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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Nov 30. 2020

회사적 말하기

대체 저런 말은 왜 하는 걸까

회사에서 사내 메신저, 메일을 통해 일을 하다보면 가끔 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대체 저런 말은 왜 하는 걸까?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굳이 예쁘고 착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굳이 예의없게, 남의 속을 긁어가며, 안해도 될 말을 덧붙일 필요 또한 없는 것이다.


지난주엔 회의록을 배포하면서, 참석자 명단에 유관부서 중 한 명을 빠뜨렸다. 해당 부서에서는 기분 나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일부러 한 일도 아니었고, 회의가 워낙 많고 사람들이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캐주얼한 분위기인 우리 회사에서 종종 있는 실수기도 했다.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1) 그냥 넘어가거나

2) 좀 기분 나쁘지만 그냥 넘어가거나

3) 회의록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거나

4) 회의록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게 해달라고 한마디 하거나

정도의 반응이 돌아온다.

지난주의 경우엔 유관부서 선배에게서 이런 메신저가 왔다.

- 어제 박과장 회의 안 갔어?

- 아, 참석 하셨어요. 명단에 빠뜨렸네요 죄송해요.

- 간 거 알고 있고. 왜 빠뜨렸느냐가, 내 질문임.


오 초간 메신저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넣어서 다시 보낼게요, 했다.

이럴 때 대답에 영혼을 싣지 않는 법을 이미 배웠으니까.


왜일까. 나보다 우위에 서고 싶었을까. 그냥 짜증이 났을까. 내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저게 저 사람에겐 일상적인 소통의 방식인걸까.

우리의 사이가 평소 나쁘지 않았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 어제 박과장 회의 갔는데 명단에 빠져있네. 넣어서 재배포하고 이런 일 없게 하세요.

라고 말했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고,

- 어제 박과장 회의 갔는데 명단에 왜 빠졌죠?

라고 질책했어도 그런가보다 했을 것이다.

대체 왜 물어놓고, 사람을 면박주느냐 말이다. 저런 말은 욕을 한 것도 아니고 폭언으로 신고할 수준도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진다. 저렇게 말을 꼬아서 하는 이유가 뭘까.


동기들과도 종종 겪은 일을 나누며 의아해하곤 한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제 얘기를 전혀 이해를 못하시네요. 제 말은 A라는 겁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

상대방에게 설명을 요구할 때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그렇게 요청하면 다른 일 다하고 제일 마지막에 해드리고 싶어지네요” 하고 말하는 사람들.

‘제 얘기를 전혀 이해를 못하시네요’와 ‘그렇게 요청하면 다른 일 다하고 제일 마지막에 해드리고 싶어지네요’의 공통점은 그 문장을 빼도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 외에 쓸모 없는 언어들.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다만 그럴 때 동료의 실수를 이해해주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과 짤짤 흔들며 망신을 주고 납작 사과하는 모습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경우, 일을 지연시키고 결과를 나쁘게 만든다.


회의록을 배포한 이가 자신의 부장이었다면, 상사였다면, 고과권자였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듣는 이가 나였으니까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후배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라서, 함부로 해도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 말을 할 권력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말을 했다. 그런 판단을 내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영악하게도 스치는 순간에 타인을 구분한다. 신경써서 말해야 하는 사람과, 아무렇게나 말해도 되는 사람을. 그 말이 스치는 순간에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모른 채.


아마 같은 말을 계속 듣다보면 어느샌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어떤 말들은 우리를 메마르게 하고, 영혼의 생기를 앗아가서, 더 나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테니. 아마 몇 번의 기분 나쁜 일들을 겪으며, 기분 나쁜 말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은 인격뿐만 아니라 문화를 드러낸다. 회사에서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상대방 탓을 하려고, 초조하고 급해서, 남을 돌아볼 만큼의 여력이 없어서 함부로 말한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다. 한두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유없는 리더는 여유 없는 문화를 만들고, 여유 없는 문화는 앞서와 같은 불필요한 말들을 낳는다. 회사의 분위기가 여유없고 빡빡하게 돌아갈수록, 생산성과 효율성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대신, 책임질 사람을 찾아내 추궁하고 징계해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문화는 일하는 이들로 하여금 책임을 회피하는 성향을 만들어낸다. 유체이탈 화법이 생겨나고, 작은 일도 결정하지 못하고 위로 미뤄 탑다운식 의사결정 구조를 강화한다.


신입 때, ‘유관부서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마라, 그럼 우리 책임이 되고, 그 사람은 그 일하려고 돈 받는 거니 유자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한 대리님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선배 중 하나였는데, 이 회사에 와서 처음으로 내 기분을 배려해 ‘미안하다’고 말해준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에게는 그렇게나 좋은 사람이었던 우리가, 부서나 회사의 일원으로서는 어째서 그럴 수 없는 걸까 고민했다. 회사에는 회사만의, 회사적 말하기가 있는 걸까. 그걸 배우지 못한 내가 프로답지 못한 걸까 아니면, 이건 바꿀 수 있는 문화인 걸까.


말하고 싶었다.

대리님, 하지만 저도 돈을 받고 일하고 있는 걸요. 우리도 돈을 받고 일하잖아요.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란 걸 매일같이 느끼잖아요.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으면 저 사람에게는 누가 미안하다고 해주나요. 나에게는 누가 미안하다고 해주죠. 서로에게 사과받지 못하는 우리는 누구에게 사과받아요.


돈을 받고 그 일을 하면서도 그는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고 싶을 거다. 때로는 감사보다 사과가 절실할 거다.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한 일을, 대가를 받기로 한 일을 하면서도, 그 대가가 설사 정당하고 공정한 것일지라도. 그 정당은 누가 계산하며 공정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그가 받은 돈이 모든 대가를 지불한다는 규칙은. 나의 계산법으로 그 사람은 누군가의 사과를 받아야 마땅했다. 그게 나의 것이면 어떤가. 나는 할 수 있는데.

좀 더 여유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건넬 수 있는 곳이 회사였으면 좋겠다. 듣는 사람의 지위를 순간적으로 계산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문화가 회사에 있길 바란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후회를 통해 더이상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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