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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Dec 08. 2020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한다는 것

국문학도 입니다만

대학 시절, 국문학을 전공했다.

점수 맞춰 선택하는 게 전공이라고는 하지만, 꽤 진심인 편이었고 대학원이나 출판사에 갈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인문학 외에는 관심이 없었고 과제를 할 때면 도서관 구석에 두꺼운 책들을 잔뜩 쌓아놓은 채 논문을 뒤적였다. 강의실에서 교수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었고 인기 없는 시학회나 영화소모임에 참여했다. 미화되기엔 애매하고 후회하기엔 만족하는 그 시절에, 가장 스스로와 멀게 생각했던 두 단어는 ‘글로벌’과 ‘디지털’.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디지털 회사에 해외 마케팅 직무로 입사한지 3년째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토익을 공부하고 경영 학회에서 마케팅 전략을 분석할 때, 프랑스 연극에 서보겠다고 종로에 있는 학원을 다니며 프랑스어 대본을 통째로 달달 외우던 대가는 취업의 문턱에서 당연히 치렀다. 그러나 착각했던 것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끝난 줄만 알았던 비용이 잔금으로 계속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입사 후 부서에 배치받고 나서, 담당 부장님과 식당으로 향하며 그 질문을 처음으로 들었다.


전공이 뭐였어요?


“국어국문학 입니다.”

“음..요즘은 부전공? 복수전공? 그런 것들도 하던데.”

“...프랑스어문학 복수전공 했습니다”

지금은 절친한 사이가 된 부장님은 매우 솔직한 성격이어서, 그때 이미 ‘아 쉽지 않겠는데’ 하고 말했고 실제로는 더한 생각도 했다고 나중에 말해주었다.

그 뒤로 같은 질문은 선배들과의 ‘커피 한잔 할래요’ 시간마다 반복되었고, 최근에 새로 옮긴 부서에서도 어김없이 들었다. 상대방의 전공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할 말이 딱히 없을 때 좋은 질문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큰 의미가 없음에도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웃거나 놀라게 만들어서, 처음엔 모두가 MBA라도 다녀온걸까 주눅이 들었다.


엑셀을 손이 안보이게 돌리기는 커녕 첫출근 전날 피벗테이블 돌리는 법을 배워갔고, 비지니스 영어를 막힘없이 구사하기는 커녕 해외에 메신저 한줄 쓸 때도 사전을 검색했다. 마케팅의 기본이라는 4P나 SWOT 분석도 기억을 더듬어 급하게 들여다보았고, 머릿속에선 원화와 달러, 한국어와 영어 숫자 단위가 호환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이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

당시 3년차였던 선배와 함께 처음 업무에 손을 댔던 날, (꽤 친해졌던) 선배가 외쳤던 기억이 난다.

“나 알았어...얘 그냥 대학생이야...!”

(지금은 더 친해졌다.)


하지만 의외로 그 모든 기술적인 문제들은 극복 불가능한 장애물도, 유별난 특징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조차 몇 없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기계공학이나 유아교육학을 공부하고도 이곳에 와 있었으니까.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나에게 쏟아졌던 질문과 놀람은 아마도 신입에게 한정되어 있는 듯했다(이 취업난을 뚫고 들어온 애니까 뭐라도 대단하겠지).

엑셀은 금방 손에 익었고(vlookup 함수랑 피벗만 돌리면 일사천리였고), 영어는 어차피 늘 쓰는 문장과 단어 안에서 이루어졌으며(can you review the attachment?), 마케팅의 원칙들은 대기업에선 무용지물이었고(<숫자는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참조), 단위 같은 건 수백 번을 쓰다보면 누구나 익숙해지게 되었다. 문과생에게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와 회사에서 하는 일은,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큰 관련이 없었다.


정말 호환이 안되는 건 그런 도구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나 자신, 그러니까 발제와 토론의 세계에서 글로벌과 디지털의 세계로 던져진 내 영혼이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도, 아침마다 눈을 떠서 하는 일도, 추구해야 하는 목표와 기준도, 모든 것이 송두리째 변했고 그건 발 밑을 받치던 단단한 땅이 훅 꺼지는 충격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변한 것을 하나 꼽는다면 아마도 ‘가치’일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은 급할 땐 희생하고 여유 있을 땐 캠페인하는 장식이 되었고, 의문과 비판을 제기할 수 없는 가치가 당연하게 부여되었다. 그건 엑셀이나 영어를 배우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프로세스에 익숙해진 뒤에도, 아주 마지막까지 괜찮아지지 않는 일이었다.


진짜 치러야 할 잔금은 거기에 남아 있었다.

손으로 익히고 머리로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이루었던, 스스로 선택하고 가꾸었던 모든 시간들에. 그러니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삶과 가치에 대한 나 자신의 동의였다.

남은 금액을 다 치르는 날, 이곳에 정말로 적응하는 날, 그래서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애매함 없이 미화되어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는 날이 올 때까지 이 부채감에 쫓길 것이다. 동의란에 서명을 미루며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열심히 부채감에 쫓기고, 끝내 치르지 못할 잔금에 허덕이다, 파산 신청을 하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이 목표다. 이 전공과 무관한 글로벌과 디지털의 세계에서 배운 것들을 삶의 새 지식으로 더해 다다를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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