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yell May 20. 2022

초여름을 기억하는 법 | 골드키위 생크림 케이크

입하 - 여름 초입의 서늘함

어렸을 적 먹었던 키위는 모두 초록색이었다.


피부가 약해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키위와 파인애플은 먹기 힘든 과일이었다. 급식에 나오는 반쪽짜리 키위만 먹어도 입안이 아팠다.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골드키위는 나에게는 한줄기의 금빛 희망과도 같은 과일이었다. 그린키위에 비해 더 달고 먹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드키위는 항상 더 비쌌고, 결국 키위 먹기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키위는 연육 작용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과일이다. 언젠가 엄마는 선물로 들어온 소고기로 불고기를 만들었는데, 소스에 들어간 키위 반쪽 때문에 고기가 모두 부스러져버린 적이 있었다. 이 정도로 키위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능력이 상당하다. 그리고 내가 그린 키위를 못 먹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키위를 못 먹던 아이는 금세 자라서, 그린키위는 여전히 못 먹지만 골드키위를 제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골드키위는 남반구의 추운 날 수확되어 북반구의 더운 날 먹는 과일이 되었다. 까만색 작은 씨가 박힌 키위의 단면은, 옅은 겨울 햇빛을 촘촘히 담아낸 것처럼 옹골차다. 바라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키위의 새콤함에 부드럽고 달콤한 생크림을 더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보자.



계란, 설탕, 밀가루를 주 재료로 하여 생크림 케이크의 뼈대가 될 제누아즈를 만든다. 계란과 설탕을 섞은 뒤 따뜻한 물에 덥혀 거품을 내면 부피가 3배는 더 커진다. 충분히 믹싱해 큰 거품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반죽을 마무리하면 폭신한 스펀지케이크 시트가 될 준비가 끝난다.

거품 반죽에 밀가루와 버터를 차례로 넣은 뒤 가볍고 빠르게 섞는다. 이때 애써 만든 고운 계란 거품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살살 달래 가며 섞어야 한다.


이렇게 완성된 반죽을 빠르게 틀에 담아 오븐에 구워낸다. 거품을 다루는데 익숙해지면 다른 팽창제의 도움 없이, 온전히 계란의 힘으로만 부풀어 오른 스펀지케이크 시트를 만들 수 있다.

스펀지케이크는 설탕과 계란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오븐에 넣고 굽기 시작하면 온 집안이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찬다. 쿠키나 여느 다른 반죽을 구울 때와는 차원이 다른 달콤함이다. 달콤한 향은 껍질 색이 나면서 점차 줄어들다가 그 달콤함에 코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바닥까지 황금색이 된다.


오븐에서 꺼낸 황금색 제누아즈가 식을 동안 시럽과 골드키위를 준비해보자. 키위는 어떤 방식으로 잘라도 상관없지만, 그 매력적인 단면이 잘 보일 수 있게 썰어주는 편이 항상 더 마음에 든다. 식은 제누아즈의 단면에 시럽과 크림, 키위를 차례로 올려주고, 다시 제누아즈를 덮는다.

자, 이제 마음껏 꾸미기만 하면 완성이다.


아이싱이 서툴러도 문제없다. 하나하나 공들여 준비한 재료를 쌓아 올려 작은 케이크 성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만든 사람만큼은 이 케이크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어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탕을 줄인 크림은 키위의 새콤함과 제누아즈의 달콤함, 그 사이를 부드럽게 파고든다. 생크림의 진한 우유 향 역시 그 어느 것도 방해하지 않으면서 둘 사이의 간극을 가뿐히 메워낸다. 차갑게 해서 먹으면 앉은자리에서 두 조각은 거뜬하다.


황금빛 여름의 시작. 그 태양 아래에서 상큼한 계절과일을 즐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 골드키위 생크림 케이크이다.

이전 06화 봄 비를 기억하는 법 | 카라카라 오렌지 파운드케이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