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트랫퍼드 (2)
점심을 먹기 전에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몰려있는 골목을 잠시 걸어 다녔다. 9월의 캐나다는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날씨가 정말 좋다. 반팔티셔츠에 얇은 카디건 하나 걸치고 마구마구 걸어 다니기 좋은, 몸에 딱 알맞은 온도.
짧은 산책의 끝에 다다른 곳은 잔잔한 호수와 푸른 잔디밭이 있는 곳이었다. 동네 한쪽에 평화로운 호숫가가 있고 그 앞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의 이름은 'Veterans Drive Parkland'이다.
베테랑(Veteran)이라는 단어는 노련한 사람, 전문가라는 뜻도 있지만, 참전 용사, 퇴역 군인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 이 공원은 세계 1,2차 대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을 기리는 공원이다. 6년 전에 혼자 왔을 때, 우연히 이 공원에 들렀다가,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공원 한가운데에 참전 병사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비석이 있다. WORLD WAR I, WORLD WAR II... 그리고 그 아래 KOREAN WAR. 그 글자 아래 세분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사실 상상조차 잘 되지 않았다. 75년 전에, 8,574km 떨어진 아주 작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젊음과 삶에 대한 모든 것을 걸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 대하여. 지금 남은 건 이 비석에 새겨진 이름뿐이지만, 그때 당시 그분들의 인생은 어땠을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평화롭고 작은 동네에 살았을 청년들에 대해서.
이토록 예쁘고 다정한 동네에 오게 된걸 참 감사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삶에 대한 자유와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역사 속의 비극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지만 나는 매일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심지어 물의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도 있잖아요.
아름다운 호수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잊지 않고 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이 호숫가 앞에 자리 잡은 아이스크림 가게다.
혹시 인생에서 잊지 못할 아이스크림 맛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곳의 작고 사랑스러운 가게에서 먹었던 헤이즐넛 아이스크림입니다.
이름은 'Jenn&Larry's Ice Cream Shoppe' Jenn과 Larry는 부녀지간이다. 아빠와 딸이 운영하는 오래된 아이스크림 가게.
6년 전에 이 가게에서 먹었던 헤이즐넛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결코 잊지 못한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가게 앞 조그만 테이블에 올려두고 혼자 맛있게 먹고 있으면 모르는 사람과도 금방 친구가 되는 곳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지나가던 여행자들은 높은 확률로 내 카메라를 보고 웃으면서 브이를 한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온 동네 주민과도 가볍게 대화를 하고, 여행을 왔다고 하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는 곳.
이 사람들, 아이스크림은 사실 뒷전이고 자신이 가진, 넘치는 친절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어서 온 거 아냐? 이런 우스운 생각도 했다. 사실은 이런 마음의 여유 공간이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던 건,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이럴 때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 눈인사, 뒷사람에게 문을 잡아주기, 자주 웃기! 부러움을 느낀다는 건, 스스로 일상 속에서 이런 태도를 지니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매일 작은 순간을 대하는 태도에 신경을 쓰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러운 기질이 될 수 있게. 이건 분명히 잠깐 스쳐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작게나마 좋은 영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잊지 못할 아이스크림 맛이 있다는 건, 어쩌면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쓴맛이 느껴지는 것들에 대항하여 일상의 당도를 유지해 줄 수 있으니까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감정이 드는 작은 경험들 같은 거요!
이곳에서 만났던 친절한 요리사도 잊지 못할 거예요. 점심을 먹고 그냥 나가기가 아쉬워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가게 내부를 찍어두고 싶어서요. 그러자 저 멀리, 키친 안에 있던 요리사가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더라고요. 처음에 렌즈 안으로 보였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요. 함께 웃으며 엄지 척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행복은 이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온다는 명제를 거짓 없이 받아들이면서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