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가는 아침 기차
1.
대여섯 사람들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종이에 쓰고 있었는데, 손에 잡고 있는 펜 위로 꽃들이 팔랑팔랑 나부끼고 있었다.
이런, 너무 귀엽잖아. 그들은 세관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꽃병에 가지런히 피어있는 가짜 꽃들이 사실은 볼펜 머리에 붙어있는 장식이었던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때, (생화 같은 모습을 하곤) 난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라고 우기며 진짜인척 하는 가짜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날 아침, 처음으로 너도 쓸모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나는 사실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밴쿠버에서 시애틀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Pacific Central Station에서 Amtrak이라는 미국 열차를 타야 한다. 나라 간 육로 국경을 넘는 기차를 타게 되면 출발역에서 미리 입국 심사 절차를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인즉슨, 기차를 타기 전에 약간 덩치가 있고 무서워 보이는 미국인(나의 상상이다) 입국 심사관과 간단하지만 중요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저 시애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클램차우더가 궁금할 뿐인 순수한 여행자일지라도, 입국 심사는 아무 이유 없이 조금 긴장되기 마련이다.
나는 최대한의 순진 무구한 표정(자연스러워 보였으면 하는 옅은 미소)을 지으며 그 입국 심사관 앞에 섰다. 그리고 세명의 여권과 왕복 기차 티켓을 내밀었다. 그 사람의 외형은 역시 나의 상상만큼이었지만 그의 온화한 미소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어디 가니?
시애틀에요.
시애틀 좋지, 스타벅스 1호점 가니? 아니면 파이크 플레이스? 거기 클램차우더 맛있지. 꽤 아름다운 도시야.
Have a nice trip!
역시 입국심사할 때는 입꼬리를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올리고 있는 것이 약간 도움이 된다.
3.
밴쿠버에서 출발한 기차는 육로 국경을 넘어 시애틀로 향하고 있다. 창밖의 풍경은 초록 들판일 때도 있고 드넓은 옥수수밭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광활한 북태평양해안가다.
4시간 30분 동안 기차 밖의 풍경은 절대 같아질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동안 기차는 몇 개의 한산한 역에 잠시 정착했다가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한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은 보통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Ladies and Gentlemen, Boys and Girls -.
그저 주의를 끌기 위한 지극히 평범한 문장은 장난스러움이 가미된 목소리로 인해 디즈니 영화 속 대사처럼 들릴 수 있다. 지루한 일들을 처리할 때, 목소리에 한번 신경을 써봐야겠다.
4.
열차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매점 하나는 국경을 넘는 기차에 대해 상상했던 낭만을 실현해 준다.
시나몬롤, 토마토 수프, 치킨 시저 샐러드, 밥 아저씨의 오트밀을 비롯하여 맥주와 와인까지. 이 모든 것은 매점 한켠 작은 공간에서 제조되어 우리를 기쁘게 한다.
빵을 데우고, 커피 메이커에 물을 붓고, 수프를 그릇에 담는 간단한 과정이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뚝딱뚝딱 일을 처리하시던 나이 지긋한 여성분을, 나는 셰프라고 부르고 싶다.
5.
기차 안의 매점이라, 이 대목은 역시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제시와 셀린이 생각나는 곳이다. 기차 안에서 조르주 바타유의 단편집 <에드와르다 부인>을 읽고 있던 여자는 옆자리의 소란스럽게 다투는 두 사람을 피해 자리를 이동한다. 그리고 건너편 옆자리에 앉아, 클라우스 킨스키의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기억>을 읽고 있던 남자를 만난다.
이것이 셀린과 제시의 첫 만남이다.
"저 두 사람 왜 다투는지 알아요?"라고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기차의 식당칸으로 옮겨져 이어진다.
움직이는 기차의 창 밖 풍경을 배경으로 얼굴을 맞대고 나오는 그들의 이야기는 목적지가 달랐던 두 사람에게 같은 곳에서 내릴 필연성을 부여했다.
운명과 의지, 사랑의 의미, 날 화나게 하는 것 또는 널 화나게 하는 것, 타인에 대해, 갈등, 결점, 끝과 시작, 꿈과 미래에 대한 대화로 점철된 어느 도시에서의 하루. 두 사람은 어제로부터 6개월 후, 다가오는 12월에 같은 기차역 9번 승강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이런 영화 속 장면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할 법한 상황이지만, 당연하고 안타깝게도 우리네 기차 안에는 각자의 손에 든 직사각형 화면을 바라보느라 정작 내 옆에 누가 앉는지도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우연한 만남, 운명적 재회라는 세렌디피티는 점점 더 90년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랑스러운 허구적 설정이 되어가는 것 같다.
사람보다 로봇과의 대화가 더 많아지는 일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마치 호그와트로 가기 위한 킹스크로스역 9와 3/4 승강장과도 같은 판타지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허무함이 들더라도 영화나 소설이 주는 아름다운 허구가 없다면 삶이 매우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다. 무수한 상상적 구조물들이 사실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착각이 자주 나를 기쁘게 한다.
밴쿠버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는 시애틀 여행을 했습니다. 이 글은 그날의 오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