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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Dec 17. 2020

결국 월급 받으면 끝이야

선배의 이상한 위로에 위로받아 버렸다

오늘 오후, 회사 선배와 메신저를 주고 받을 때였다.

각자 회사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다가, 선배가 문득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국 월급 받으면 끝이야.


그런데 놀랍게도 들고 일어난 벌떼들 수백마리가 한꺼번에 웅웅 거리듯 분노와 짜증이 찼던 마음속에 일순 강 같은 평화가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놀랍게도’인 이유는, 입사 2년차까지만 해도 들었다면 질색했을 말이었다. 회사 생활에 월급 이상의 것이 있다고 믿고 싶었고, 돈만 생각하며 다니기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아까웠으니까.

지금도 그런 마음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그 순간 그 말을 전하는 선배의 태도는 너무나도 담백하고 담담한, 그러니까 나는 모르는 인생의 깊이를 달관한 현자와도 같아서, 그리고 그 말에 어쩐지 차분히 가라앉아 잠잠해진 내 마음이 분명 위로받은 것만 같아서. 선배의 말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곱씹어 보게 되었다.


‘결국 월급 받으면 끝’ 이라는 말은 우리가 월급을 받으려고 일 하는 존재이니 월급만 받으면 다른 건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우리와 회사의 관계가,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계약 관계라는 걸 잊지 말자는 뜻이다. 회사와 회사에서의 삶이 내 전부는 아니며 이 회사는 내 것이 아니다. 일을 하고,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 거기에서 상호간의 관계와 의무는 일단락 되는 것이다.

월급쟁이들은 사장마냥 일을 끝내고 저녁을 먹으면서도 내일 계약은 잘 따낼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번달 판매 실적은 얼마나 나올까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가슴 불편해할 필요가 없다(그 사실로 엄청나게 쪼여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다른 얘기지만). 다시 말해, 회사가 그토록 부르짖는 주인의식을, 실은 날 헤쳐가면서까지 가질 필요가 없다(주인의식이 저절로 든다면 정말 좋은 회사니까 계속 다니기..).

그러니까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이 늘 시달리는 허무감, 이 회사에서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상실감, 자신이 부품에 불과한 것 같은 불안감은, 바꾸어 말하면 간결함, 월급을 받음으로써 계약 관계가 완성되고 나면 더 돌아볼 필요가 없는 깔끔함, 집에까지 회사에서의 걱정거리와 부담을 안고 갈 필요가 없는 홀가분함이다.

내 쪽에서 물심양면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그쪽은 작은 자료 하나 공유해주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자르거나, 아무리 애써도 나올 수 없는 숫자를 만들어 내라는 압박을 받거나, 사실 날 끌어주고 밀어주어야할 팀원들이 속터지게 굴며 모른 척할 때, 하다하다 안될 때, 정 안 돼서 눈물이 날 때, 에이 이까짓 회사 뭐하러 아등바등 다니나! 할 때, 생각하는 거다.


결국 월급 받으면 다 끝이야

하고.


이 말은 어깨에 쌓여 딱딱하게 굳은 응어리를 한순간 후- 하고 불어 날려보내준다. 회사라는, 인생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던 거대한 존재가 단번에 축소되는 것이다. 회사는 존재감 과잉이라서, 한번씩 축소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영혼 없는 부품이 되자는 말이 아니라, 공장장이 받는 스트레스까지 작업자가 나눠 받지는 말자는 거다. 그런다고 공장장이 자기 급여를 나누어주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작업자가 딱히 공장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운명을 타고나지도 않았으므로.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회사원에게도 ‘온앤오프’가 필요하다. 그렇게 스위치를 끄고 ‘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론 회사에서 임원도 달고 승승장구하는 게 목표라면 회사 생활에 심혈을 기울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일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그 자체를 즐기면서 사는, 또 평생 그것을 즐기며 살 자신이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단순 계약 관계를 넘어선 ‘내 것’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투자를 통한 자본가 대열의 합류이고, 누군가에게는 자기만의 브랜드 런칭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고, 누군가에게는 일보다 즐거운 취미 생활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을 쓰는 것이다. 단지 월급을 받는 것만으론 끝나지 않는 것. 나의 저녁 식탁에 잊히지 않는 고민거리가 되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설렘이 되는 것. 거창해서가 아니라 소중해서 온전한 ‘내 것’.

월급과 함께 회사가 끝날 때,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그것이 선배의 말 속에서 전달되어 ‘강 같은 평화’와 위로를 주었다고 믿는다. 계약이 없어도 지속되는 관계의 평화와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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