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자연에서 나는 음식에는 '제철'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보통 제철이 붙는 음식은 '딱 이때만 먹을 수 있는' 것일 때가 많다. 쑥과 같은 봄나물이 그러하고, 알이 꽉 차는 수산물이 그러하다.
그럼 요즘 세상에 바로 지금, 딱 이때 말고는 못 먹는 음식이 정말 있긴 할까? 하우스 재배와 냉동 저장으로 언제든지 모든 음식을 찾을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철을 따져가며 찾아 먹는 이유는 아마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때' 이기 때문일 것이다.
"귤 철이 끝나면 그때부터 오렌지 철의 시작이다."
언젠가 엄마가 해준 말이다. 찬바람이 불 때 장판 안에서 먹던 귤이 비싸진다 싶으면, 오렌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시기로 따지자면 딱 지금, 봄비에 남은 벚꽃마저 지고 온 산이 연두색이 된, 이맘때쯤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오렌지는 그 쨍한 빛깔과 맛이 여름과 썩 잘 어울린다. 특유의 단맛에 산미와 시트러스 향이 더해져 무더운 여름을 산뜻하게 만들 것만 같다. 다만 한국에서는 수박이 여름 제철과일의 왕좌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는 만큼 자체적으로 제 시기를 앞당긴 듯하다.
이토록 상큼한 오렌지에 매력적인 붉은 빛깔이 더해진 카라카라 오렌지를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오렌지로 적셔진 베이직한 파운드케이크로 여름의 초입을 한층 더 상큼하게 발돋움해보자.
파운드케이크는 만드는 법도, 재료도 간단해서 자주 만드는 케이크 중 하나다. 버터와 계란이 많이 들어가서 묵직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촉촉해진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파운드케이크의 촉촉함은 버터가 큰 이유를 차지한다. 부피를 올린 버터가 케이크를 보다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버터를 저어가며 재료를 넣기 시작하면 올라오는 버터의 진한 우유 향과 함께 서걱거리는 설탕 소리를 들으며 언제 계란을 넣을지 고민한다. 급하면 안 된다. 뭐든지 충분한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면 계란을 나눠 넣으며 서로 충분히 섞일 수 있게 한다.
반죽을 하기 전, 제스트를 만들다 보면 오렌지 향이 온 집안에 퍼지곤 한다. 다른 방의 동생마저 그 향을 맡는 걸 보면 오렌지의 향은 껍질에 농축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나 진한 향을 품은 제스트를 가루와 함께 반죽에 넣고 섞는다.
가루가 섞이기 시작하면 반죽의 상태가 가닥이 잡히기 마련인데, 모든 재료가 하나로 뭉쳐지면서 묵직하고 노란 빛깔의 반죽이 완성되었다. 오렌지향을 설핏 풍기며 잘 만들어진 반죽을 보니 완성품이 기대가 된다.
작은 오란다 틀에 채워 넣으니 양이 알맞다. 중간중간 보이는 오렌지 제스트가 반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파운드케이크는 윗면이 예쁘게 터질 수 있도록굽는 와중에 칼집을 넣는데, 칼집 모양을 따라 안쪽의 반죽이 부풀어 오르며 터진 모양을 만들게 된다. 그럼 원래 껍질 부분과 새롭게 차오르는 반죽이 서로 다른 색을 띤다. 이렇게 만들어진 색감 차이는 케이크를 한결 맛있어 보이게 만든다.
완성된 파운드케이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폭신하고 촉촉하고 향긋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오렌지를 잔뜩 더하기로 한다. 작은 파운드케이크 하나 만드는데 오렌지 2개씩이나, 판다고 생각하면 타산이 썩 맞을 것 같지 않다.
오렌지를 동그랗게 썰어내니 빨간 과즙이 가득한 단면을 보여준다. 오렌지 슬라이스 앞뒤로 설탕을 뿌려 오븐에 구우면 오렌지의 상큼한 향은 휘발되고, 달큰한 향만 남는다. 오렌지 말랭이 같은 식감이 되면 오븐에서 꺼내 반달모양으로 잘라 준비한다.
오렌지 즙과 설탕으로 만든 오렌지 시럽에 레몬즙을 더한다. 그리고 폭신한 케이크의 단면에 고루 뿌려 촉촉이 적셔준 뒤, 그 위로 미리 식혀 둔 오렌지 슬라이스를 올려 케이크를 장식한다.
봄비가 내린 땅에 붉은 태양이 떠오른 듯, 촉촉하고 달콤한 카라카라 오렌지 파운드케이크 완성이다.
설탕의 단맛이 꺼려진다면 오렌지 시럽 없이 파운드케이크만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루정도 숙성시켰다가 먹으면 골고루 촉촉해져 먹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