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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Nov 16. 2020

워크샵의 최민식

당신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나요?

워크샵이란 사실 누구도 그 정체를 명확하게 모를 무언가다.

워크샵의 의미는 회사마다 다르고, 부서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아무튼 거의 모든 회사는 워크샵을 하고, 워크샵을 워크샵이라고 부르지 않는 회사도 어쨌든 워크샵을 한다. 워크샵을 무엇이라고 부르건, 정의하건, 그건 여러 사람이 모여 입 가진 자는 한마디씩 떠드는 정기 행사다. 지난주, 우리 회사에도 그 정기 행사가 있었다. 판돌이 자리에 앉아 이 자료 저 자료 화면에 띄워가며 마주 앉은 이들이 의미없고 영양가 없는 논쟁을 길게 늘여 하는 것을 긴장해 굳어버린 어깨로 5시간을 듣고 나니, 나는 마치 보리수 나무 아래에 5년을 앉아있었던 것처럼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불현듯 머릿속을 선명히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아, 그러니까 이들은 최민식인 거구나...!”하는 돈오점수.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영화배우 최민식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항상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모습이 있는데, 그건 바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두 손에 찬 수갑을 흔들며 소리치던

마!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방식으로 쌓아온 인맥을 들이밀며 닥친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얄팍함과 권위의식, 그로부터 비롯되는 우스꽝스러움과 거부감을 그는 이 장면에 기가 막히게 담아냈다. 그리고 이 몸짓과 대사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고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아마도 그 얄팍함과 권위의식의 전형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직장을 다니다보면 왠지 수많은 최민식을 만나게 된다.

 그와 내가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그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든 아저씨였을 누군가. 한 회사의 과장이, 부장이, 아니 상무, 전무라 할지라도, 그 회사가 아무리 크고 잘난 회사라 할지라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사실 회사는 오래전에 사람의 소유를 벗어났고,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회사를 가진 사람은 없다. 회장님도 대주주도 이 회사를 전부 가진 적은 없는 걸. 우리 중 누구도 회사가 아니며, 회사의 이익이 달라진다고 인생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언가가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적어도 회사가 회사이게 하는, 잘 나가는 회사이게 하는데 기여하는 누군가가. 그렇게 자꾸만 직장의 최민식은 탄생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야만 하는,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서운 이들에 의해서.

나는 오늘도 직장의 최민식을 만났다.


 사실 워크샵은 최민식이 탄생하고 활약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일단 많은 사람이 모였으니 관객이 충분하고, 입 가진 자는 다 한마디씩 해대니 최민식이 절대로 가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자꾸 이렇게 이름을 들먹이니 영화배우 최민식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훌륭한 배우고 그냥 너무 명연기라 기억에 남았을 뿐이다..) 실무끼리 차분하게 얘기하면 삼십분이면 해결될 일을, 다섯시간씩 흥분하고 침 튀기며 갑론을박 해야만 비로소 뭔가 중요하고 바쁜 사람이 된 것 같으니. 현장은 최전방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나를 사무실 의자에 기대 앉아서 지원조차 해주지 않는 본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본사는 아무 책임도 권한도 없는 나를 뭐라도 된 것마냥 미친듯이 닦달하는 현장을 경멸하면서. 그러니까 이건 진짜 욕설이나 경멸이 아니라, 잘 짜여진 무대에서 펼치는 한 편의 드라마, 살풀이, 스탠딩 코미디에 불과하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니까. 뭐라도 한 마디 얹어야만 하니까. 일단 화를 내면 내 입지가 좀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서. 열정적이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보이기 위해. 내가 가진 파워를 만천하가 알 수는 없다는 걸 이미 어린 시절 깨달았으니 적어도 이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만이라도 알았으면 해서.

 최민식이 수갑을 차고 쏟아내는 대사는, 실은 나는 이 세상을 애송이 너보다 좀더 잘 알고,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을 잘 알고, 그래서 너는 날 이 따위로 대해선 안되고, 곧 그걸 크게 후회하게 되리라는 협박. 이곳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뭐가 중요한지 알고 있는 나는 그러니까 힘 있는 어른이라는 과시. 그런데 너는 그걸 모르고 있다는 무시.

 바로 그렇게, 그는 자신이 그 모든 협박과 과시와 무시가 절실히 필요한 존재에 불과할 뿐임을 증명한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어느모로 보나 물음표가 남지만 특히, 워크샵 내내 쏟아지는 비방과 일장연설을 참아내며 나는 그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누구세요?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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