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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Dec 21. 2024

프롤로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하여

아름다워 보이는 사진 한 장이 어떤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조금 놀랍다.

그 사진으로 촉발된 작은 다짐이 8,574km 나 떨어진 먼 나라로 오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지난 9월의 여러 날들에 대한 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때의 경험을 흐르는 시간에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스친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 역자 정영목 · 청미래 · 2014



낯선 도시들이 건네준 모든 경험과 느낌을 글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무래도 손에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요즘은 거의 매일 그 도시들에서 느꼈던 분명한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곡선형의 아름다운 목조 계단과 반원 모양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터키블루빛 호수에 대하여.



어쩌면 그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글로 써 내려가는 시간들은 답을 알 수 없는 현실적인 것들에 대해,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불필요한 정보들에 대한 긍정적인 도피처일 수도 있다. 편집된 삶, 물질적 과시, 행복의 전시 같은 것들로부터.


무엇보다 당신의 세계를 확장해 준 경험들이 시간에 퇴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다.

그 9월의 여행은 당신의 오랜 생각 습관을 넘어서 더 나은 방향으로의 삶의 태도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여행이 주는 쾌락과 설렘을 걷어내고 생각해 봐도 그렇다.  


마음을 충만하게 했던 아름다움은 대부분 사소한 순간에 피어나는 비물질적인 것들이다. 문을 잡아주는 손, 눈 맞춤과 작은 인사, 어떤 다정한 대화,

I love your look과 같은 말들.



몇 년 전의 당신은 말 그대로 봇짐을 매고 캐나다로 날아갔었다. 호기심, 배움, 도전, 열망 같은 단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그때, 외부의 참견보다 자신의 마음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두 번의 회사 생활을 통해 차곡차곡 모은 통장의 잔고는 바다 건너 나라의 물가를 생각하면 결코 두껍진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과정을 실행한다는 것 자체가, 단순하지만 명확한 자기 안의 관심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그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는 것이 당신을 무엇보다도 기쁘게 했다.

스무 살 이후로 몇 년간 긴 머리를 고수하다가 머리를 턱선 끝의 단발로 자르고 떠난 걸 보면 어떤 귀여운 도전 의지가 돋보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른 후, 가을이 가득한 9월에 다시 캐나다에 도착했다. 그 도시들에 머무르며, 친절과 다정함이 가진 힘에 대해 배웠을 것이고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 당연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생각과 습관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익숙한 도시에서 느리고, 어쩌면 약하게까지 여겨졌던 기질이 새로운 도시에서는 배려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치환되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관념이, 당연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당신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이건 어느 새로운 도시를 맥락 없이 동경하거나,

여행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P.S. 이 연재는 글쓴이가 (가끔 골치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귀여운 두 분과 함께 한 달 동안 캐나다 동부와 서부를 여행하며 경험했던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한 글입니다. 우연히라도 이 글이 닿게 되는 분들께 그 아름다움이 전해지길 바라는 작은 마음도 함께요.

(여행 가이드북은 아님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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