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를 피할수야 없겠지만
고과 면담 시즌이 돌아왔다.
보고 외에 평소 딱히 말도 섞어본 적 없는 임원이나 부장이 “잠깐 A 회의실에서 보실까요?” 하고 어딘지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슬쩍 다가오는.
올해로 4년차가 된 나는 반기별로 총 여섯 번의 고과를 받았고, 그 중 신입 연수 및 과제를 통해 항목별 점수를 매겨 받았던 첫번째 고과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평고과였다. 상대평가의 찐득한 늪은 학창시절 백분위니 등급 따위에서 시작해 대학의 학점을 거쳐 회사까지도 따라붙었고, 상위고과를 받는 비율이야 얼마 되지 않으니 평고과를 받는다고 그리 서운할 일은 아니었다.
만약, 이 모든 평가가 공정하기만 하다면.
하지만 언제나 조직의 평가에는 수많은 변명과 예외, 어쩔 수 없음과 운이 동반되었다. 나와 동기들은 시간이 지나며 모두 서서히 깨달아갔다. 고과는 일한 만큼 부여되는 게 아니라, 일을 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에 하사되는 것이고, 그 위치란 사전에 정해져 있음을.
진급할 선배들은 왜 그렇게 많고(그 중 저 사람이 과연 진급을 할 만한가 싶은 사람은 왜 그렇게 많고) MBA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받기로 내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그들을 다 주고도 남은 게 있다면 그땐 매출이 크고 주목받는 역할을 하는 동료들이 줄 서 있었다. 그러니 상무님이, 부장님이 보여줬던 겸연쩍은 미소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억울하면 매출이 크고 주목받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이 씁쓸함을 알텐데, 패자부활전이 적고 기회와 자원이 한 곳으로 몰리는 구조에서, 어쩌다 거둔 한 번의 성공은 자꾸만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지고, 어리고 순진한 시절 헛디딘 발걸음은 계속해서 미끄러지지 않는가. 다 같이 열심히 노력했고, 다 같이 똑똑했지만, 누군가는 어쩌다 좋은 부서에 배치 되었고, 좋은 리더나 사수를 만났고, 또 누군가는 작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부서에 배치 되었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인사팀의 설명과는 다르게, 부서를 옮기거나 역할을 바꾸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내 선배가 이렇게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회사에서 잘 나가려면 말이야, 귀인을 만나야 해, 귀인을.
그리고 무엇보다, 보답받지 못한 열정은 너무 쉽게 시들어버린다.
예전 어느 술자리에서, J 부장님이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유자, 5년이야.
뭐가 5년이냐하면, 회사에서 스스로의 노선이 정해지는 시간이다. 5년을 다닌 이후에는 그걸 바꾸는 게 좀처럼 되지 않는다. 노선에는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회사 일을 정말 열심히 잘 해보겠다 마음 먹고 임원도 노리고 커리어도 계획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는 일찌감치 ATM으로 쓰기로 하고 욕먹지 않을 만큼만 일하며 회사 밖에서 삶을 찾는 길이다. 그런데 5년을 열심히 했음에도 회사로부터 어떤 응답도 듣지 못했을 때, 그것이 고과이든, 능력을 알아주는 멘토이든, 중요한 역할과 책임이든, 그 어느 쪽도 되돌아오는 것이 없을 때, 사람은 후자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돌이키기는 어렵다. 회사에서 더 기회를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자기 스스로 회사와 선을 그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날 부장님의 말을 들으며 내가 어느새 회사와 나 사이에 어떤 금을 그어버렸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사실 5년까지 갈 것도 없이, 1년도 신입사원의 열정이 말라비틀어지기엔 충분했다.
자기 어필을 잘하고, 눈치가 빨라 상사에게 의전을 잘하고, 어떤 자리가 좋은 자리일지 알아보는 감각이 탁월하고, 눈에 띄는 일을 도맡고, 그런 것도 여의치 않으면 떼라도 써보는 것도 능력이다. 다만 그런 저런 능력을 갖추지 못해도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을 포용하기에 대기업과 상대평가 구조는 너무 각박하다. 특히 그런 능력들을 갖추기 어려운 신입 시절, 한두 번의 운으로 남은 회사 생활이 결정되는 것은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개중에는 저런 능력은 없는 게 우리 사회를 위하는 길 아닌가 싶은 것도 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런 능력들이 발휘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상위 고과라는 게 결국 누군가의 눈에 들어야만 가능한 것이여서다. 그냥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걸로는 부족해서.
상대평가에 익숙한 우리지만, 생각해보면 의아하다. 평고과는 너무 많고, 상위고과는 적은데, 평고과에게 오는 혜택은 지나치게 적고, 상위고과 배정의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애매하지 않은지. 우리는 너무 불합리한 링 위에서 필요도 없는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은지.
평가방식이 달라선 안되는걸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촘촘히 혜택이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아등바등 ‘저 사람’보다 잘해야 하는걸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질문이 달린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바뀔 수 있는 것이기도 할테니.
고과가 전부는 아니라는 눈 가리고 아웅은 하지 않기로 하자. 평가와 인정, 그로부터 오는 높은 연봉과 자기계발의 기회들이 중요치 않았다면 애초에 모든 스트레스를 이겨가며 대기업에 올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고과는 너무 중요한 것임에도 너무 허술하게 운영된다. 회사의 많은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아 어차피 나는 평고과인데 뭐’하는 생각이 자리잡는 것만큼 위험한 인사도 없다. 회사가 직원들을 마음의 금 밖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과 다른 고과 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돌아온 고과철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