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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발달지연 골든타임의 무게

자폐 스펙트럼 진단 이후의 마음가짐

by 청크리

영유아 발달 골든타임이란 말은 요즘 엄마들에게는 흔한 소재다. 내가 경험한 발달 골든타임, 그리고 과거의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것들을 써내려 가려한다.


나는 약 20개월쯤 아이와 상호작용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며 발달지연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골든타임이란 개념에 푹 빠졌다. 보통 24개월, 36개월, 48개월로 나누어진 골든타임 시기는 내게 뇌발달 촉진을 하는 많은 공부를 하게도 했지만 초조함과 압박감으로 인한 마음의 병도 주었다.


단순지연이면 36개월에 말이 트인다던데 그 이후에도 안 트이면 평생 말을 못 하는 건 아닐까? 48개월에는 말이 트여야 예후가 좋다던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아이의 이 소중한 골든타임을 망쳐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무거운 생각에 매일 시달렸다.


말이 트이지 않은 상태로 저 시기를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늘 불안하고 우울했다. 내 핸드폰에 있는 한 달 전, 두 달 전, 또 1년 전의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아이를 잃어버리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48개월을 훌쩍 지난 아이는 여전히 긍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최대한 진단명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까지 약 2년이 넘는 시간을 달려왔다. 진단명을 한시라도 잊고 지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느린 아이 부모님이라면 잘 알겠지만 진단명이란 게 아이가 너무 어리면 안 나올 때도 있고 크면서 계속 바뀌거나 여러 가지가 동시에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진단명에 얽매이지 않았다 함은 어떤 것 일지 모르니 연연하지 말자의 수준이 아닌 단순 발달지연일 수도 있다는 가능을 늘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아이의 발달장애를 인정하지 못하거나 회피해서가 아닌 내 부주의로 아이의 가능성을 진단명에 제한할까 봐 혹은 내 편견으로 인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까 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좀 더 성숙한 엄마였더라면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구나 하면서도 갖갖은 노력을 하고 정서를 신경 써주고 이끌어줄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럴 자신이 없는 편협한 인간이었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진단명 안에 아이를 가둬둘 것만 같아 무서웠다. 스펙트럼 아이들 각각의 모습과 장단점은 너무나 다양하고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의 무의식 그 어느 한 부분이라도 아이를 진단명에 갇혀있게 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다양성을 포용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캐네디언이 맞단 말인가.


큰 틀로 보면 스펙트럼일 수 있겠다란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아이가 여러 수업을 받음에도 지지부진한 모습에 힘들 때면 그냥 내가 못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아이는 그저 이렇게 태어난 것인데, 발달장애가 있을 뿐인데 내가 잘못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장애등록을 하고 특수교육을 받아야 할 시간에 내가 내 맘 편하자고 단순지연이란 가능성을 열어둔 게 아닐까 하고 매일, 매 순간 고민했다. 아이가 커갈수록 주변의 느린 친구들은 하나둘씩 장애등록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 아이의 상태가 경한 편이라 이런 고민과 선택도 가능했던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아이가 두 돌을 넘었을 무렵 빅 5 대학병원 중 두 곳에서 자폐 스펙트럼 소견을 받았을 정도로 눈에 띄게 퇴행했었고 상호작용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는 엄마아빠에게 끊임없이 놀자고 보채고 초콜릿 하나 더 먹겠다고 웃으며 애교도 부리고 할머니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할머니를 우리 차 조수석에 밀쳐 앉히고는 “출발!”을 외친다.


그렇다고 현재 아이의 발달지연이 “완치”가 된 것도 아니고 완치라는 것이 나의 목표도 아니다. 내가 과거의 내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예측불가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라는 얘기다. 아이를 발달검사 결과지에 적힌 숫자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른에게는 편한 길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결과지에 어안이 벙벙하고 모든 걸 부정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답”이 나왔다는 안도감과 센터를 전전하면 아이가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들기도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결과론적인 인간인 나는 아무리 발달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자신해도 무의식의 세계까지는 컨트롤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의 고정관념 가득한 생각과 태도가 아이에게 끼치는 쌀 한 톨만큼의 영향도 무서웠다. 그래서 선천적인 게 아닐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라는 선택을 해왔다.


고맙게도 지난 2년 동안 아이는 여러 수업, 변화된 양육방식, 그리고 노력하는 엄마아빠를 잘 따라와 주었고 지금도 그 시간 동안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아이에게 모든 걸 다 쏟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매일매일 엄마로서는 너무 괴로웠다. 그냥 이 아이의 장애를 못 받아들이는 게 아닌지, 인정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닌지 자기 검열을 하고 또 했다. 어떤 날은 그래 아이는 단순지연이 아니니 그만 안달복달하고 행복하게만 키우자, 나도 그만 고민하고 좀 편해지자라고 다짐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볼 때, 또 나와의 상호작용이 커져갈 때면 더 큰 가능성을 접고 어른들이 검사 결과지의 수치로만 정해 놓은 길로만 데려가기가 너무 미안해졌다.


어떤 상태의 아이를 키우고 계실지 또 어떤 양육을 해오신 부모님이 이 글을 읽게 될지 몰라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본인을 믿어주길 바란다. 나는 아이 생애 첫 2년 동안 해온 양육에 있어 후회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그 이후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계속 자책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고 나 자신을 못 미더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행착오일 뿐 분명히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으니 당신은 나만큼은 힘들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다만 진단명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자신하거나 반대로 어차피 내 아이는 진단명이 있고 선천적인 거라고 빨리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해답이 없는 그 터널 안에서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 가겠지만 그 인고의 시간 동안 함께 고군분투하며 아이는 성장할 테니 아이를 꼭 믿어주길 바란다. 엄마 마음을 애태우며 똑딱 거리는 골든타임 동안 최대한 많은 수업이나 치료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위해서 말이다.


또한 모든 아이들은 제 각기 다른 특이사항이 (individual difference)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발달장애 아이의 모습을 빗대어 아이가 신난 모습을 상동행동이라 칭한다던지 하는 획일화된 관점만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면밀히 관찰하며 무언가를 바꾸어 나가고 싶다면 차라리 내가 부모로서 놓친 기본적인 것들을 짚어 나가면 도움이 된다. 나의 내면, 부부사이, 아이를 대하는 일관적인 태도 같은 기본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간과하는 것들 말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처음 아이의 발달지연을 알게 되었을 때의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이다. 소위 얘기하는 골든타임이 지나도 우리 아이는 자란다. 부모도 같이 자란다. 초조해하지 말고 아이를 또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사랑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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