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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 속에서 찾는 중심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칠드런 오브 맨(2006)

by Ashley Mar 27. 2025

 물 속에서 바라본 바깥 세상은 햇살이 수면의 물결을 따라 흩날리는 곳이다. 하늘에 날아가는 새는 어떠한 소리도 없다. 숨을 내쉴 때 생기는 공기 방울의 소리를 제외하면 물의 감촉만이 그 자리를 대신해 느껴진다. 표면에 파장이 일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물결이 있다면 그 안은 고요하다. 깊게 들어갈수록 물은 선명하게 무게의 성질을 띈다. 물살을 가를 때 팔에 느껴지는 무게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더 커진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새로운 형태의 물결을 보고 있자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같다. 얕은 층위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해서 서퍼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똑같은 파도는 절대 오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파문과는 다르게, 깊은 관계는 고요하고 안정감을 준다. 나의 속마음을 마침내 발화할 때 느껴지는 것처럼. 항상 거기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사람을 볼 때처럼. 긴 여행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돌아온 집에서 나를 기다렸던 이가 차려준 집밥을 먹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해서 보면 물은 순환한다. 표면에서 심해로, 심해에서 표면으로. 표층순환과 심층순환을 하면서. 사람도, 물도 모든 것은 제각각의 속도로 변화하고 이동한다. 헤겔은 변화의 양상을 정(正) 반(反) 합(合)으로 설명했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는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때때로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멈춰서 박제된 것이 사랑은 아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변화하며 불안정한 것 역시 사랑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사랑은 그보다는 좀 더 생명력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담한 것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항상 옳은 것 혹은 좋은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항상 틀린 것 혹은 나쁜 것 역시 없다.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은 정(正)과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 반(反)이 있고, 둘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모두 맞는 것일 수 있다. 사실, 그 둘은 서로가 존재하기에 합(合)이 된다. 에블린이 보았던 스스로의 부족함(正)은 따뜻한 너-웨이먼드-의 존재(反)가 있음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合). 처음에 부족해 보였던 나의 특성은 너와 내가 연결되고 서로가 가치롭게 여겨질 수 있는 지점이 되었기에 더 이상 그저 취약한 것으로 남지 않는다. 조이가 에블린이 너무 미울 때(正)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合)은 당신 안에 나를 향한 사랑이 존재할 것임(反)을 부여잡아 믿었기 때문이다. 미움과 사랑이 뒤섞여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관계는 이전과 다를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갈등이 할퀴었던 자리는 쓰리고 아리다. 하지만 이제 나는 네가, 너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전보다 더 잘 안다. 그저 한 덩이의 케이크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너의 욕구와, 소망과, 그것들이 좌절되었을 때의 절망이, 그리고 네가 기억하고 있는 그 감정들의 연대기가 여러 결의 층위로 쌓아진 것이었음을 느낀다. 모든 것을 베이글 위에 올릴 수 밖에 없었던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 베이글은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나는 그저 밥 한숟갈 뜨기 싫을 정도로 힘들 때 그 위에 올라갔던 크고 작은 걱정들이 생각날 뿐이다. 버리고 싶은 것을 넣고 쓰레기통의 뚜껑을 닫을 때처럼 네가 베이글 구멍 안으로 버리고 싶었던 것들은 뭐였을까. 발화되어야 하고 위로받아야만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실 가장 무섭고 힘든 상황은 두려움의 상태에서 정지하는 것이다. 우리를 더더욱 하찮은 쓰레기로 느끼게 해줄 상황에서 영원히 멈추는 것. 정과 반 둘 중 하나만이 우세하고 지배적인 상황, 그 상황이 그대로 정지해 완결되지 않는 것. 이 상황만을 간직하고 다른 곳으로 굴러가려 했던 돌멩이에게 “너한테 갈거야!”라고 소리치며 다른 돌멩이가 따라 굴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어안으려고. 버리고 다른 세계로 가기보다, 거기 남아 붙들고 다시 맞닿으려고. 에블린이 조이에게, 웨이먼드가 에블린에게 가졌던 마음이다.

 Children Of Men(2016)에서 인류는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다. 그러다 등장한 단 한 명의 임신한 여성, 키는 투모로우 호를 타고 병든 세상을 떠나고자 한다.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는 이에게 말하고 싶은건 기적처럼 갓난아기가 나타난 그 순간만큼은 대립하던 양쪽 진영이 잠시나마 사격을 멈췄다는 것이다.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진 않을까?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간직한 채 떠나지 않고도, 남아서 나 역시 소생되고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프롬이 말했던 것처럼 사랑은 능력의 문제도, 대상의 문제도, 상태의 문제도 아니니까. 사랑은 네가 너로 남고, 내가 나로 남으면서도 하나가 되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기술이고 활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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