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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웃게 하는 생선들

옛 세계의 매력을 간직한 도시

by 혜아


그 기차역은 오래된 우아함을 간직한 곳이었다.

밴쿠버를 출발한 기차는 정확히 4시간 30분 만에 시애틀의 King Street Station에 도착했다. 이곳은 시애틀을 거쳐 캘리포니아주의 여러 도시를 향하는 중장거리 노선이 운행되고 있는 기차역이다. 기차역 안으로 들어와 74m 높이의 우뚝 솟은 천장을 올려다본다. 정교하게 배치된 석고 타일은 거대하고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연상시켰다.


1906년에 완공된 이 기차역은 약 118년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사실은 지금의 아름다움이 존재하기까지 여러 번의 쇠퇴와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전역에서 자동차가 이동 수단의 주류가 되자, 철도 여행객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 기차역을 유지보수하는 과정에서는 부족한 예산 때문에 수작업으로 조각된 정방형의 천장이 금속과 플라스틱 장식으로 뒤덮였다.


건물 전체를 원래의 명성대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2003년에 시작되었고, 2006년에 시애틀 도시 정부가 BNSF(BNSF Railway Company)라는 철도회사로부터 이 역을 단돈 1달러에 사들였다. 그 이후 10여 년 간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이다.


존재해 보지 못한 시대의 고난과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내게 다른 교통수단보다 기차로 하는 여행이 약간은 더 기억에 남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 하루는 당일치기 여행자로서 '꼭 먹어야 하는...' 유명한 맛집에도 가보려고 한다. 이름은 Pike Place Chowder. 제대로 된 클램 차우더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시애틀에서 '꼭 먹어야 하는...' 그런 리스트에서 언제나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다가 이름 위에 왕관을 쓰고 있는 뉴잉글랜드 클램 차우더 세 개를 주문했다.


차우더는 기본적으로 해산물과 곡물을 넣어서 만든 걸쭉한 수프다. 뉴잉글랜드 클램 차우더는 부드럽고 진한 크림 베이스에 양파, 감자, 속이 알찬 대합조개가 들어있다. 함께 나온 크래커를 넣어 먹으면 더욱 진한 클램 차우더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레몬주스를 살짝 뿌리고, 시즈닝과 쪽파를 살짝 얹어, 따뜻하게 녹인 버터에 버무린 부드러운 메인주산 랍스터'


함께 주문한 Seafood Rolls. 웹사이트에서 메뉴를 보니 한국어로 번역된 설명이 살짝 어색하고 살짝 웃기다. 아무튼 버터에 녹인 구운 빵에 통통한 랍스터는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이다. 유명해서 유명한 '꼭 먹어야 하는...' 그런 맛집들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딱히 욕심이 없는 편이다. 만약 긴 줄까지 서야 한다면, 그 맛집의 옆집을 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도 Pike Place Chowder는 시애틀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누군가 시애틀에 간다면 이곳만큼은 꼭 가보라고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다.


클램 차우더의 맛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나 그 걸쭉한 수프의 맛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관광지다운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았던 그 사람의 미소였을 것이다. 이곳의 일원으로 가게 주변을 정리하고 손님들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공간에서 눈빛을 반짝거리는 여행자들을 다정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과 그것에 투자하는 시간이 고될지라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애틀 도심 산책을 하면서 느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시애틀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보잉, 스타벅스 등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이 본거지를 두고 있는 도시다. 시애틀에 위치한 구글, 메타, 애플의 굵직한 오피스와 산학연 네트워크는 첨단 기술을 향한 창업 생태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있다.

콘크리트 건물이 가득한 혁신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시애틀을 대표하는 건 여전히 생선 던지는 쇼가 유명한 100년 된 재래시장이다.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건 이 날아다니는 생선들이고, 꽃집이고, 오래된 책방이다. 옛 세계의 매력을 간직한 곳은 언제나 도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두 번째, 북적거리는 관광지에서 한 발짝 건너오니, 시애틀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The Great Wheel(대관람차)과 함께 북태평양의 끝이 없는 수평선이 펼쳐져 있다. 이 바닷가 근처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스타벅스 1호점에 들렀다면, 그곳에서 조금 걸어 내려와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도시에 두고 온 근심은 눈앞에 있는 바다만큼 크지 않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밴쿠버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는 시애틀을 여행했습니다. 이 글은 그날 오후에 느꼈던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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