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이글 96회_이글_결국 봄은 오지 않았다_190411
여기에서 거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냐는 물음에 대충 어느 정도 걸리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고, 그건 여기에서 거기로 출발하는 시간과 이동 수단, 다른 조건들을 알아야 알려줄 수 있다며 되묻는 사람이 있다. 그냥 말해주는 사람은 시원시원해서 좋고 되묻는 사람은 정확해서 좋다.
그리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같이 지내기 좋다. 딱히 모난 곳이 없으면 두루두루 어울리기 편하고 찾는 사람도 많다. 어느 자리에서건 모임의 중심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풀어주는 사람. 다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게 그 사람 덕분인지 알아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일단 부르게 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몸이 하나라는 게 안타까웠던 시절.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부지런히, 열심히 다녔다. 가고, 웃고, 듣고, 말하고, 소개해주고, 다른 곳에 가서 소개받고, 인사하고, 듣고, 웃고, 말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기꺼웠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었고 환영받는 사람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몇 번쯤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자주 마주치고 가까운 곳에 앉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고백을 받고 있었다.
“좋아해.”
상대는 달랐지만, 내 대답은 같았다.
“음.. 니가 아무리 지금 날 좋아한다 그래도.. 그건 지금뿐인지도 몰라. 왜냐하면.. 그건 말야..”
핑계는 매번 달랐지만, 이유는 하나였다. 부지런하게 열심히 돌리고 있는 그 생활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면 그 외의 모든 사람을 잃을 것 같았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모두의 일상에 결국 봄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봄이 와서 따뜻해지면 각자 떠날 것만 같았다. 끝내 우리가 서로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겨울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많은 모임과 만남에 참석하는 것이 내 능력인 줄 알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저, 무대가 많았다. 내가 무대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무대가 많았던 한 시기가 거기 있었던 것뿐이었다.
때로 아쉽고, 미련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냥 열심이었던 시절의 내가 애틋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시절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뭐라도 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오늘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