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투잭 호수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투잭 호가 밴프라는 도시의 첫 번째 목적지가 된 이유에는.
매년 세계적으로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호수에 비하면 덜 알려진 곳이지만, 외부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내가 좋아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직감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며 얻을 수 있는 이득 중 하나는 스스로의 이유와 경험에 의지하여 방향을 잡는 감각일 것이다.
투잭 호수(Two Jack Lake)라는 곳은 캐나다 로키 산맥의 국립공원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미네완카 호수의 서쪽 끝자락에 붙어있는 작은 호수다.(설명이 길다) 이건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 보면 나오는 사실이다.
어느 일요일 오전, 그 호수에 도착했을 때 내가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작은 호수. 이 부분은 아마도 이번 주말에는 투잭 호수로 피크닉이나 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투잭 호수는 밴프의 다른 호수들에 비해 관광지로서 유명세가 덜하다. 이건 이 호수가 자랑할 만한 최고의 장점이다. (그러나 나는 밴프의 모든 호수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곳저곳 비교하며 장단점을 취하고 싶진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말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물은 파란색도 아니고 초록색도 아닌 청록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계속해서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미디어 아트처럼 그 빛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투잭 호 주차장에 도착하면 호수로 이어지는 약간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이 호수의 첫인상은 그 내리막길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닥이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물과 그 위를 떠다니는 카약 한대, 고상하게 뻗어있는 침엽수가 호수를 감싸고 있었다. 그 뒤로는 해발 2,949m의 런들 마운틴(Rundle Mountain)
레이크 루이스 다음으로 예쁜 호수, 미네왕카보다 작은 호수, 가볍게 들리기 좋은 호수 등. 어떤 비교를 겸한 평가를 가져다가 붙이기엔 너무 아름다운 호수다. 투잭 호는 그냥 투잭 호. 그 자체로도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진 호수다. 이곳에 다녀간다면, 당신의 사진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질 것이다.
시간이 된다면 들려볼 만한 호수라는 한 줄의 정보, 몇 가지 평가로 인하여 나는 사실 투잭 호수를 지나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체성이 결여된 선택이 쌓이면, 취향은 점점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진다. 이건 다수가 인정하는 매력적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기준을 경계심 없이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몇 가지, 베스트셀러, 20대엔 몰랐지만 30대가 지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
부자들만 아는 주식/부동산 투자, 올 겨울 꼭 입어야 할 북유럽 감성 니트(72시간 할인!)와 같은 유행을 따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자신의 이성과 직감을 따르지 못하면 인생의 중대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느껴졌다.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빈껍데기들이 내 생각의 형태를 이룰 때, 쉽게 무너졌다.
그들은 당신에게 실로 중요하지 않은 가치 기준을 들이대며 맥락 없는 호언장담을 한다. 정답에 대하여.
사소한 취향을 넘어선 절대적인 미의 기준, 부의 기준, 성공과 행복의 기준. 네가 생각하는 가치는 이 세계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불특정 다수의 목소리. 스스로를 잘 몰랐던 당신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순수한 자신의 기질과 가치관은 점점 흐릿해진다.
그렇지만, 외부의 기준에 부딪혀 무너졌던 시간들이 결코 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피어난 불편한 감정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반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불편한 감정들 조차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한 권의 양서를 읽는 시간은 나에게 그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매개체였다. 우리는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몬드 챈들러, 트루먼 커포티-그 외 많은 작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소설가가 된) 하루키가 소설을 쓰는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소설을 쓰는 한 가지 큰 목적은 이야기라는 하나의 '생물'을 독자와 공유하고, 그 공유성을 지렛대 삼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개별적인 터널을 뚫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이든, 어디에 있든(도쿄든 서울이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쓴 그 이야기를 당신이 '자기 이야기'로 확실하게 끌어안아주느냐 마느냐, 단지 그것뿐입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차단하고 오직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저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따라가다 보면, 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에게 중요한 관점과 기준이 선명해진다고 느낀다. 그건, 자신을 의젓하게 세워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동력이 된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합리성과 지성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도 뒤틀림 없는 관점을 갖게 해 줄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자신만의 투잭 호수를 찾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이영미 옮김 ·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