 아이폰이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수는 그를 변호하게 되었다. 주변의 모두가 영수를 말렸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냐고, 아니 애초에 이게 말이 되는 사건이냐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영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앞에서, 어느새 엎드려 자고 있는 선배만 영수를 탓하지 않았다. 영수는 선배의 정수리를 보며 처음으로 대답했다.


“누가 누구를 고소하면 사건이 되는 거고, 저는 의뢰인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이에요. 그리고 저는 할 일이 필요했잖아요.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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